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외국 공항서 마주치는 광고들…

  • 입력 2009년 6월 23일 02시 58분


유독 국내기업 많은건 왜일까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에는 LG전자의 옥외 광고판 10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애니콜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대형 손 조형물 광고를 세계 각국의 공항에 설치했죠.

한국 기업들은 공항 광고에 공을 들입니다. 각 나라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들이 통과하는 관문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는 효과가 큽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공항 광고의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해외여행지에서 발견하는 한국 기업의 광고는 우리를 뿌듯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노키아, 소니, 도요타 등 경쟁 기업에 비해 유독 공항 광고에 신경을 더 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몇 년 전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지시로 세계 각 공항의 카트에 삼성 광고를 넣으려는 대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인 LG와 경쟁이 붙어 공항 측에 웃돈을 주는 해프닝도 있었죠.

한국 기업들이 공항 광고에 집착하는 데는 숨은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혹시 현지 소비자가 아니라 현지를 방문하는 사내(社內) 고객, 국내 고객을 위한 것은 아닌지요.

작년 이명박 대통령이 브라질을 방문했을 때 LG전자는 10개의 공항 광고판 중 하나에 이 대통령을, 다른 하나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마지막 하나엔 양국의 국기를 그려 넣었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이런 광고 공세를 펼 수 있는 한국 기업의 힘에 대한 부러움을 표시해 이 대통령을 으쓱하게 했답니다. 현지의 한국 기업인들은 이 에피소드가 전해지자 쾌재를 불렀지요.

하지만 브라질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경쟁업체인 노키아 등은 공항 광고보다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TV나 신문, 잡지 광고를 선호한다고 귀띔했습니다. 소파에 누워 잡지를 보다가 주말 쇼핑에 나서는 소비자들을 위한 것이죠. 게다가 공항 옥외광고에 대해 “후진국일수록 미관에 신경 쓰기보다는 정부의 자금 마련을 위한 옥외광고 허가를 남발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이 이미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한국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권력자들이 해외를 방문할 때 자긍심을 심어주지 않으면 기업의 중요성을 몰라 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자칭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광고주 협박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도 은연중에 “이들이 다음 정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지 누가 알겠느냐”는 심정이 깔려 있는 것 아닐까요.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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