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가 남긴것 ⑫]「國監부조리」피감기관 고충

  • 입력 1997년 5월 13일 20시 33분


정부 각 부처와 산하기관은 해마다 한차례씩 홍역을 앓는다.

지난 88년이후 부활한 국정감사 때문이다. 피감기관들이 겪는 「국감병(國監病)」은 무엇보다 의원들의 방대한 국감자료 요구와 국가기밀 노출이다.

지난해 국감때 문화체육공보위 소속 두 야당의원은 소항목까지 포함하면 무려 1천건이 넘는 자료를 각각 요청, 해당부처를 놀라게 했다.

해당부처가 의원측에 통사정, 제출자료를 줄이긴 했지만 이를 모두 준비했다면 사과박스 1천상자는 족히 됐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의원들의 과다한 자료요구는 건설교통위와 통상산업위 재정경제위 등 이른바 「물좋은 상임위」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건설교통부의 한 간부는 『의원 한사람이 1.5t 트럭 한대분의 자료를 요청하는 일이 적지 않다』며 『그때마다 보좌관을 찾아가 이런저런 자료는 불필요한게 아니냐고 설득, 제출자료를 줄이곤 한다』고 말했다.

「○○년이후 문서대장에 기록된 모든 공문서의 사본」 「○○년이후 보도자료 일체」와 같은 황당한 요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재정경제위 소속 일부의원들은 5년간의 보도자료 일체와 3년치 장 차관 및 실 국장의 결재서류 일체를 보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감과는 직접 관련없는 민원성 자료나 개인연구소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게 피감기관들의 하소연이다.

국감자료 요구는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16개 상임위가 요구한 자료만도 4만1천건을 돌파했다는 것이 국회공보국의 통계다. 재경원의 한 관계자는 『국감시작 한달전부터 1천여명의 직원중 2백여명이 국감자료 준비로 다른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며 국감이 시작되면 국감장에 나간 직원은 물론 본부직원들까지도 비상대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국감을 통해 정부를 감시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엄청난 자료요구로 인한 행정력 낭비와 행정 공백현상도 심각하다는 얘기다.

한편 일부 부처는 방대한 국감자료를 만들어 낼 예산이 없어 부처와 관련있는 업체에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피감기관들은 국감때마다 접대비로 몸살을 앓는다.

정부 부처의 경우 대개 2,3일씩 계속되는 감사기간중 의원은 물론 보좌관과 비서관 운전기사 국회직원 등 1백명이 넘는 국감 관계자들에게 점심과 저녁을 대접하고 있다. 때로는 술자리까지 마련하기도 한다.

각 부처가 매년 국감때 식사 접대비로 지출하는 비용은 최소 1천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위나 건교위 내무위 등 소속의원들이 많은 상임위를 접대해야 하는 부처들의 경우 지난해 국감에서 2천만∼3천만원의 밥값을 지출했다는 후문이다. 한국은행의 경우 지난해 이틀간의 국감기간중 점심과 저녁식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구내식당에서 2만5천원과 2만원짜리 외부식사를 주문해 대접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접대대상이 1백50여명에 달해 1천만원 이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국정감사 경비가 국회예산에 따로 책정돼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상임위가 피감기관으로부터 식사와 향응을 제공받는 것이 관행화한데서 비롯된 웃지 못할 현실이다.

한편 국감으로 인한 국가기밀 노출도 문제다.

지난해 9월30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첫날 일부 언론은 「신속 전략사령부 창설, 야전군사령부 해체」라는 제목의 군관련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그 내용은 군사 2급 비밀로 국방부측에서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비공개를 전제로 보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감현장에서 이를 한 야당의원 보좌관이 내용을 메모, 가까운 기자에게 흘린 것이었다. 이같은 군사기밀 유출이 국정감사기간 내내 계속됐다.

국방부 한 관계자의 전언. 『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는 군사기밀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직접 국방부나 합참 및 각군의 해당부서 장군들이 국방위원들을 찾아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지만 의원이나 그 비서관들의 경우 비밀취급 인가를 받았음에도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중요한 기밀들의 보안을 잘 안 지키는 예가 간혹 있다』

『주제도 없고 결론도 없는 국감, 행정력과 세금을 낭비하는 국감은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게 국감을 담당하는 각 부처 기획실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황유성·문 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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