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장택동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24

추천

안녕하세요. 장택동 논설위원입니다.

will71@donga.com

취재분야

2024-04-13~2024-05-13
칼럼100%
  • [횡설수설/장택동]공직감찰반 부활 논란

    “사정 컨트롤타워나 옛날 특감반 이런 거 있죠? 그런 거 안 하고. 사정은 사정기관이 알아서 하는 거고….” 5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한 말이다. 특감반은 청와대에 있던 공직감찰반의 옛 이름인 특별감찰반의 줄임말이다. “대통령비서실의 사정, 정보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며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공직감찰반을 없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공직감찰반 부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직감찰반은 공직자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렸던 곳이다. 경찰, 검찰, 국세청 등에서 파견된 멤버들이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비리 정보를 수집하고 혐의가 짙으면 수사기관으로 넘겼다. 그 뿌리는 박정희 정부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을 표방하며 1972년 설치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경찰청 조사과로 소속이 바뀌었고 ‘사직동팀’으로 불렸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2003년 청와대 내에 정식으로 특별감찰반이 설치돼 15년간 이어지다 이름이 변경됐다. ▷은밀하게 이뤄지던 감찰반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2018년 말이었다. 당시 특감반원이었던 김태우 검찰 수사관은 ‘민영기업인 공항철도 임직원에 대한 비위 조사를 지시받았다’고 폭로했다.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가 작성한 첩보 보고서 목록 중에는 전직 총리 아들의 사업 현황, 민간은행장 동향 등과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또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무마한 혐의로 나중에 기소되는 등 감찰을 둘러싼 복마전도 벌어졌다. ▷정부는 공직감찰반의 기능을 대통령실 대신 국무총리실에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총리실 산하에는 공직기강을 담당하는 공직복무관리관실이 있는데, 이 조직을 보강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직감찰반 부활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두 조직은 공직자의 비리를 감찰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비슷하다. 공직복무관리관실의 전신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사찰로 물의를 빚은 전력이 있다는 점도 공직감찰반과 닮았다. 감찰은 총리실에서 하더라도 그 내용은 결국 대통령실과 공유될 수밖에 없다. ▷본래 공직자에 대한 감찰은 독립기관인 감사원이 할 일이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가 문제라면 6년 넘게 공석인 특별감찰관을 임명하면 된다. 여기에 대통령 친인척 및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있다. 공직비리 척결에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 있는 기관들을 활용하는 것이 먼저다. 기껏 없앤 옥상옥(屋上屋)을 소속을 바꿔 다시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2-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장택동]‘양날의 칼’ 한동훈의 말

    최근 광화문의 한 서점에 들렀더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발언을 묶은 책이 진열대의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한 장관이 했던 말을 손으로 필사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책도 나란히 팔리고 있다. 취임한 지 7개월 지난 현직 장관의 어록이 출판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한 장관의 말이 그만큼 세간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 장관은 전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한직을 전전했다. 그랬던 그가 올해 4월 일약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초기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에서 조명을 받았지만, 이후 한 장관이 더욱 주목받게 된 데에는 말의 힘이 컸다. 한 장관은 법적으로 복잡한 사안을 쉽고 선명하게 표현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검찰을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범죄자뿐”이라고 말했다. ‘검수완박법’ 등을 통해 검찰의 권한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항변이다. 전 정부에서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없앤 것을 놓고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범죄에 가담할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의 귀에도 쏙 들어오기 때문에 호소력이 높다. 이런 언변에 공격성이 가미되면 파괴력이 배가된다. 한 장관은 상대의 발언이나 전력을 끌어와서 반격하는 화법을 종종 구사한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박범계 의원이 현 정부에서 검찰총장 임명 전 검찰 인사가 이뤄진 부분을 지적하자 “의원께서 장관으로 있을 때 검찰 인사를 (총장을) 완전히 패싱하시고”라고 맞받아치는 식이다. 듣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본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는 대응 수위가 한층 높아진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에 대해선 “매번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한 장관이 마약 수사를 강조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태원 참사의 한 원인이 됐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황운하 의원을 향해서는 “직업적인 음모론자”라고 쏘아붙였다. 두 의원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런 거친 표현은 정치의 영역에서는 쓰일지언정 각료의 언어로서는 부적절하다. 각료는 정부의 부처를 대표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개인인 정치인과 다르다. 특히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의 언행은 신중을 요한다. 할 말을 하더라도 절제된 방식이어야 한다. 더욱이 한 장관은 시민들에게 현 내각의 핵심 인물로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 장관의 말 한마디가 검찰과 법무부, 나아가 정부 전체에 대한 여론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한 장관이 최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문재인 전 대통령 조사 가능성을 놓고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의미의 통치 행위라는 것은 민주국가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아슬아슬하다. 원론적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말 속에 뼈가 담겨 있다. 수사상 필요에 따라 검찰이 결정하면 될 일인데, 한 장관이 언급함으로써 야당에 “사실상 수사 지휘”라는 비판의 빌미를 준 결과가 됐다. 고위 검사 출신의 한 중견 법조인은 “한 장관의 발언을 들으면 시원하지만 이제 톤을 조절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평했다. 말에는 양면성이 있다. 가시 돋친 말은 상대를 다치게 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 십상이다.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는 중국 중세의 지략가 풍도(馮道)의 지적은 지금도 새겨들을 만하다. 혀는 자신의 몸을 베는 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하버드대 첫 흑인 총장

