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銀 성공’ 국내은행에 뼈아픈 교훈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론스타, 전문경영인 위주 원칙경영… 6년째 큰폭 흑자

“외환은행이 탐나는 은행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 빨리 딜(deal)이 성사될 줄은 몰랐다.”

하나금융지주가 25일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인수계약을 하는 외환은행을 두고 김종열 하나금융 사장이 한 말이다. 론스타가 2003년 10월 인수한 이후 7년간 ‘먹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외환은행은 아이러니하게도 론스타 밑에서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를 위협하는 ‘탐나는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이는 거꾸로 각종 외풍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던 다른 시중은행에 뼈아픈 교훈이 되고 있다.

○ ‘작지만 강한 은행’으로

외환은행의 괄목할 성장은 실적이 말해준다. 론스타가 인수했던 2003년만 하더라도 외환은행은 외환카드 부실과 대손충당금 등으로 2138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 속에서도 9000억 원에 가까운 흑자를 거뒀다. 은행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도 2002년 말 10%를 밑돌았으나 지난해 말에는 14.89%로 시중은행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론스타가 특별한 선진금융 노하우를 가진 것은 아니다. 론스타는 철저하게 전문경영인 위주의 원칙 경영을 했고, 대주주의 위임을 받은 전문경영인은 외환은행이 가진 기업금융 및 외환업무 분야의 강점을 잘 살린 덕분이라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실제로 옛 제일은행이 영국의 스탠더드차터드에 인수된 후 사실상 대기업과의 거래를 포기한 반면 외환은행은 오히려 기업 거래망을 강화하면서 무역금융 분야의 프리미엄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그룹에서 기업투자총괄 부사장을 지냈던 리처드 웨커 전 행장을 영입한 이후 현 래리 클레인 행장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작지만 강한 은행’을 추구한 것도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외국인이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들어서면서 국내 은행권의 고질병인 학연, 지연이 타파됐고 외풍(外風)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다.

○ 하나금융 이사회, 외환銀 인수결의

론스타 체제에서 외환은행이 잘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4월에는 서울의 한 지점장이 고객 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고 해외 지점에서도 횡령 사고가 이어졌다. ‘곧 매각될 은행이라 내부 리스크 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같은 기간 큰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국내 은행에는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외환은행이 본업에 충실하고 있을 때 우리금융그룹은 파생금융상품 투자로 1조 원이 넘는 손실을 봤고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은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업이 경영에 열중하기만 해도 이익을 낼 수 있는 산업이라는 걸 론스타와 외환은행이 보여주고 있다”며 “그만큼 국내 은행권의 최고경영진이 ‘돌격 앞으로’식 무리한 투자를 하거나 자신들의 ‘자리’에 목을 매는 ‘무능경영’을 해왔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한편 하나금융은 24일 이사회를 열고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주식매매계약을 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이어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 51.02%(3억2904만2672주)를 인수하는 데 4조6500억∼4조7500억 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공시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대 주주인) 골드만삭스도 전적으로 지원하기로 약속하는 등 인수 자금 조달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 하나금융, 외환銀인수 뒤 별도 운영 왜? ▼
감원 우려 불식-양측 화학적 결합 유도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을 인수하더라도 하나은행에 곧바로 합병시키지 않고 당분간 별도로 운영하기로 했다. 하나의 지주회사 밑에 두 개의 은행을 두는 이른바 ‘1지주 2은행’ 체제로 과거 신한은행과 옛 조흥은행의 통합 방식을 롤 모델로 삼은 것이다. 신한금융지주는 2003년 8월 조흥은행을 인수한 뒤 신한은행과 ‘듀얼 뱅크’ 체제를 유지하다 2006년 4월 통합 신한은행을 출범시켰다.

이처럼 ‘선(先)인수, 후(後)합병’ 전략을 택한 것은 대규모 인력 감축에 대한 우려와 조직 내부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면서 기업문화가 다른 양측의 화학적 결합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외환은행을 합병하기에 앞서 하나은행의 내부 결속을 먼저 다져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서 하나은행을 그동안 합쳐진 은행의 영문 이름을 따서 ‘HSBC(하나+서울+보람+충청)’로 부르는 데에는 출신 은행별로 이질적인 조직 문화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두 은행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희석시키지 않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은행은 프라이빗뱅킹 등 개인금융에, 외환은행은 기업금융과 외환업무에 각각 강점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최대 금융그룹인 산탄데르가 1994년 부도 위기에 몰린 바네스토 은행을 인수한 뒤 바네스토의 브랜드와 지점망을 유지하며 성장동력으로 활용한 것처럼 하나금융도 외환은행의 글로벌 지점망을 통해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김정태 하나은행장은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의 권유에 따라 은행장 취임에 앞서 산탄데르에서 연수를 받는 등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왔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