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열기자의 ‘카레이싱’ 체험] 코스는 전쟁터…왜 나만 용달차 같지?

  • 입력 2009년 8월 4일 07시 53분


5명이 한 팀…4시간 동안 돌아가며 레이스… 필사적 연습주행 “이게 무슨 아마추어야?”

내구레이스는 규정에 따라 이뤄진 한 팀이 4시간 동안 드라이버를 교체해가며 레이스를 펼치는 대회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번이야말로 내 운전 실력을 테스트해 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회 1주일 전 서산에 위치한 현대파워택 주행시험장에서 열린 드라이빙 스쿨에 참가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은 최고조였다.

모두 아마추어들이니 ‘어쩌면 순위권에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상상도 마음껏 했다. 정확히 1주일 뒤, 그 자신감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질 것인지는 미처 생각지 못한채.

드디어 대회 당일인 오전 8시 30분 사전 브리핑을 위해 레이싱파크내 교육장으로 들어섰다. 전날 그리드(출발 순서) 추첨 후 간단히 서킷 연습 주행을 하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아마추어대회라고는 하지만 클릭전과 포르테전 우승자들을 비롯해, 매주 태백 서킷에서 연습해온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이 내구레이스에도 팀을 이뤄 출전했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자신감이 타이어 바람 빠지듯 서서히 새나간 것도 이때부터다.

○오전 9시35분, 짧은 웜업 주행

웜업주행은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될 내구레이스에 앞서 코스를 돌며 연습 주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주어진 시간은 단 25분.

팀원이 5명이라 개개인이 주행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분, 2.5km 서킷을 겨우 3바퀴 정도를 돌 수 있는 시간이다.

아직 코스를 완벽하게 익히지 못했는데, 3바퀴라니 너무 짧다.

호흡을 길게 내쉬며 각 코너를 도는 최적 경로를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각인시키려고 노력해보지만, 5분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게다가 연습 주행인데도 출전 차량들은 필사적으로 코너를 빠져나간다.

○이것이 아마추어의 스피드?

4시간의 내구레이스 중 피트인을 위한 총 40분의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주행 시간은 3시간 20분.

5명의 드라이버가 각각 40분 정도 주행할 수 있는 시간이다.

기자는 5명 중 4번째 드라이버로 출전해 2시 50분부터 3시 25분까지 35분간 주행하기로 했다. 2시간50분 가량 다른 선수들의 레이스를 지켜보며 대기해야 하는 셈이지만 시간은 화살같이 지나갔다.

이미 코너에서의 작은 추돌사고로 몇몇 차량은 리타이어했고, 앞서 레이스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 팀원들은 순수 아마추어라기엔 너무 빠른 다른 팀 선수들의 스피드에 혀를 내둘렀다.

○길고 긴? 35분간의 레이스

오후 2시30분. 두 번째 의무 피트인을 위해 차가 들어왔고, 이제 기자가 출전할 차례다. 심장 박동이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한다. 잘 할 수 있을까?

주유를 마치고, 차에 앉아 좌석 위치와 벨트를 점검한 뒤 정확히 35분 피트인 종료 사인과 함께 피트라인에서 본선으로 들어섰다.

정신없이 한 바퀴를 돌아, 900m의 직선구간을 지나고 첫 번째 코너를 빠져나와 두 번째 코너로 접어들면서 나는 직감했다. 앞으로 남은 30여분 동안 39대의 출전 차량들 중 단 한 대도 추월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코스는 전쟁터였고, 오직 코너와 스피드만이 존재했다.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 해온 최적화된 주행 경로는, 이론에 불과했고 뒤에서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경쟁 차량에 코너에서 힘없이 길을 터주다 라인을 잃고 허둥대기 일쑤였다.

레이스 경험 없는 드라이버 라이센스는 부끄러운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했다. 분명히 동일 차종으로 같은 조건에서 치르는 레이스인데, 수많은 포르쉐들 사이에서 나 홀로 용달차를 몰고 애쓰는 느낌이었다.

‘아, 이게 진짜 레이스구나!’

아드레날린은 끊임없이 분출되고, 승부욕은 불타올랐지만 기량과 연습량은 턱없이 모자랐다. 평소 운전깨나 한다는 사람들도 실제 경기에 출전시켜놓으면 자신이 얼마나 운전을 못하는지 깨닫게 된다던 클릭 페스티벌 행사 주관사인 KMSA 허광년 대표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했다. 정신없이 35분간의 주행을 마치고 피트인해 마지막 주자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무사히 완주, 하지만 1위와 무려 21바퀴 차이

오후 4시 정각. 첫 레이싱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나긴 긴 레이스의 끝을 알리는 체커깃발이 펄럭였다.

성적은 37팀중 28위. 4시간 동안 1위를 한 팀은 146바퀴를 돌았고, 기자가 속한 팀은 125바퀴를 돌아 무려 21바퀴의 차이를 보였다.

역대 클릭 내구레이스 최고 기록은 1분 13초대다.

기자의 평균 랩타임은 1분 35초, 최고 랩타임은 1분 25초에 불과했다. 최고 기록과 비교해도 상위그룹과는 1바퀴 당 무려 12초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은 코스 내에서는 스피드를 즐기며 최선을 다했지만, 차에서 내린 뒤에는 참가 그 자체를 즐거워했다. 기자 역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4시간 내구레이스는 팀원이 함께 레이스를 즐기고 완주하는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자 첫 카레이싱의 피로가 파도처럼 몰려왔지만, 머리 속은 어느새 레이싱 장면을 떠올리며 아쉬운 순간을 복기하고 있다.

‘조금 더 빠르게 코너를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오른발에 살짝 힘이 들어간다. 카레이싱은 이처럼 중독성이 강한 짜릿한 스포츠다.

본인의 운전 실력이 궁금하다면 혹은 카레이싱의 진짜 묘미를 느끼고 싶다면 주저 말고 카레이싱의 세계에 도전해보자.

태백|sere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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