    “부모님은 제게 기술자나 의사, 법률가 중 하나가 되라고 하셨죠. 이민자의 자녀라면 누구나 듣던 얘기였을 거예요.” 15일 연단에 선 클로딘 게이 미국 하버드대 신임 총장 내정자(52)는 자신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의 일을 회상했다. 아이티 출신 흑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온갖 풍파를 겪은 부모가 딸에게 인종차별이 덜한 직업을 추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기대와 달리 학자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하버드대 386년 역사상 첫 흑인 총장으로 지명됐다. ▷게이는 1992년 스탠퍼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 대학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의 나는 총장이 되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고 게이는 회고했다. 실제 하버드대가 1636년 개교한 이후 2006년까지 배출된 27명의 총장은 전원 남성일 정도로 여성에게는 ‘넘사벽’이었다. 2007년 드루 길핀 파우스트 교수가 첫 여성 총장으로 선출되면서 비로소 유리천장이 깨졌다. 또 학부를 하버드대에서 졸업하지 않은 총장은 지금까지 단 2명일 정도로 순혈주의 전통도 강했다. ▷인종의 벽은 더 높았다. 노예제 금지 전 하버드대에서는 노예 70명이 잔일을 도맡아했다. 하버드대가 기틀을 잡을 수 있도록 기부금을 낸 이들은 노예 노동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사업가들이었다. 하버드대는 자체 조사를 거쳐 올해 4월 이런 과거사를 반성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노예제의 유산을 바로잡기 위해 1억 달러의 기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게이가 총장으로 선출된 데에는 이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미국 학계에서 흑인이 진입하기 어려운 곳은 하버드대만이 아니다. 전체 대학 교수 가운데 흑인은 7%에 불과하고, 흑인이 총장을 맡은 곳은 10% 수준이다. 특히 북동부 지역 8개 명문대를 가리키는 아이비리그에서 흑인 총장이 배출된 것은 2001년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 총장이 유일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이런 장애물들을 모두 이겨낸 게이 내정자를 향해 하버드 내에서 “다양성과 우수함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 ▷내년 7월 총장으로 취임하는 게이 앞에는 난제가 놓여 있다. 미 대법원은 하버드대 등에서 학생 선발 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이 위헌인지 여부를 내년 상반기에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게이 내정자는 인터뷰에서 “위헌 결정이 나더라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지만 구체적 방안은 마땅치 않다. 미국이 자랑하는 명문대에서 인종 문제가 여전히 이슈가 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이 내정자가 해법을 찾을 적임자일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1139채 ‘빌라왕’의 죽음

