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만 하던 보안업체 직원들 일냈다

  • 입력 2009년 10월 15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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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때문에 힘들지?”

“아니, 우리 게임해….”

석 달 전 정부 기관, 인터넷 포털 등 국내 주요 기관의 온라인 사이트를 마비시켰던 ‘7·7 디도스’ 사건. 한국인터넷진흥원, 국가정보원, 경찰청사이버테러지원센터 등과 함께 사태 해결에 나선 것은 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였다. 대부분의 직원이 촌각을 다투고 밤새우면서 디도스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도 유유히 게임만 하던 5명의 직원이 있었다. ‘고슴도치플러스’라고 불리는 인터넷 사업본부 내 별동조직 소속 직원들이다. 보안 사업만 하던 안철수연구소가 2006년 말 ‘웹2.0’ 관련 사업에 도전한다며 만든 사내벤처 팀으로, 이들은 정보기술(IT) 업계의 최근 화두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 팀은 지난달 말 국내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SNS 게임 6개를 SK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국내에 처음 공개했다. 2주가 지난 현재 SK커뮤니케이션즈 포털 ‘네이트’ 내 앱스토어 차트에는 ‘고슴도치플러스’란 이름이 붙은 게임 4개가 톱 5에 올라 있다. 그중 2위인 한자 교육 게임 ‘한자챌린지’의 이용자는 14일 현재 1만7200명을 넘어섰다.

1위는 영국의 SNS 게임 업체 ‘플레이피시’가 만든 ‘펫 소사이어티’의 한글판, 이 업체는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등을 통해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히트작을 내놓으며 명성을 쌓았다. 고슴도치플러스는 세계적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셈이다. 송교석 팀장은 “보안 벤처가 게임 벤처를 탄생시킨 것”이라며 “처음엔 사내에서도 게임을 만드는 것에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지만 정형화된 보안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 보자는 취지가 먹혀들고 있다”고 말했다.

고슴도치플러스는 회사 내 ‘아이큐 제도’를 통해 탄생했다. 직원들이 사업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제도다. 송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6월 시험 삼아 1촌끼리 쫓고 쫓기는 추격 게임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만들어 미국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이 게임은 5만 명 이상의 이용자를 모으며 인기를 얻었다. 이에 팀원들은 국내에서도 SNS 게임 붐이 불 것이라고 판단해 곧바로 게임 개발에 착수했고 두 달 만에 6개의 게임을 공개한 것이다.

안철수연구소는 현재 고슴도치플러스의 특화를 준비하고 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한글화해 10월 말 국내에 공개하는 것을 비롯해 미국의 SNS 게임 유통업체와 함께 이 게임을 유료화 모델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고슴도치플러스를 자회사로 분사할 계획도 갖고 있다. ‘고슴도치’란 이름은 짐 콜린스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 나오는 고슴도치에서 비롯됐다. 우둔해 보이지만 한우물을 파는 고슴도치란 뜻이다. 송 팀장은 “인맥을 중심으로 한 아기자기한 게임을 개발해 SNS의 성공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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