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증시 급락소식에 투자심리 붕괴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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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객장주가가 폭락한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신증권 객장이 텅 비어 있다. 코스닥시장은 10%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돼 사상 처음으로 주식 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투자자가 한 명도 없는 객장에서 취재를 나온 방송사 카메라맨이 주식 시세표를 촬영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텅빈 객장
주가가 폭락한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신증권 객장이 텅 비어 있다. 코스닥시장은 10%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돼 사상 처음으로 주식 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투자자가 한 명도 없는 객장에서 취재를 나온 방송사 카메라맨이 주식 시세표를 촬영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우려했던 ‘블랙 먼데이’가 현실이 됐다.

주가가 폭락하자 투자자들은 겁에 질려 주식 팔기에 급급했고, 이에 영향을 받아 주가가 다시 폭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특히 코스닥시장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시가총액의 10%가 하루 만에 날아갔다. 코스닥시장 개설 이후 처음 주가 폭락으로 매매가 중단되는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931개 코스닥 등록 종목 가운데 무려 895개 종목의 주가가 떨어졌다. 하한가를 친 종목만 347개로 전체의 3분의 1을 넘었다.

코스닥은 특히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시장. 최근 1주일 동안 코스닥 시가총액의 20%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개인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 너도 나도 “팔자”

지난주 금요일(20일) 미국 증시가 급락해 23일 국내 증시의 약세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하지만 실제로 장이 열리자 겁에 질린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면서 경제 현실이나 기업 실적에 관계없이 증시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이날 주가 하락, 특히 코스닥시장 폭락의 가장 큰 원인은 투자심리 붕괴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로 예상 밖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코스닥시장이 무너지면서 상대적으로 선전하던 거래소시장까지 유탄을 맞아 폭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코스피지수는 오전 10시경 지난주보다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코스닥지수가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이 코스피 종목까지 팔아 치워 결국 1,300 선이 무너졌다.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미수(외상거래) 물량도 이날 증시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지난주 주가가 폭락하자 단기 반등을 노린 개인투자자들이 외상으로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월요일 주가가 폭락하면서 손해가 커지자 할 수 없이 주식을 팔아 치웠고, 이 때문에 주가 하락폭이 더 커졌다.

게다가 이날 주가 폭락으로 다시 미수금이 증가하면서 전체 미수금이 사상 최대인 3조 원에 육박해 24일 증시에 다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가장 큰 피해자는 개인투자자

코스닥시장에서 국내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0% 정도. 그중에서도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따라서 주가 폭락의 피해는 대부분 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거래소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의 비중이 높은 거래소 대형주 지수는 1.41% 떨어지는 데 그쳤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중형주는 5.94%, 소형주는 무려 7.79% 하락했다.

개인 비중이 높은 중소형주는 유통 물량도 적어 앞으로 주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중소형주 가운데 하루 거래량이 1만 주에도 못 미치는 종목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종목은 지난해처럼 조금만 매수 세력이 붙어도 주가가 쉽게 오르지만 최근처럼 조금만 매도 물량이 나와도 주가가 폭락하는 게 특징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수익률 상위를 휩쓴 중소형주 펀드에 고객들의 환매(중도 인출) 요구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중소형주 펀드가 고객의 환매 요구를 들어 주기 위해 거래량이 부족한 중소형주를 대거 팔면 주가 폭락은 쉽게 멈추지 않을 수도 있다.

20일 코스닥시장에서 기관투자가는 주식을 순매도(매도 금액이 매수 금액보다 많은 것)하며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 이것도 중소형주 펀드의 주식 매도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 “투매 동참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적인 테러나 전쟁이 발발한 것도 아니고 국내 경기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이처럼 투매가 확산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태광투신운용 장득수(張得洙) 상무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좋다던 주식이 며칠 사이 이만큼 나빠졌다는 건 의문”이라고 말했다.

투자심리 악화로 주가가 폭락한 상태에서 투매에 동참하는 것은 주가 하락이라는 방향을 확정하는 행위라는 것.

장 상무는 “이런 때일수록 실적이 괜찮은 종목을 선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굿모닝신한증권 박효진(朴孝鎭) 연구위원도 “첫 폭락이 있었던 지난주라면 몰라도 코스닥지수가 600 선마저 위협하는 현재 시점에서 보면 투매는 적절한 전략이 아니다”라며 “투자자는 일단 공포심에서 벗어나 냉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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