    10월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이던 40대 김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무려 1139채의 빌라와 오피스텔을 보유한 ‘빌라왕’이었다. 그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방식으로 엄청난 규모의 빌라를 사들였다. 하지만 세입자 수백 명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찰의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김 씨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받아내기가 더 막막해졌다. ▷전세를 얻을 때 기본적인 안전조치는 확정일자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등기부등본을 살펴봐도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 등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했다면 세입자로서는 그 나름대로 철저하게 대책을 세운 셈이다. 김 씨는 62억 원의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지만, 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 200여 명은 보증금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 씨의 사망으로 상황이 복잡해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보험 가입자에게 먼저 보증금을 준 뒤 집주인에게 소송을 걸어 돈을 받아낸다. 그런데 집주인이 사망하고 상속받을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소송 대상이 없으므로 보증금도 지급하지 않는다. 보험에 든 세입자라도 상속 문제가 정리될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더욱이 보증보험 미가입자들은 살던 집이 경매를 통해 낙찰돼야 보증금을 받을 수 있어 사정이 더 딱하다. ▷문제는 김 씨처럼 여러 채의 빌라를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빌라 3400여 채를 구입해 전세 사기를 벌이다 9월 구속된 권모 씨 일당은 ‘빌라의 신(神)’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도권에 100채 이상의 빌라를 가진 사람이 30명이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대부분 갭투자로 빌라를 매입했고, 정상적인 임대업자가 아닌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잖다.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전세 사기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신축 빌라는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워서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젊은층이 적정가보다 비싸게 전세를 얻는 경우가 많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빌라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전국 평균 82.2%에 달한다.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제대로 받기 어려운 ‘깡통 전세’가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 사기까지 판을 치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서민들이 늘어나게 된다. 엄중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전세 계약을 맺기 전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부터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빌라 전세 시장이 사기꾼들의 놀이터가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2-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獨 극우 쿠데타 음모

    지난해 1월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에는 극우 단체 큐어논(QAnon) 신봉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의원들을 체포해서 처형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며 시위를 주도했다. 독일에서도 6일 의회를 점령하고 총리를 살해하겠다는 음모를 꾸민 극우 세력 일당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큐어논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미 의사당 난입 사건을 모델로 삼아 쿠데타를 계획했다고 한다. ▷9월 독일 수사당국에 ‘극우 세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익명의 제보가 접수됐다. 검찰과 경찰은 ‘그림자(Shadow)’라는 작전명 아래 은밀하게 용의자들의 통화 내역과 온라인 채팅을 추적했다. 그 결과 이들이 ‘X데이’를 정해 의회와 발전소 등을 무력으로 빼앗고, 혼란을 부추겨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세운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 정부는 6일 경찰 3000여 명을 투입해 130여 곳을 동시에 급습한 끝에 25명을 체포했다. ▷쿠데타 시도의 주축 세력은 ‘제국 시민’이라는 극우 집단이다. 1871년 독일 통일 이후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까지 존재했던 ‘제2제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른 극우 세력인 네오나치와 구분된다. 1980년대부터 존재하던 ‘제국 시민’이 과격해진 것은 미국에서 건너온 큐어논의 음모론이 접목되면서부터다. 현재의 정부는 독일 정보기관이나 서방 정부 등 딥스테이트(숨은 권력집단)가 쥐고 흔드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므로 속히 타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이들이 무력 사용을 철저하게 준비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직 공수부대 지휘관, 특수부대 대령 출신 등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 적어도 15명이 군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인물들이다. 경찰이 수색한 장소들 가운데 약 50곳에서 무기가 발견됐다. 총과 탄약, 테이저건, 석궁, 칼 등 종류도 다양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과 언론인 18명의 명단도 발견됐다. 쿠데타가 실행됐다면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이다. 독일 정부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이번에 쿠데타를 막아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경제위기를 틈타 앞으로 극우 집단이 세력을 확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1923년 봉기했다가 실패한 히틀러가 10년 뒤 집권한 것도 인종 우월주의 등을 앞세워 대공황으로 흉흉해진 민심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근래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 극우 세력이 약진하는 이유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극단주의 세력은 결국 민생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에게 더 큰 부담만 남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삶이 팍팍하더라도 그들의 달콤한 말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2-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불붙은 中 백지 시위[횡설수설/장택동]

