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우려의 목소리 “후보들 대기업 때리기 너무해”

  • 입력 2002년 12월 11일 18시 17분


주요 대선 후보 3명이 10일 경제·과학분야 2차 TV 합동토론회에서 보여준 부정적인 대기업관(觀)과 ‘대기업 때리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계는 “세계시장에서 무한경쟁을 벌이는 대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대선 후보들이 앞장서 이미지를 떨어뜨리고 있다”면서 “정치인들이 생산의 주역인 기업을 이렇게 폄하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반발했다.

상당수 경제전문가도 “일부 대기업 경영에서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침소봉대해 기업 자체를 적대시하는 듯한 반(反)기업적 분위기를 조성하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고 토론 주최측이 대기업의 ‘빛’보다 ‘그늘’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주로 준비한 절차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분명히 짚고 가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재벌’ 표현 남발부터 문제〓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 후보는 대부분의 질문과 답변에서 ‘재벌’이라는 용어를 여과 없이 사용했다. 재벌은 군벌 족벌 파벌 등에서도 느껴지듯 극히 부정적 선입견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벌’은 외국에서도 한국 기업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표현이므로 정치권과 언론에서 함부로 남발해서 안 된다고 말한다. 명지대 경제학과 조동근(趙東根) 교수는 “노키아나 필립스에서도 보듯 ‘대표기업’의 이미지가 곧 그 나라의 이미지”라면서 “우리 국민이 해외 주요 도시에서 한국 대기업의 상품이나 홍보물을 볼 때 느끼는 뿌듯함을 정치지도자들이 아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우물안 시각’이 왜곡 부른다〓올 들어 10월말까지 한국의 수출액 가운데 절반 가량을 13대 기업(개별기업 기준)이 차지했다. 또 862개 종목의 시가총액 288조4529억원(10일 종가 기준) 가운데 10대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은 53.1%였다.

이를 놓고 ‘경제력 집중’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한두개 대표기업이 휘청거리면 바로 경제성장 고용 국제수지에 모두 악영향이 미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지금은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수출 대기업의 ‘버팀목’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서울대 국제지역원 문휘창(文輝昌) 교수는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립구조로만 보기 때문에 ‘대기업 때리기’ 발상이 나오는 것”이라면서 “한국 대기업과 세계적인 대기업의 경쟁구조에서 대기업을 바라보려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경쟁력이 걱정이다〓전국경제인연합회 이병욱(李炳旭) 기획팀장은 “지금 기업들은 어떻게 중국과의 전면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대선 후보들은 한국 경제의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정부의 각종 규제가 대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순기능보다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역기능이 많아 규제 완화가 거론되는 때에 정치권이 대기업에 메스를 댈 생각을 하고 있다면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걱정했다.

LG경제연구원 김기승(金基承) 연구위원은 “세 후보 모두 표를 의식해 기업인들을 몰아붙인 인상이 짙다”며 “경제발전의 초석인 기업가정신이 사회에 살아 숨쉬어야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복지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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