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원전’ 세계 빅3에 도전장

  • 입력 2008년 3월 26일 02시 50분


건설비 30% 싼 독자모델로 내달 터키 국제입찰 나서

《‘원자력 르네상스.’

원자력 발전(원전) 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온실가스 규제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세계가 원전의 가능성에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국형 원전을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지목했다. 한국전력 등 국내 발전(發電)업체들은 다음 달 터키 정부가 발주할 예정인 원전 국제입찰에 국내 자체기술로 개발한 독자모델 ‘APR1400’으로 출사표를 던진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원전 3강이 주도하는 세계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녹록지는 않다.

이원걸 한전 사장은 “APR1400은 경쟁국 모델보다 건설비용 및 공간 대비 효율성이 비교우위에 있다. 원전 기술력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 2030년까지 두 배로 성장 ‘황금시장’ 떠올라

세계 발전업체들이 원전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은 이미 검증된 원전의 친환경성과 경제성 때문이다. 원전은 화력발전과 달리 이산화탄소(CO2) 등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데다 kW당 전력 생산비용이 39원으로 유연탄(42원), 가스(100원)에 비해 저렴하다.

원유나 유연탄 등 점차 바닥을 드러내는 화석연료와 달리 원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상대적으로 매장량이 풍부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여기에 1979년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전 사고 이후 이뤄진 원전 안전기술의 비약적 발전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형 원전의 설계를 담당하는 한국전력기술의 허영석 전무는 “과거 원전 사고는 대부분 시스템의 결함이 아닌 관리자의 조작 실수 때문이었다”며 “신형 원전은 인간의 실수가 아예 개입하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 31개국에서 440여 기가 운영 중인 원전이 2030년경에는 70개국, 790여 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설계기술-고급인력도 경쟁력 갖춰

기술력만을 놓고 볼 때 한국형 원전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한국은 1970년대 초 미국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원전 기술을 도입한 이후 현재까지 20기의 원전을 지으면서 한국형 표준원전 모델인 OPR1000, 독자모델인 APR1400 등을 만들어 왔다.

특히 기술자립도가 95%를 넘는 APR1400은 kW당 건설비가 2000달러 수준으로 미국 등 경쟁모델(3000달러 수준)보다 30% 이상 저렴하다.

여기에 1980년대 초부터 원전 건설이 전면 중단된 미국과 달리 한국은 19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원전을 지으면서 우수한 설계 기술 및 고급 인력을 보유한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원자로에 대한 원천기술은 웨스팅하우스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전 수입국이 한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요구할 경우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수출의 걸림돌이다.

지계광 한국전력기술 사업개발팀장은 “터키와 인도네시아 등 한국이 원전을 수출하려는 나라는 기술이전 요구를 하지 않고 있어서 전망이 밝다”라며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원천기술도 2015년경 완전 자립할 수 있어 이후 수출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 설명했다.

○ 美佛日 3강구도 장벽… 운신 폭 좁아

그러나 미국 프랑스 일본으로 대표되는 세계 원전시장 3강 구도에 한국이 진입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원전 관련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데다 일본도 2년 전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지분 80%를 인수해 원천기술을 보유했다.

또 세계 원전 산업이 커질 것을 대비해 이들 3국 메이저 업체 간 짝짓기가 이미 끝난 것도 우리에게는 운신의 폭을 좁게 하고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원전 수출이 기술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의 역학관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도 우리에게는 간단치 않다.

허 전무는 “아직까지 국내에는 공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데 있어서 제약요건이 산적해 있다”라며 “공기업들이 원전 수입 대상국과 융통성 있는 협상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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