    2020년 7월 6일 홍콩 중심가 IFC몰에 모인 시민들이 조용히 흰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같은 달 1일 홍콩보안법이 발효되면서 반중 구호가 적힌 피켓만 들어도 처벌받는 일이 속출했다. 표현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긴 홍콩 시민들이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백지 시위를 선택한 것이다. 2년여가 흐른 지금, 이번엔 중국 전역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4일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화재로 10명이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방역 때문에 아파트가 봉쇄돼 있어서 진화가 늦어졌다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됐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제로 코로나에 피로감이 누적돼 있던 중국인들은 크게 동요했다. 상하이의 위구르인 거주지에서는 26일 밤부터 수천 명이 봉쇄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수도 베이징을 비롯해 우한, 청두, 광저우, 난징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집회가 열리면서 중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공안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고 무차별 구타를 가했다.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대학을 중심으로 시작된 백지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주민들이 속속 가세하고 있다.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백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는 이유에서다. SNS에는 #백지혁명’ ‘#A4혁명’ 등 해시태그도 퍼지고 있다. 체코의 벨벳혁명, 조지아의 장미혁명처럼 민주화 시위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트위터에는 “카타르 월드컵 관중들이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으로 백지를 들어 달라”는 글도 올라왔다. ▷실제 이번 시위는 반정부 시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진핑은 퇴진하라” “투표를 원한다” 같은 노골적인 구호도 나왔다. 제로 코로나 정책 등의 영향으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목표치인 5.5%에 한참 못 미치는 3%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중국 코로나 신규 감염자는 최근 닷새 연속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칫 경제도, 방역도 모두 실패하는 일거양실(一擧兩失)의 위기 상황이다. ▷시 주석은 지난달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권력 집중을 위해 사회 통제를 강화하면서 정작 주민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졌다. 지금 그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관건은 향후 당국이 시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1989년 톈안먼 시위의 주역인 왕단은 “시위를 무력 진압하거나 발포한다면 세상을 바꿀 만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 지도부가 민심을 외면하고 강경 일변도의 대응을 고집한다면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될 수도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1-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문 닫는 GM 부평공장

    1962년 우리나라에 운행 중인 차량은 6만여 대에 불과했다. 현재 2500만 대가 넘는 차량이 등록돼 있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나마 폐차된 외제차를 분해한 뒤 부품을 다시 조립한 허접한 차량이 많았다.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5년 안에 국산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한 전초기지로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 새나라자동차 공장을 설립했다. 1962년 8월 문을 연 이 공장이 현 한국GM 부평2공장의 모태가 됐다. ▷그동안 부평공장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새나라자동차가 문을 닫은 뒤에는 신진자동차가 부평공장을 운영했다. 신진자동차 부도 이후 이름을 바꾼 새한자동차를 대우가 인수하면서 부평공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대우자동차가 1986년 부평1공장을 새로 지으면서 기존에 있던 시설들은 부평2공장이 됐다. 프린스, 레간자 등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세단들이 부평2공장에서 생산됐다. 2002년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당시 부평공장은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결국 2005년 GM으로 넘어갔다. ▷자동차업계에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GM 부평공장도 타격을 받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동차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부평공장의 가동이 한동안 중단됐다. 지난해에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부평공장의 가동률을 절반으로 낮추기도 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사 갈등이었다. 한국GM이 2014년 이후 계속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노조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사측과 충돌했다. ▷2016년 한국GM 노조는 임·단협이 진행되는 도중에 싱가포르를 찾아가 GM 본사 경영진을 만났다. ‘해외 원정 투쟁’까지 벌인 것이다. 노조가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한국GM 사장실을 점거한 적도 있다. 2018년에는 임·단협 갈등 끝에 사측이 ‘법정관리 신청’ 카드를 꺼내들면서 파국 직전까지 몰렸다. 한국GM 경영진은 “미국 본사의 시각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부평2공장에 신차 생산을 배정하지 않는 등의 조치를 취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국GM은 26일 트랙스, 말리부의 단종과 함께 부평2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부평1공장은 운영되지만 60년간 명맥을 이어온 ‘원조 부평공장’은 문을 닫게 된 것이다. GM은 근래 ‘테슬라를 누르고 전기차 1위 업체가 되겠다’며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는 ‘부평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GM 본사는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내심 ‘노조 리스크’를 부담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부평공장이 폐허로 남지 않도록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길을 찾아야 한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1-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80억 돌파한 세계 인구

