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은 놓치고 서민만 잡았다” 거꾸로 달린 부동산 정책

  • 입력 2007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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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아파트 2채를 갖고 있는 박모(67) 씨는 지난해 말 아파트 1채(서초구 서초동 34평형)를 서둘러 아들에게 물려줬다. 올해 초부터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이 50%로 뛰기 때문이었다.

1987년 이 아파트를 산 가격이 5500만 원이니 올해 시세(9억 원)대로 판다면 양도세는 4억1589만 원(주민세 등 포함)이다. 하지만 박 씨는 작년 말 ‘부담부 증여’를 해 이보다 2억5540만 원이나 적은 1억6049만 원만을 세금으로 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를 강화해 매물을 내놓게 한다는 정책이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관련 정책이 취지와는 달리 시장에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정책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시장은 갈수록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서울 신규주택 2002년 16만 채→2005년 5만 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신규주택은 2002년 37만6248채에서 2005년 19만7901채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는 정부가 밝힌 수도권 연간 주택수요량(30만 채)보다 10만 채 이상 모자라는 것이다.

특히 서울의 신규주택 공급은 이 기간 15만9767채에서 5만1797채로 70%나 줄었다.

각종 규제로 민간부문의 건축 활동이 위축된 데다 정부가 집을 많이 지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 100만 채를 짓겠다고 했지만 이는 사업승인 기준일 뿐 2017년은 돼야 입주가 끝난다. 그나마 착공이 늦어지는 곳이 많다.

또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10년 장기임대주택 50만 채 건립계획도 지지부진하다. 2005년까지 불과 4944채만 공급됐다. 민간 참여가 저조하자 정부는 재개발·재건축단지에서 나오는 임대아파트 등으로 대체키로 했다.

주택 공급 위축은 자연히 집값을 크게 올려놓았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3년까지 주택이 적절하게 공급되면서 2004∼2005년 2년간 집값 상승률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2.4%, 서울은 5.1%에 그쳤다. 그러나 공급 위축의 영향이 본격화한 지난해 수도권은 19.8%, 서울만으로는 18.1% 뛰었다.

전세금도 2004∼2005년에는 수도권과 서울이 각각 3.1%, 4.6% 떨어졌지만 작년에는 9.9%와 9.2% 올랐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 앞뒤 안 맞는 대책 연속

송파신도시 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은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1월 “서울은 고질적인 주택 부족으로 집값 상승 압력이 상존한다”며 “강남권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거꾸로 갔다.

재건축아파트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 정부는 2002년 9·6대책(투기과열지구 분양권 전매 금지), 2003년 5·23대책(재건축아파트 후분양제) 등을 통해 서울 강남권 재건축아파트를 규제해 결과적으로 주택 공급만 줄였다.

공급을 늘리려는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11·15대책에서 대표적인 서민주택인 다세대·다가구주택의 공급을 늘리기 위한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다. 다세대·다가구주택 주차장 일부에 상가를 지어도 주택분 층수에서 제외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구당 1대인 현행 주차장법은 유지하기로 해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인화 도원건축사 사무소장은 “다세대·다가구주택 1층에 상가까지 넣으면 거의 대부분 법정 주차공간을 맞출 수 없다”며 “대형 고급 빌라나 환영할 만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고질적인 통계 부족도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걸림돌로 꼽힌다.

주거환경연구원 박미선 연구위원은 “주택보급률 통계만 해도 건교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수치가 다르며 월세 통계는 아예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특정 지역의 수요와 공급을 따질 때 필요한 구별(區別) 소득도 갖고 있지 않다. 서울 강남권 등의 부동산 거품을 지적하면서도 정작 해당지역 거주자의 소득을 파악할 수 없어 거품이 얼마나 끼었는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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