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가슴 후벼파는 라흐마니노프 2번… 다소 튄 듯한 사라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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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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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내한 공연 ★★★★☆

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이끄는 상트페테르부르크필과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가운데)이 협연했다. 두 사람은 연주 중간중간 눈을 맞춰가며 빼어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이끄는 상트페테르부르크필과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가운데)이 협연했다. 두 사람은 연주 중간중간 눈을 맞춰가며 빼어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첫날 공연이 끝난 8일 오후 11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앞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주최 측이 서울 목동 월촌중의 음악동아리 ‘월촌오케스트라’ 단원 60명을 초대한 것. 아름다운 문화나눔의 현장이었다. 대개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내한 무대 노른자위 자리는 협찬사가 초청한 ‘과시용 VIP고객’이 결석해 군데군데 비어 있기 일쑤다.

러시아 음악은 역시 늦가을이 제격인가. 1802년에 창단한 이 러시아 대표 오케스트라는 지난 두 차례의 방문과 같이 11월에 맞춰 음악의 성찬을 꾸렸다. 랴도프의 앙증맞은 교향시 ‘키키모라’에서 무대는 악기로 가득 찼다. 저현악기가 왼쪽으로 가고 금관이 오른쪽으로 완전히 쏠리는 소위 ‘레닌그라드 편성’이다. 20세기 들어 대부분 오케스트라가 첼로를 오른쪽으로 가져갈 때도 고집스럽게 옛것을 고수했던 전임지휘자 므라빈스키의 발자취다. 유쾌한 러시아 민요가 흘러나왔다. 고희를 넘긴 테미르카노프의 현란한 맨손 지휘는 여전했다.

사라 장이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위해 무대로 나왔다. 현의 트레몰로에 얹히는 독주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음색은 농익을 대로 농익었다. 난삽한 악구들은 완전히 평정되고 기교는 절정에 와있었다. 이미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광장축제에 초대받아 여러 번 만난 거장과의 호흡도 완벽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지나친 자신감은 비브라토의 진폭을 깊고 길게 가져갔고 과도한 몸동작은 음악을 듣기보다는 보는 것에 더 치중하게 만들었다. 핀란드 예르벤페에 있는 시벨리우스의 집 아이누라가 반추되는 2악장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북구의 서정은 ‘미국식 밝음’으로 대체되는 느낌이었다.

콘서트의 절정은 다른 어떤 악단도 범접할 수 없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이었다. 운 좋게도 꼭 10년 전, 이들의 전용홀인 필하모니아홀에서 환상적인 음향으로 같은 곡을 들었던 터라 기대감은 더욱 증폭됐다. 1988년 므라빈스키의 바통을 이어받은 테미르카노프는 선배와 인간적 충돌은 있었을지라도 음악적인 면은 좋은 것만 전수받았다. 직설적 음악어법에 부드러움까지 덧입혔다. 1악장 도입부 더블베이스의 저음은 두텁기가 하늘같다. ‘스케르초’ 악장에서 현악기와 금관의 극명한 좌우충돌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유발했다. 3악장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블롭스크 공원의 자작나무숲을 스치는 삭풍이 정제되지 않고 그대로 전해졌다. 서유럽 오케스트라가 결코 모방할 수 없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직접 파고드는 러시아 악단의 저력이었다.

앙코르로 차이콥스키의 ‘러시안 댄스’가 끝나자 청중은 모두 기립했다. 므라빈스키의 어록으로 감동을 마무리한다. “나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언젠가 음악을 들을 때 마치 벼락이 치는 것과 같고, 해머로 강하게 때리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바로 이렇게 예술이란 강렬해야 한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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