    1970년대 중반 인도에서는 경찰이 마을을 봉쇄한 뒤 주민들을 끌고 가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정부는 이들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행했다. 1975년에만 600만 명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인구가 폭증하며 6억 명을 넘어서자 가혹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둘만 낳자”는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지만 매년 1000만 명 이상씩 인구가 늘어난다. 내년에는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인구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15일 다미안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났다.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돌파한 순간이다. 1974년 40억 명을 넘어선 지 48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세계 인구는 2080년경 104억 명을 기록한 뒤 2100년부터 줄어들 것으로 유엔은 예측한다. 하지만 의료 수준과 농업 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인구 증가 속도가 식량 증산보다 빨라 지구에 종말이 올 것’이라던 맬서스의 예측도 이런 변수들을 고려하지 못해 빗나갔다. ▷근래 세계 인구 증가는 저개발 국가들이 주도하는 추세다. 인도, 나이지리아 등 8개국이 그 중심에 서 있다고 유엔은 분석한다. 지역적으로는 아프리카의 인구 성장세가 가파르다. 현재 11억 명 선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인구는 2050년까지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높은 출산율과 보건 수준 개선이 맞물리면서 영아 사망률은 낮아지고 기대수명은 높아져서다. 이들 국가에서는 늘어나는 인구를 경제가 감당하지 못해 빈곤층이 양산되는 상황이다. ▷생산이 인간의 노동에만 의존했던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구가 곧 국력이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경제에서 인구 규모는 중요한 요소다. 출산율 저하는 인구 고령화로 이어져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인구 증가보다 ‘인구 절벽’을 더 걱정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30여 년간 강력한 ‘한 자녀 정책’을 실시했던 중국도 인구가 정체되고 고령자의 비중이 늘어나자 출산을 장려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꿨다. ▷인구 증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지구촌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나아진 결과 사망자보다 출생자가 많아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의 자원을 더 빨리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할 위험성은 더 높아졌다. 국가 차원에서는 경제와 국방에 필요한 규모의 인구를 보유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보건과 복지 역량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 국가의 존망이 좌우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1-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양파껍질’ 용산구청장[횡설수설/장택동]

    “참사 충격과 트라우마로 경황이 없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행적에 대해 용산구가 내놓은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용산구는 박 구청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8시 20분에 한 번, 9시 반경에 또 한 번 참사 현장 인근 퀴논길을 둘러봤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실제론 사고 전에는 한 번도 순찰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말을 뒤집었다. 박 구청장의 행적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은 이뿐이 아니다. ▷용산구는 참사 당일 오후 11시부터 박 구청장이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했다. 하지만 오후 11시 반 무렵 박 구청장이 구청이 아닌 참사 현장 근처에 있었던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또 박 구청장은 사고 이틀 전 구청에서 열린 ‘핼러윈 긴급대책회의’에 불참했다. “부구청장이 관례대로 주재했다”는 게 박 구청장의 설명이다. 그런데 용산구가 핼러윈 대책회의를 열었던 것은 2020, 2021년에는 모두 구청장이 주재했다. 앞뒤를 따져보지 않은 채 전례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 구청장이 참사 당일 경남 의령에 다녀온 이유도 석연치 않다. 당초 용산구는 “의령에서 축제가 있었고 초청 공문을 받아 다녀온 것”이라고 했다. 마치 지역축제에 공식 참석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박 구청장은 이날 의령군수를 30분 면담했을 뿐이다. 그러자 용산구는 “군수 면담 일정이 잡혀 시제(時祭·음력 10월에 지내는 제사) 참석을 최종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군수를 만나기 위해 차로 5시간 거리를 달려갔고, 간 김에 집안 행사에 들렀다는 것인가. “하나의 거짓말이 많은 거짓말을 낳는다”란 서양 속담이 떠오른다. ▷박 구청장이 참사 당일 오후 9시 반경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이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인파가 많이 몰려 걱정된다”는 메시지를 올린 것도 상식 밖이다. 구청과 경찰·소방에 사고 위험을 알리는 대신에 용산 지역구 의원인 권 장관에게만 연락한 것이다. 또 그는 행안위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라면서도 “마음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지자체장은 주민 안전에 도의적 책임이 아니라 실질적 책임을 지는 자리다. 어떻게든 처벌을 모면하려는 심산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박 구청장을 7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한 데 이어 11일 출국금지했다. 핼러윈을 앞두고 안전사고 예방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은 이유 등이 중심 수사 대상이다. 박 구청장이 이 사건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직에서 물러나게 되지만 현재로선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다만 형사 처벌과는 별개로 이미 공직자로서의 품위와 신뢰를 잃은 박 구청장이 설 자리가 있는지 의문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봉화 광산의 기적 [횡설수설/장택동]

