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 지식인 조명 “처음 상받아… 뜻깊고 영광”

  • 입력 2007년 10월 3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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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간행물문화대상 시상식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와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2007 간행물문화대상’ 시상식이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정민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가 저작상을, 출판사 창비가 출판인쇄상,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책 서비스팀’이 독서진흥상, 인문학 전문 서점 ‘인디고 서원’이 특별상을 각각 받았다. 수상자는 상패와 상금 500만 원을 받았다. 수상자들의 소감을 들어봤다.》

▼저작상 - 정민 한양대교수▼

18세기 조선 지식인 조명 “처음 상받아… 뜻깊고 영광”

“여럿이 쓴 책을 포함해 30여 권의 책을 냈지만 상을 받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더욱 뜻 깊고 영광입니다.”

뜻밖이었다. 인문분야의 베스트셀러 저자로 꼽히는 정민(46) 한양대 교수가 저술 관련 상을 받는 것이 처음이라니. 가볍게 상기된 표정의 정 교수는 이번 수상을 “실학이라는 유용성의 코드로만 바라보던 18세기 조선지식인의 재발견에 대한 격려”로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제 저술들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된 실학을 해체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이너리티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많은 관심을 받게 돼 얼떨떨합니다.”

정 교수는 실학의 관점을 떠나 ‘정보의 폭발’이란 관점에서 18세기를 조명해 왔다. 무려 5000여 권에 이르는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등이 조선에 입수되면서 백과전서적 지식의 대향연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제 박사학위 논문이 19세기 문장이론이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만나면서 그들이 19세기 지식인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알토란 같은 지식을 건져 내야 했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처리 능력과 관리 능력이었습니다. 연암이 그런 사고방식의 문을 열었다면 다산은 이를 매뉴얼로 완성시켰습니다.”

그의 저서 ‘미쳐야 미친다’(2004년)가 전자의 변화상을 담아냈다면 ‘다산선생지식경영법’(2006년)은 후자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정보화 혁명을 겪고 있는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과 연결된다.

“18세기는 동서양 모두 새로운 에너지가 충만한 시기였습니다. 19세기 서양과 일본의 비약적 발전은 이 에너지를 폭발시킨 것입니다. 반면 조선에선 세도정치와 쇄국으로 그 에너지가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요. 우리에게도 담론은 있었지만 이를 수용할 채널과 이를 가동시킬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2007년)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가 10여 년간 펼쳐 온 연구 성과를 집성한 저서다.

정 교수는 강명관 부산대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와 함께 한문학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확대한 학자이기도 하다. 백과전서적 18세기 지식인의 문집 속에서 문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도외시됐던 꽃과 새, 그림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면서 원예학, 조류학, 미술사로 연구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 왔다.

“한문학은 작가의 전기 쓰기나 작품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학제적 연구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문헌 자료를 발굴해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우리 그림 속에 등장하는 아이콘의 연원을 밝히는 도상학(圖像學)과 문화사의 영역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출판인쇄상 - 고세현 창비 대표▼

올곧은 출판문화 만들어

“개인적으로 상을 받는 게 쑥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름대로 출판계에 공적을 쌓아 온 창비 출판사를 칭찬하는 상으로 알고 받겠습니다.”

출판인쇄상을 수상한 ㈜창비의 고세현(52·사진) 대표. 수상 소감을 묻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사회와 출판을 위해 초지일관 노력해 온 출판사 식구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창비는 1974년부터 30여 년간 꾸준히 출판사업을 벌여 왔다. 그간 문학 인문 교양 어린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1600여 종의 책을 발행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특히 문예 및 사회에 대한 건전한 비판으로 출판 인쇄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특히 1980년대에는 서슬 퍼런 검열 탓에 고생도 많았다. 고 대표는 “힘든 시기를 어렵게 헤쳐 왔던 과거를 기억하며 앞으로도 올곧은 마음으로 출판사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출판계에는 일부 출판사의 고질적인 편법 운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창비는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겠습니다. 최근 간행물윤리위원회도 청소년 독서운동 등 긍정적인 활동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 출판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독서진흥상 - 김원용 네이버팀장▼

누리꾼을 책과 친구되게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찾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책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웹으로 인해 책과 멀어졌으니 책을 다시 가까이 하게 하는 것도 웹의 책임이죠.”

독서진흥상을 받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 ‘책 서비스팀’ 김원용(사진) 팀장은 “온라인 ‘책 서비스’의 역할은 단지 책 정보를 제공해 책을 파는 것을 넘어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책 서비스’는 책의 가치 조명과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독서운동 단체인 ‘좋은 책 읽기 가족모임’과 함께 2005년부터 산골 어린이들에게 독서 기회를 주는 ‘책 읽는 버스’를 운영하고 있고 산골 지역에 마을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오늘의 책’ 서비스는 매일 좋은 책 한 권을 소개해 누리꾼들의 호응을 얻었다.

네이버 ‘책 서비스’의 특징 중 하나는 책 내용 일부를 미리 볼 수 있다는 점. 김 팀장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 때의 느낌과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 표지나 목차, 내용 요약만으로 접할 수 없는 생생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인터넷에서 단지 책 정보만 검색하지 않고 책을 사는 독자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겉멋보다는 독자에게 충실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한다는 기본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특별상 - 허아람 인디고 대표▼

청소년 독서운동에 전력

“청소년을 위한 꾸준한 독서 운동이 인정을 받은 것 같습니다. 부상으로 주는 상금도 요긴하게 쓸게요, 호호.”

특별상을 수상한 ‘인디고 서원’의 허아람(36·사진) 대표는 목소리가 밝았다. 허 대표는 “청소년과 일하다 보니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산다”면서도 “공익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경제 사정이 어려웠는데 이번 상금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03년 설립한 인디고 서원은 인문학 전문 서점. 청소년 독서문화 발전에 힘을 기울여 왔다. 청소년과 저자의 만남, 수요독서회 등 다양한 청소년 문화행사를 기획 진행해 왔으며,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 ‘INDIGO+ing’도 발간한다. 현재 온라인 회원은 5000여 명. 지속적으로 참여 활동하는 청소년도 80명이 넘는다.

허 대표는 인디고 서원을 만들기 이전부터 청소년 독서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나고 자란 부산에서 1990년 대학생 때부터 청소년을 위한 독서공동체를 이끌어 왔다. 허 대표는 “인디고 서원은 몇 년 안 됐지만 청소년 독서운동은 십수 년을 해 와 이제 청소년은 내 식구”라고 말했다.

허 대표는 “현실 입시교육 아래 청소년들이 주체적인 독서활동을 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면서 “인디고 서원의 꿈을 이해하고 함께해 준 청소년과 학부모가 제일 고맙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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