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에 깔려 죽겠다”

  • 입력 2006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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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공업계 선두권에 속하는 A사는 최근 한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와 손잡고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벌였다.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적립해 불우이웃돕기 자선금으로 내겠다는 행사였다. 하지만 그 대형마트는 달랑 이름만 빌려줬을 뿐 실질적인 자금 부담은 모두 A사가 떠안았다.

A사 관계자는 “대형마트들이 1, 2주 단위로 ‘초특가 판매’ ‘덤(1+1) 판매’와 같은 판촉행사를 벌이면 부담은 고스란히 제조회사 몫”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대형마트를 둔 대기업이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이런 요구를 거절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M&A, 또 M&A… 배고픈 ‘공룡’

‘공룡’ 유통기업들이 기업 인수합병(M&A)과 점포 확장에 나서면서 독과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제조회사에 부당한 가격할인 요구를 하는가 하면 각종 판촉비용도 떠넘기기 일쑤다.

올해 들어 이랜드가 한국까르푸를, 신세계는 월마트를, 롯데쇼핑이 청주백화점과 우리홈쇼핑을 각각 껴안았다.

유통가에선 올해 말까지 이런 대형 M&A가 3, 4건 정도 더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롯데와 신세계,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이랜드 등이 추가 M&A에 나설 조짐이다. 자고 나면 ‘○○기업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이어지고 있다.

점포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롯데는 연내에 백화점 1곳과 롯데마트 12곳을 추가로 개점한다. 신세계 이마트와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도 연말까지 각각 10개점을 새로 개장한다.

이들 기업의 시장점유율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마트의 시장점유율은 34%. 이마트는 월마트(지난해 말 기준 시장점유율 3%)를 인수한 데다 계획대로 점포 수를 늘리면 연말쯤엔 점유율이 40%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시장은 롯데-현대-신세계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말 80%에 육박할 정도다.

○ ‘항의하면 쫓겨날까 봐…’ 울며 겨자 먹기 영업도

부산의 화장지 제조회사인 D사는 2004년까지 지역 유통업체에 화장지를 납품하며 월평균 17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이 유통업체가 대기업 대형마트로 인수된 2004년 말 이후에는 월평균 매출이 100만 원 아래로 뚝 떨어졌다.

대형마트가 D사의 납품매장을 12곳에서 3곳으로 줄이고, 그 대신 자신의 기존 거래제품으로 대체한 게 직격탄이었다. D사 측은 “불평하면 매장에서 아예 쫓겨날까 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 5월에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횡포가 여실히 드러난다.

응답회사(39개사)의 44%인 17개사는 △할인행사를 위해 납품업체에 염가 납품을 강요하거나 △납품업체에 사전 협의 없이 광고비나 경품비 등을 떠넘기거나 △판촉사원을 파견 받는 부당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공정위는 지난달부터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납품업체 3000곳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장안대 변명식(프랜차이즈학) 교수는 “현재와 같은 유통사와 제조회사의 관계는 국내 유통업계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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