    정호승 시인이 강원도의 한 탄광에서 작업 중이던 광부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그건 땅 위의 직업을 갖는 거지예. 땅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잘 모릅니더.” 그만큼 광산 작업은 힘들고 위험하다. 한 번 갱도에 내려가면 먼지로 가득 찬 좁고 깊은 지하에서 가쁜 숨을 참아가면서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이보다 더한 것은 자칫하면 갱도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공포다.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경북 봉화의 한 아연광산 갱도 안으로 모래와 흙이 쏟아졌다. 지하 30m와 90m 지점에 있던 5명은 빠져나왔지만 가장 깊은 140m 지점에서 일하고 있던 조장 A 씨(62)와 보조 작업자 B 씨(56)는 9일 동안 구조되지 못했다. 이들은 지하 170m 지점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대는 옆 갱도를 통해 내려간 뒤 진입로를 뚫어나갔다. 당초 사흘이면 매몰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단단한 암석이 많아 작업 속도가 늦어졌다. ▷구조대는 이들이 있을 만한 곳까지 관을 뚫는 작업도 병행했다. 내시경 카메라와 음향탐지기 등을 이용해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음식과 약품 등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가족들은 “힘들겠지만 힘내라”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손편지를 써서 관을 통해 내려보내기도 했다. 어두운 지하에서 내시경으로 볼 수 있는 범위가 10m 안팎에 불과해 두 사람을 찾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통상 매몰 사고에서 골든타임을 72시간으로 본다. 하지만 물과 공기가 충분하면 구조 가능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 2010년 칠레 산호세 구리 광산에서 33명의 광부들이 매몰됐다가 69일 만에 모두 생환하는 ‘세기의 기적’이 벌어졌다. 구조대가 지하 700m까지 드릴로 구멍을 뚫어 생필품을 공급했고, 광부들은 가족을 생각하며 긴 시간을 견뎌냈다. 한국에서도 1967년 충남 청양 구봉금광에 갇힌 광부 김창선 씨가 16일 만에 구조된 사례가 있다. 그는 “갱도 한편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셨다”고 했다. ▷다행히 봉화 광산에 매몰된 두 사람은 물 10L와 커피믹스 등을 갖고 들어갔고, 갱도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4일 오후 11시경 마침내 두 사람 모두 걸어서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 모두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고 한다. 가족들은 “믿어지지 않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구조대의 노력과 가족들의 염원, 국민의 응원이 함께 어우러져 이뤄낸 ‘봉화 광산의 기적’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1-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감사원 독립, 지원군은 없다 [오늘과 내일/장택동]

