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경제이야기]미쓰비시 ‘기대기 경영’ 의 교훈

  • 입력 2004년 6월 7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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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는 비슷한 점이 많다. 미쓰비시는 1917년 아시아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를 개발했고, 닛산의 역사도 70년이 넘는다.

두 회사 모두 90년대 후반 장기불황의 고비를 넘기지 못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빠졌다. 닛산은 르노, 미쓰비시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자금 지원으로 한숨을 돌렸다.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수혈하는 것에서 회생의 해법을 찾은 것도 비슷하다. 닛산의 지분 45%를 보유한 르노는 카를로스 곤 사장을 파견했고, 미쓰비시의 경영은 2002년부터 다임러 출신인 롤프 에크로트 사장이 맡았다.

그러나 양사의 처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닛산은 2003회계연도(2003년 4월∼2004년 3월)에 305만대를 팔아 8249억엔(약 8조249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창사 후 최대이익 기록을 경신하자 곤 사장은 전 사원에게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고 신입사원도 취임 후 가장 많은 2000명을 뽑기로 했다.

미쓰비시는 판매대수가 152만대로 8년 연속 줄어 969억엔의 영업적자를 냈다. 트럭에 이어 승용차까지 차량 결함을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급기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지난달 초 협력관계를 청산하고 사실상 발을 뺐다.

전문가들은 닛산의 부활을 이끈 요인으로 ‘기댈 언덕’이 없었던 점을 꼽는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룹의 지원을 당연하게 여긴 미쓰비시와 달리 닛산 경영진은 ‘여기서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으로 무장했다는 것.

한 애널리스트는 “닛산이 부품조달 과정에서 ‘계열 파괴’를 실행에 옮겨 품질과 납품조건만을 중시한 반면 미쓰비시는 재벌 기업의 한계인 ‘의존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곤 사장이 경영 전권을 위임받은 반면 에크로트 사장은 ‘대리인’의 인상이 강해 사내에서 영(令)이 서지 않았던 점도 미쓰비시의 패인으로 지목된다.

미쓰비시의 주주총회에서는 “왜 우리 경영진은 곤 사장처럼 박력 있게 일하지 못하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곤 사장은 기자들이 닛산과 미쓰비시의 차이를 묻자 “다른 회사에 대해선 답하지 않겠다”면서 “닛산의 성공은 말한 것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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