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의 '암' 주가조작/수법과 대책]

  • 입력 1999년 9월 5일 18시 45분


‘돈을 갖고 튀어라.’

주가조작은 대개가 ‘저가대량매수→주가부양→매도로 차익실현→주가급락’의 단계를 거친다. 이른바 작전세력으로 불리는 주가조작 세력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물량을 고가에 떠넘기면서 작전자금의 두세배가 넘는 시세차익을 챙기는 게 보통이다.

▼작전자금 수백억대▼

그러나 기업이 유상증자에 앞서 주가를 떠받치는 이른바 ‘관리’와 시세차익을 노리는 ‘조작’은 구별이 쉽지 않고 조작 수법도 워낙 교묘해 컴퓨터로도 잡아내지 못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는 것.증권업계에 따르면 2,3년 전만해도 50억원 안팎의 자금으로 소형주를 공략하는 주가조작사건이 많았으나 지난해부터는 수백억원대의 자금을 동원하는 작전세력이 등장,대형화추세다.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은 2200억원이 동원된 사상 최대규모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작전 과정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다양한 ‘장난’은 물론 펀드매니저나 공무원을 매수하기 위한 뇌물공세도 서슴지 않는다.

▼당국자에 '기름칠'도▼

▽자금조달〓지난해 주가조작으로 적발된 한국티타늄의 경우 회사자금 411억원을 동원해 주가조작에 나섰다. 지난해 9월 검찰에 기소된 B산업 주가조작사건에서는 작전세력인 증권사 직원이 고객의 이름으로 다른 증권사에 계좌를 만든뒤 그 고객명의로 매수한 B산업주식을 담보로 신용융자를 받아 또 B산업주식을 사들이기도 했다. 이렇게 동원한 돈이 160억원. 이들은 조달한 자금 중 일부를 증권거래소나 금융감독원 당국자들에게 ‘기름칠’하기 위한 비자금으로 활용한다. 한국티타늄 사건의 경우 당국이 주가조작 조사에 착수하자 당시 증권감독원 담당자(과장급)에게 1억6000만원을 뇌물로 준 적도 있다.

▽펀드매니저 매수〓96년에 적발된 T산업 주가조작에서는 기관 펀드매니저까지 들러리로 동원됐다. 이들은 주가조작 초기 주식대량매집 때 매수자 역할을 해줬으며 작전후반에는 주가폭락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작전세력이 대량처분하는 주식물량을 떠안아주기도 했다. 물론 펀드매니저는 대량 보유 후 일정기간 주식을 팔지 않는 대가로 1억원이 넘는 사례금을 받았다.

97년 D방직의 주가조작 사건에서는 LG화재해상보험 제일은행 한신투자컨설팅의 펀드매니저들이 참여, 단순히 주식을 보유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시세조정을 위해 고가주문을 내는 적극적 작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펀드매니저가 사들인 주식이 폭락할 경우 그 손해는 해당 기관 고객들의 몫이 된다.

▽유령 외국투자자 이용〓해외에 설립한 역외펀드나 외국계투자자와 이면 계약을 이용하는 방법도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쓰인다. ‘외국인이 사는 종목’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좋은 미끼. 현대전자의 경우 현대증권의 역외펀드인 코리아옵티마펀드 코리아다이너스티펀드 등을 동원, 외국 증권사와 주식스와프(equity swap)계약을 해 외국인 매수형태로 주식을 매집했다.

▼場마감직전 고가 주문▼

▽고가주문〓매도호가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매수주문을 내거나 심지어 상한가 매수주문을 낼 경우 시세판을 들여다보던 개인투자자들은 ‘뭔가 있나보다’ 하고 관심을 보이기 마련. 현대전자는 장마감 3∼5분을 앞두고 시세보다 월등히 높은 대규모 매수주문을 내 종가를 급격히 올리는 수법을 썼다.그밖에 시초가 결정을 위한 동시호가 주문 때는 호가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하한가로 대규모 매수주문을 내 매수자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도 쓰인다.

〈이용재기자〉y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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