    “하느님과 왕 중 어느 한쪽을 거역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12세기 영국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를 맡게 된 토머스 베킷이 한 말이다. 왕 헨리 2세는 교회를 장악하려고 가장 총애하던 신하 베킷을 대주교로 임명했다. 하지만 베킷은 성공회의 책임자가 된 이상 왕의 뜻을 받들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베킷은 결국 헨리 2세 측 기사들에게 살해됐다. 이회창은 회고록에서 “감사원장으로 가면서 베킷의 이 말을 머리에 떠올렸다”고 썼다. 감사원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대통령과 척을 질 각오를 했다는 취지다. 실제로 1993년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청와대의 압력에 굽히지 않고 율곡 사업, 평화의댐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감사를 강행했다. 성역으로 여겨졌던 청와대, 안기부, 군도 감사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가 재임했던 시기에 감사원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에는 별 이견이 없다. 감사원은 사정기관 중에서 규모가 작은 기관이다. 전체 직원 수는 1000여 명에 불과해 검찰(약 1만 명)이나 경찰(14만 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감사의 대상은 공직기관과 공직자로 한정되고 압수수색이나 체포 등 강제적 조치도 사용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어느 정권이든 감사원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은 공직사회를 장악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성기지만 넓은 그물을 칠 수 있다. 검경에서는 공공기관이나 공직자의 비위가 적발되더라도 범죄가 성립되지 않으면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지만, 감사원에서는 징계를 통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더욱이 정권 입장에서는 곧장 수사에 착수하기에 껄끄러운 정책·행정적 사안이나 공직 비리에 대해 감사부터 시작하면 부담이 적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감사원법은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명시함으로써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검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검찰청법 규정보다 한결 뚜렷하다. 반면 대통령은 감사원장, 감사위원,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직에 대한 임명권을 갖고 있다. 또 감사원법에는 “감사 결과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에 관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돼 있다. 감사원이 각별한 각오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 현 감사원의 모습은 위태롭다. 정권이 바뀐 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전 정부와 관련된 현안에 대한 대대적 감사를 진행하는 것만 해도 중립성에 의심이 제기될 만하다. 그런 상황에서 최재해 원장은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했고, 유병호 사무총장은 대통령실 수석에게 “오늘 또 해명자료 나갈 겁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감사원은 최 원장의 발언에 문제가 없고 유 총장의 소통은 정상적인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국민이 그렇게 믿어주겠나. 앞으로도 대통령이나 야당이 감사원 독립의 지원군이 되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이 아닌 독립기관으로 만들자는 의견도 있지만 개헌 사안인 데다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다. 감사원의 독립성은 누가 쥐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29년 전 이회창의 감사원장 취임사에 담긴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 “독립의 지위를 명실상부한 자리로 만드느냐, 아니면 형해화한 자리로 만드느냐는 오로지 우리들 자신에 달려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시진핑 파면” 현수막

    1989년 6월 5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탱크가 들이닥쳤다. 중국 지도부가 시위를 무력 진압하기로 결정하고 군을 투입한 것이다. 이때 흰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성이 탱크 앞을 막아섰다. 이후 그는 ‘탱크맨’으로 불리며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상징이 됐다. 30여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베이징 시내의 고가도로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건 남성이 등장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탱크맨에 빗대 그를 ‘브리지(bridge·다리)맨’으로 부르며 응원하는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다. ▷중국에서 최고 지도자를 비판하려면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2019년 7월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사퇴하라’는 피켓 시위를 벌인 시민운동가 왕메이위는 투옥 2개월여 만에 숨졌다. 시민단체와 유족은 그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2020년 1월 ‘시 주석은 물러나라’는 글을 쓴 법학자 쉬즈융은 비공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에게는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인 국가권력 전복 혐의가 적용됐다. ▷13일 베이징 쓰퉁차오(四通橋)에는 2장의 현수막이 걸렸다. 한 장에는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인 시진핑을 파면하라”고 쓰여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영수(領袖) 말고 선거권을 요구한다”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남성은 펑짜이저우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해 왔다고 미국의소리 방송이 전했다. 중국 당국은 즉각 인터넷 단속에 나섰다. SNS 위챗에 이 사건과 관련된 사진이나 글을 올린 계정 60만 개가 폐쇄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당 대회를 사흘 앞둔 예민한 시점에 벌어진 돌발 시위에 중국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흉흉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선전시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7월 정저우시에서는 지역 은행들이 부실화되면서 예금을 찾지 못하게 된 3000여 명이 시위를 하다 보안요원들과 충돌했다. 집회를 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중국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1989년 2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덩샤오핑은 “중국은 안정을 필요로 한다. 1년 365일 시위만 하면 어떻게 경제 개발을 계속할 것인가”라고 했다. 국민을 통제할 필요가 있고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뒤 톈안먼 시위가 시작됐고 끔찍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장기 집권에 나선 시 주석은 첨단 정보기술(IT)까지 동원해 사회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 민심을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10-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미진단 감염 1000만 명”

