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처녀귀신’ 펴낸 최기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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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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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받던 조선여인의 恨
귀신 이야기로 나타났죠”

최기숙 교수는 “처녀귀신 이야기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대 사람들의 심성체계를 드러낸다”고말했다. 양회성 기자
최기숙 교수는 “처녀귀신 이야기는 조선시대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당대 사람들의 심성체계를 드러낸다”고말했다. 양회성 기자
고전문학 속 어린이 이미지를 분석한 ‘어린이 이야기 그 거세된 꿈’, 환상물을 고전문학의 한 장르로 제시한 ‘환상’, 조선시대 거지와 기생 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문 밖을 나서니 갈 곳이 없구나’…. 최기숙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가 지금까지 펴낸 책이다. 고전문학 속 조선시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해온 그가 또 다른 음지의 이야기, ‘처녀귀신’(문학동네)을 냈다.

18일 오전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여고괴담’ 같은 영화에서도 알 수 있듯 예나 지금이나 한국 귀신의 대표는 처녀귀신”이라며 “‘왜 그럴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기문총화’ ‘청구야담’ 등에 실린 3000여 편의 야담과 고소설 865여 편을 분석했다. 조선시대 야담집은 사대부들이 한자로 창작하고 향유했던 사대부만의 여흥이었다. 최 교수는 “창작자가 남자이다 보니 남자는 죽어서도 가장의 권위를 지닌 조상신으로, 여자는 억울하게 죽은 원귀로 등장한다”며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 역시 당시 사대부들이 흥미를 느끼는 소재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소설 속 자살이야기에도 여성과 남성 사이에 차이가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고소설 속에서 자결을 시도하는 인물의 수는 여성이 128명, 남성이 19명이다. 여성이 자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훼절이나 강제혼 등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것으로, 전체의 53%를 차지한다. 이에 비해 남성은 전체의 63%가 정치적 모함이나 참소, 망국을 비관해 자살했다.

“처녀귀신들은 억울한 일을 겪은 뒤 한을 풀기 위해 귀신이 되죠. 하지만 그들의 말은 ‘귀곡성’으로 표현되는 공포의 대상일 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요.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올바른 심성을 갖춘 남성 관리만이 그들의 말을 듣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귀신이야기가 당시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 귀신들은 대부분 사적인 복수로 원한을 해결하기보다는 관리를 찾아가 법으로 악인을 처벌해 주기를 호소한다. 최 교수는 “창작층이 주로 사대부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선(善)에 대한 믿음, ‘인과응보 사필귀정’에 대한 보편적 믿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이 같은 이야기는 사회의 건강성을 보장해 주는 방편이기도 하다. 소외, 배제돼 왔던 약자와 소수자들이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가 계속해서 귀신이야기 같은 환상물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에서 말할 수 없는 것, 말해지지 않는 것을 꺼내놓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공포물 같은 환상소설은 특히 그 사람, 혹은 그 사회의 그림자와 어둠, 내면을 조명하죠. 문학의 본질과 일맥상통하는 장르입니다.”

최 교수의 다음 연구 주제는 조선시대 수서(壽序·장수한 웃어른의 생신을 축하하는 글)다. 당시 사람들이 ‘올바르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분석하려 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의 상당수는 시대에 따라 맥락을 달리하며 재등장하는 문제입니다. 처녀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가 매년 여름 개봉하는 것처럼 말이죠. 인문학자로서의 제 역할은 그런 고민들에 대해 옛사람들은 어떤 답을 했는지 전달해 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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