[재계CEO 와인 취향 들여다보니]삼성일가 佛보르도 와인… LG는 신대륙産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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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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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재계에서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이 와인을 가장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회사로 꼽힌다. 와인 마니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미래’를 강조하며 이렇게 주문했기 때문이다. “해외 출장을 가면 기간을 며칠 늘려서라도 하나라도 더 보고 돌아와라. 명품을 알아야 명품을 만들 수 있다. 사회 지도층으로서 격조를 갖추려면 명품 중 명품인 와인을 알아야 한다. 모르면 배워라.”

재계에선 이 회장의 주문을 가장 충실히 따른 케이스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꼽는다. 한 와인 수입회사 관계자는 “이 사장은 삼성에버랜드 전무(지금은 사장)를 겸한 2009년부터 맹렬한 속도로 와인을 익혀 지금은 와인에 관한 한 ‘리틀 이건희’란 별명이 딱 맞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 때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1982년산 프랑스 ‘샤토 라투르’를 대접했던 이 회장은 지난달 보광피닉스파크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2018년 겨울올림픽 평가단을 영접할 땐 2003년산 프랑스 ‘푸피유’를 내놓아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푸피유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재배한 포도로 담근 10만 원대 친환경 와인으로, 몇 년 전 해외 블라인드 와인 테이스팅 대회 결선에서 수백만 원짜리 프랑스 ‘페트뤼스’와 맞붙기도 했다. 페트뤼스 애호가였던 이 회장이 저력을 갖춘 친환경 와인을 내세워 평창의 건강한 이미지를 홍보하려고 했다는 분석이다.

와인을 즐기는 스타일은 그룹마다 다르다. LG그룹에서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와인통’으로 불린다. 구 부회장은 LG상사 부회장 시절(2007∼2010년) 그룹의 와인 계열사인 ‘트윈와인’을 세웠다. 당시 가문의 ‘어르신’들은 “대기업이 무슨 술장사냐”고 반대했지만 구 부회장은 “와인은 독주가 아닌 부드러운 술이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돕는다”라며 설득했다고 전해진다. 구 부회장은 최근 트윈와인에 “하루빨리 그룹 내에 와인 문화를 전파하라”는 과제도 내렸다. 와인 사업에서 빠른 실행력을 보여줬던 구 부회장이 지난해 고전한 LG전자를 어떻게 살려낼지가 관심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평소엔 ‘밸런타인 21년’ 같은 위스키를 즐긴다. 하지만 해외 VIP가 방문하면 경기 광주 곤지암리조트에 있는 자신의 개인 카브(와인저장고)에 데려가 취향에 맞게 골라 마실 수 있게 배려한다고 한다. 호주의 ‘카트눅 오디세이’는 그가 워낙 즐겨 마셔 ‘구본무 와인’으로 불린다. 골프광인 구 회장은 퍼터 브랜드 ‘오디세이’와 이름이 같다고 수백 병씩 이 와인을 주문한 적도 있다. 오너들은 ‘골프와 와인의 공통점’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눈다. ‘너무 좋아하면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상대를 배려해야 성공하며, 한번 빠지면 탈출하기 어려우며, 내공이 쌓일수록 더 좋은 것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삼성 오너 일가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주로 마시는 반면 LG는 호주와 뉴질랜드, 칠레 등 ‘신대륙 와인’을 마신다.

오너 일가라도 세대별 와인 취향은 갈린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은 보르도 그랑크뤼 2등급인 ‘코스데스투르넬’을 즐기고, 지인들에게는 1등급인 ‘샤토 마고’를 선물한다. 보수적인 맛을 지닌 최고급 와인들이다. 반면 둘째 사위인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여태껏 안 마셔본 와인에 도전하는 실험정신이 강하다고 한다. 정성이 이노션 고문 등 정 회장의 세 딸은 비싸지 않은 화이트와인(소비뇽 블랑 품종)을 마신다.

와인을 마시는 취미를 통해 신사업을 모색하는 오너들도 있다. 이탈리아 ‘사시카이아’를 즐기는 와인 전문가 수준의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내년에 ‘한국의 명품 막걸리’를 만들 계획이다. 한방화장품 ‘설화수’로 ‘코리안 럭셔리’를 이룬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한국인 와인 메이커 박재화 ‘루뒤몽’ 사장의 집을 종종 찾아가 양조 과정을 지켜본다. 와인 수입사 ‘신세계 L&B’를 세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최근 트위터에 추천한 ‘도멘 세실 트랑블레’는 부르고뉴의 ‘차세대 스타 와인’. 국내에선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와인업계가 그의 ‘와인 내공’에 새삼 놀랐다는 후문이다. SK 오너 일가들은 상대적으로 와인보다는 맥주를 더 즐긴다고 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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