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366>從許子之道면 則市賈가 不貳하여 國中이 無僞하여…
맹자가 陳相(진상)의 背師(배사·스승을 배반함)를 꾸짖고 中華(중화)의 도를 버리고 夷狄(이적)의 도로 나아간 것을 비판하자, 진상은 許行(허행)의 도를 따를 경우의 이점을 변론하였다. 위의 부분은 진상의 말을 옮긴 것이다. 許子之道는 곧 許行의 農家者類(농가자류)의
-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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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陳相(진상)의 背師(배사·스승을 배반함)를 꾸짖고 中華(중화)의 도를 버리고 夷狄(이적)의 도로 나아간 것을 비판하자, 진상은 許行(허행)의 도를 따를 경우의 이점을 변론하였다. 위의 부분은 진상의 말을 옮긴 것이다. 許子之道는 곧 許行의 農家者類(농가자류)의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을 배반하고 許行(허행)의 도를 배우는 것을 비판하였다. 곧, 맹자는 증자가 공자의 도덕을 한결같이 숭상한 것과 다르다고 진상을 비난하고 ‘시경’ ‘伐木(벌목)’편의 어구를 인용하여 학문이 진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함을 우려하였다. 이
《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이자 교육이론가, 문학가, 음악가였던 장 자크 루소(1712∼1778)가 탄생한 지 올해로 300년이 된다. 사후에 ‘프랑스혁명의 아버지’ ‘근대 최고의 독창적 천재’ 로 불리며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쳐온 그의 사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루소 탄생 30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배반하고 許行(허행)의 도를 배우는 것을 두고, 증자가 공자의 도덕을 한결같이 숭상한 것과 다르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시경’의 어구를 인용하여 진상의 학문이 진보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함을 우려하였다. ‘出於幽谷, 遷于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배반한 것을 두고, 증자가 공자의 도덕을 숭상한 것과 다르다고 비판하였다. 공자가 별세하자 제자들은 삼 년의 喪期(상기)를 마친 후 돌아가고 子貢(자공)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 삼 년을 더 지낸 뒤 돌아갔다. 그 후 여
맹자에 따르면 공자가 별세하자 그 제자들은 삼 년의 喪期(상기)를 마친 후 子貢(자공)에게 읍례하고 목이 쉴 만큼 통곡하다가 돌아가고, 자공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 삼 년을 산 뒤에 돌아갔다. 그 후 子夏(자하), 子張(자장), 子游(자유)는 有若(유약)이 성인(
![[한자 이야기]<1361>他日에 子夏子張子游가 以有若似聖人이라 하여…](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2/03/08/44601345.2.jpg)
맹자는 陳相(진상)에게 스승을 섬기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별세 후에 행한 일을 이야기했다. 공자가 별세하자 제자들은 삼 년의 喪期(상기)를 마친 후 子貢(자공)에게 읍례를 하고 서로 마주하여 목이 쉴 만큼 통곡하고는 돌아갔으며, 자공은 다시 …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배반한 것을 꾸짖고,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별세 후에 행한 일을 이야기했다. 공자가 별세했을 때, 제자들은 삼 년의 喪期(상기)가 지난 뒤 짐을 챙겨 돌아갔는데 그때 그들은 子貢(자공)에게 읍례를 하고 서로 마주하여 목이 쉴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배반하고 許行(허행)을 따라 배운다고 꾸짖고, 옛날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별세 후에 행한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沒은 사람이 죽는 것을 말한다. 歿이란 글자와 통하여 단순히 죽는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고, 수명대로 살다가
맹자는 陳相(진상)의 스승 陳良(진량)이 남방의 초나라 태생이면서 북쪽 중원으로 가서 주공과 중니(공자)의 도를 공부하여 豪傑之士(호걸지사)라 일컬을 만한 인물이 되었거늘, 진량이 죽자 진상의 형제가 그를 배반하고 許行(허행)을 따라 배운다고 꾸짖었다. 곧, 진량은
“한국 불교를 이해하는 인도인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4세기 고려에 온 인도인 지공 스님 이후 제가 유일할걸요. 허허.” 판카즈 모한 교수(57)는 인도인으로선 드문 한국학자다.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제한국학부의 학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동아시
“이건 ‘아르스남’으로 읽고 ‘사자’라는 뜻이죠. 여기 ‘바르스’는 ‘호랑이’고요.” 2일 오후 7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 한국학관 지하 1층 강의실. 아라비아숫자 ‘3’을 세로로 연결해 놓은 듯한 문자들이 칠판을 채우고 있었다. 암호문 해독 수업 같은 인상을 풍기는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등지고 許行을 따라 배우는 것을 책망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진상의 스승 진량이 남방의 초나라 태생이면서 북쪽 중원으로 가서 주공과 중니의 도를 공부하여 豪傑之士라 일컬을 만한 존재였음을 환기시켰다. 楚産은 楚國(초국)의 태
맹자는 중국의 선진 문명이 이민족의 풍습을 바꾸어 왔지 중국 문화가 이민족에 의해 변화된 적은 없다고 하였다. 이 이하는 유학을 공부하던 陳相(진상)이 스승을 등지고 農家者類(농가자류)의 사상가인 許行(허행)을 따라 배우는 것을 책망하는 말이다. 그런데 맹자의 말은
맹자는 공자가 堯임금과 舜임금을 칭송한 말을 인용하여 요임금과 순임금이 성군으로서 그 덕이 높고 컸음을 말하고, 그렇지만 요임금과 순임금은 즉위한 이후 밭 가는 일 자체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豈無所用其心哉는 ‘어찌 그 마음을 쓰신 바가 없겠는가’라
맹자는 옛 성인들이 백성들을 위해 輔佐(보좌)의 인물을 구하려고 근심하여 천하를 위해 인재를 얻는 仁의 덕목을 실천했다고 했다. 그리고 공자가 요임금과 순임금을 칭송한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굳혔다. ‘大哉라 堯之爲君이여’는 감탄문으로 술어를 도치한 것
맹자는 정치를 담당했던 성인은 백성들을 위해 輔佐(보좌)의 인물을 구하려고 근심했다고 환기하고, 군주로서 지녀야 할 덕목으로 惠와 忠과 仁이 있되 그 가운데서도 천하를 위해 인재를 얻는 仁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맹자는 천하를 남에게 주기는 쉬
맹자는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산업을 담당하는 사람과 역할이 다르며, 성인이자 군주인 사람은 백성들을 위해 輔佐(보좌)의 인물을 구하려고 근심했다고 환기시켰다. 이어서 맹자는 군주로서 지녀야 할 덕목으로 惠와 忠과 仁을 제시하되, 세 덕목의 우열을 가리자면 仁이
조선 후기 실학자 백운(白雲) 심대윤 선생(1806∼1872)의 학문에서 자본주의 위기의 대안을 찾는 학술발표회가 열린다. 백운 선생은 명문가였던 집안이 정치적 풍파로 몰락해 벼슬길이 막히고 경제적으로 곤궁해지자 목반(음식을 담아 나르는 나무그릇)을 만들고 약방을
맹자는 放勳(방훈), 즉 堯(요)의 말씀을 인용해서 요임금이 얼마나 曲盡(곡진)하게 백성을 위해 근심했는지 말했다. 그리고 성인은 백성을 걱정해서 정치와 교화를 행했으므로 직접 밭을 갈 겨를이 없었다고 주지시켰다. 그런데 옛날의 정치는 군주가 직접 백성들을 다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