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빼는 설훈…비판 여론에 검찰로 공 떠넘겨

  • 입력 2002년 4월 25일 18시 32분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이 25일 녹음테이프 입수에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나섬으로써 폭로의 진위를 가리는 일은 이제 검찰 손으로 넘어갔다.

설 의원이 이 문제를 검찰 수사로 떠넘긴 것은 자력으로는 테이프 입수가 불가능해진 만큼 자신에게 쏠리는 ‘무책임한 폭로’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촉구 배경〓설 의원은 한나라당이 자신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고발한 만큼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 자연히 테이프의 존재 여부가 확인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검찰수사를 촉구한 또 다른 이유는 설사 테이프를 구하더라도 조작 시비가 벌어질 것이 뻔한 만큼 그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계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최규선(崔圭善)씨가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 의원을 통해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에게 거액을 건넸는지의 여부인데도 ‘정부기관 개입설’ 등 엉뚱한 방향으로 논란이 번지고 있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양상이라는 게 설 의원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질지는 의문이다. 검찰은 현재 “일단 고소 고발인 조사가 끝난 뒤 수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하지만 전례에 비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검찰 수사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기자간담회에서 “설 의원은 검찰 조사에 따른 사법적 책임과 별도로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최규선씨의 측근은 누구〓설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는 최씨 측근의 신원에 대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테이프를 갖고 있다는 최씨 측근이 여자냐 남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답변을 피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테이프를 갖고 있는 최씨 측근이 최씨의 인척인 이모씨라는 설과 최씨의 여비서였던 염모씨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테이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최씨의 녹음테이프와 자금 등을 관리해온 사람이어서 확실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설 의원과 따로 만난 한 의원은 “최씨가 윤 의원에게 돈을 줬다고 말한 것을 들은 측근은 3, 4명이며 이들은 물증인 테이프를 누가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와 별도로 최씨 측이 설 의원에게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테이프 입수에 실패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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