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김종석/정부 규제 확 풀어라

  • 입력 2002년 7월 4일 19시 05분


어느 국가건 조직이건 구성원에 대한 통제가 강한 곳은 대개 관리자가 구성원들을 믿지 못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관의 민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고, 이것이 정부 규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한 배경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관리들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민간인을 불신하게 되었는가. 우리 정부에는 유별나게 의심이 많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정직성과 성실성에 문제가 있는 사회인가.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후자 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요즘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교통질서만 보아도 단속이 없을 때는 아직도 끼어들기, 갓길운행, 신호 위반을 많이 한다. 눈에 보이는 교통질서가 이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 조세, 교육, 건축 같은 분야의 질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건축 등 무리한 규정 수두룩▼

그러나 이 정직성과 성실성의 문제는 국민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규제와 사회제도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정부 규제를 포함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제도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우대받고 보상받도록 되어 있지 않은 데 문제가 있다.

우리 정부의 규제들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모든 사람들을 일단 잠재적 범법자로 전제하고 만들어져 있다. 수많은 인허가제, 까다로운 등록기준, 복잡한 절차, 엄격한 자격제한 등이 모두 이러한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단 믿어주고 나중에 위반하는 사람을 잡아 엄하게 처벌하는 방식이 아니다. 소수의 잠재적 위법 행위자를 잡기 위해 다수의 정직한 사람들까지도 도매금으로 엄한 감시와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종의 단체기합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정직하고 성실해지도록 유도할 수 없게 된다. 정직하고 성실해 보았자 우대받거나 보상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결국 모두 똑같이 피동적인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규제들은 비현실적인 것들이 많아 지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건축 소방 교육 식품위생 안전 환경 등에 관련된 규제에는 집행하는 사람이나 규제받는 사람이나 어차피 규정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명목상 유지되는 규제가 상당수다. ‘준법투쟁’이 가능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식이든 법을 위반하지 않고는 살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선 요령 좋고 배경 좋은 사람들만 법망을 빠져나가고 정직하고 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본전은커녕 손해를 보게 된다. 어쩌다 걸린 사람은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억울하다는 생각부터 들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많은 규제제도가 정직성, 자율능력, 준법정신을 파괴하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 결과 관리들은 더욱 국민을 불신하고 더욱 강압적인 규제제도를 도입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규제현실이 문제가 많고 획기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데 온 국민이 동의하면서도 정작 규제를 풀자는 논의에 들어가서는 바로 이런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의 해답 없는 논쟁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규제개혁이 잘 안 된 것은 공무원들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피규제자들의 정직성과 자율능력에 대해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이 더 큰 장애요인이었다. 검사 눈에는 피의자만 보이고 의사 눈에는 환자만 보인다고, 평생 한 분야의 규제만 담당하던 공무원에게 그 분야의 기업인이나 민간인들은 대부분 틈만 나면 딴 생각을 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보는 금융회사들, 운수당국이 보는 운수사업자들, 교육당국이 보는 학교재단들, 심지어는 중앙정부가 보는 지방자치단체도 다 마찬가지다.

▼민간의 자율성 확대해야▼

그러나 규제 담당 공무원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민간의 자율능력이나 성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규제를 풀어주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율능력이나 준법정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규제를 풀어야 자율을 실험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민간의 자율능력은 자율화를 통해 얻는 것이지, 결코 규제를 풀어주기 위한 전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초보운전자이기 때문에 사고가 두려워 운전을 하지 않으면 영영 초보운전자일 수밖에 없듯이 시행착오가 두려워 기업과 국민을 계속 규제로 묶어 놓는다면 우리는 영원히 타율적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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