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해저드 낳은 '채무재조정 대책']신용불량자 커뮤니티 200개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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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채무재조정이 다각도로 진행되면서 신용불량자 정책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부 신용불량자들이 ‘버티기’식 전략으로 나오면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깊어가고 있다. 이는 금융기관 부실을 더욱 부채질하는 촉발제로 작용할 전망이다.

▽‘6개월만 버티면 된다’=한국자산관리공사가 최고 원리금 70%를 탕감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카드사 등에는 “채권을 자산관리공사로 넘겨 달라”고 요구하는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부작용이 커지자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 등은 자산관리공사의 채무재조정 내용을 바꾸도록 직간접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자산관리공사는 아직까지 기존 검토 내용을 크게 바꿀 필요가 없다는 방침이다.

연원영(延元泳)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우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인수한 부실채권은 금융기관이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상각(償却)처리한 채권”이라며 “어차피 못 받을 부실채권에 대해 50∼70%를 깎아주고 일부나마 받겠다는 것이 큰 잘못이냐”고 말했다.

금융기관 장부상에 남아있는 연체대출 채권과 장부상에 완전히 손실로 털어낸 상각채권 간의 빚 탕감률에서 차이가 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최고 빚 탕감률은 33%이지만 대부분이 연체대출채권이다.

신용카드사들은 현재 금융감독 규정에 따라 6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에 대해서는 ‘회수 의문’으로 보고 100% 대손충당금을 쌓으면서 손실처리하고 있다. 즉 6개월만 버티면 연체대출채권에서 상각채권으로 바뀌어 ‘빚 탕감률’이 달라진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같은 사실을 신용불량자 상당수가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현철 외환카드 홍보팀장은 “인터넷상에는 200여개의 신용불량자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이 같은 틈새를 놓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신용회복지원위의 허점=자산관리공사는 30만∼40만명의 단독 채무자는 자체적으로 빚 탕감을 하고 나머지 60만명 정도의 다중(多重)채무자는 신용회복지원위의 ‘약식(略式) 워크아웃’을 통해 채무재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는 51% 이상의 채권을 가진 금융기관이 채무재조정안을 신용회복지원위에 제출하면 다른 금융기관이 이에 준해 채무재조정을 해줄 수 있는 제도로 올해 6월에 도입됐다.

하지만 이 경우 51% 이상을 가진 주채권금융기관은 신용회복지원위의 최고 빚 탕감률인 33%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빚 탕감 규모를 결정할 수 있다.

한복환(韓福煥) 신용회복지원위 사무국장은 “약식 워크아웃의 경우 빚 탕감률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지원위의 채무재조정 대상은 최저소득이 있는 경우이지만 약식 워크아웃의 경우 채무자의 소득이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산업은행과 LG증권의 다중채무자 워크아웃도 신용회복지원위의 틀 밖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산업은행이 채무재조정 대상으로 밝힌 86만명은 국민(국민카드 포함) 우리 하나 조흥 기업은행 등 5개 은행과 LG 삼성 외환 신한 현대카드 등 5개 카드사 가운데 복수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한 채무재조정은 한국신용평가정보가 맡게 된다.

반면 신한 한미은행이나 롯데카드 등에 빚을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는 신용회복지원위를 통한 개인 워크아웃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한 사무국장은 “빚 탕감률은 신용회복지원위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금융기관들이 선명성 경쟁을 할 경우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임병철(林炳喆)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불량자 구제는 금융기관간 정보공유의 큰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어느 한 구석에 ‘루프홀(구멍)’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고민하는 정부=정부는 8월 25일 발표한 신용불량자 대책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모럴 해저드가 점점 깊어지고 있는 점에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고민이다.

신용회복지원위의 운영에 관해서도 설립 초기에 관여했을 뿐 앞으로 금융기관간 자율적인 협의에 맡긴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카드업계 등에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해 이 같은 금융기관의 무리한 빚 탕감에 따른 모럴 해저드의 부작용을 막는 대책 입안을 주문하고 있다.

김석동(金錫東) 금감위 금융정책1국장은 “금융기관들이 서로 채무재조정을 무슨 자랑인 것처럼 드러내놓는 것이 문제”라며 “최대한 신용회복지원위의 틀 안에서 형평성 있는 채무재조정이 되도록 금융기관을 지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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