    영국 정부는 7월 헌혈자 1만3000여 명의 혈액을 검사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 항체를 갖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국민의 73.4%가 감염을 통해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이 중 절반이 넘는 38.8%는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영국 인구를 감안하면 2600만 명 이상이 코로나에 걸리고도 제대로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보다는 적지만 한국에서도 미확진 감염자가 1000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20년 9월 정부가 발표한 한국인의 항체양성률은 0.07%에 불과했다. 1만 명 중 7명만 코로나 항체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립보건연구원의 23일 발표를 보면 항체양성률은 97%를 넘었다. 약 2년 동안 항체를 가진 사람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항체가 있다고 해서 감염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낮추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오늘부터 실외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되는 등 코로나 출구 전략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대목도 눈에 띈다. ‘숨은 감염자’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감염에 의해 항체를 갖게 된 사람의 비율은 57.65%였다. 그런데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전체 국민의 38.15%다. 그 차이인 19.5%포인트는 실제로는 감염됐지만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증상이 없거나 자가진단키트 검사에서 확인되지 않아 넘어간 경우는 어쩔 수 없더라도 확진자가 되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은 문제다. ▷한국은 백신 접종률이 높은 편이지만 여전히 100명 중 12명은 한 번도 백신을 맞지 않았다. 변이가 거듭되면서 코로나에 한 번 걸렸어도 다시 감염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격리되지 않은 채 활동하는 감염자가 많아지면 확진자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1주일 평균 인구 100만 명당 신규 확진자 수를 보면 한국이 대만, 브루나이, 슬로베니아 등에 이어 8번째로 많다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오미크론이 초기 코로나에 비해 덜 독한 것은 사실이다. 2020년 초 코로나 1차 유행 당시 2.1%에 이르렀던 치명률이 올여름 6차 유행에서는 0.05%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언제라도 새 변이가 발생할 수 있고, 보건당국은 겨울 재유행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아프면 쉬고 밀집한 곳에서는 마스크를 쓴다는 기본 방역마저 손을 놓기에는 이르다.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 종식을 선언할 때 우리나라만 뒤처지는 일은 없어야겠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9-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등도 위태로운 일본” [횡설수설/장택동]

    ‘세계 제일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라는 말에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환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지켜본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걸 교수가 1979년 쓴 책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당시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고 미국에서는 “일본을 배우자”는 열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됐다. 일본 경제가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준 지 이미 오래고, 3위를 지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됐다. ▷올해 들어 엔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근래 1달러에 140엔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올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3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하고, 4위인 독일과 비슷한 규모가 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9일 보도했다. 한때 전 세계 GDP의 15%를 차지했던 일본 경제의 점유율은 4% 아래로 줄어들게 된다. 2000년 세계 2위까지 올랐던 1인당 GDP는 지난해 28위로 떨어졌고, 8월 일본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암울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일본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약 50년간 선진국의 지위를 누렸지만 이제는 거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오기 직전”(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일본은 쇠퇴도상국이자 발전정체국”(데라사키 아키라 일본 정보통신진흥회 이사장) 등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청나라 말기 같다”고 비유한 학자도 있었다. 변화를 거부하다 쇠락의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본 사회는 정체돼 있고 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팩스와 도장으로 상징되는 아날로그식 행정을 바꾸기 위해 지난해 디지털청까지 신설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30%에 가까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데다 총인구는 13년째 감소했다. 아베노믹스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기술 혁신보다는 엔저에 기대 수익을 창출하는 데 익숙해졌고,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간 수준으로 떨어졌다. ▷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 주가와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 침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호황일 때 거품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대가를 오랫동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사례를 거울삼아 쉼 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한국의 앞에도 긴 내리막길이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9-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트럼프보다 더한 바이든

    “공화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공허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외톨이였다. 동맹국과 적국 모두 트럼프 리더십을 무시하고 비웃었다.”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집에 나온 내용이다. 트럼프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바이든을 보면서 그가 당선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일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국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바이든 취임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뒤통수를 맞았다’는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근래 바이든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사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전기차와 반도체를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압박하고 있고, 15일에는 중국과 관련 있는 외국 기업들이 반도체, 바이오 등 분야의 미국 기업을 인수합병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높여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트럼프의 정책에 비해 효과가 직접적이고 파급력이 크다. 중국을 넘어 한국과 유럽 등으로 불똥이 번지고 있다. ▷집권 초 바이든의 외교 전략은 트럼프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듯 보였다.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민주 진영 110개국 정상들을 모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트럼프가 추진했던 주독 미군 감축 계획도 중단시키는 등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트럼프 시대에 의미가 퇴색했던 동맹, 인권 같은 단어들에 다시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미국의 국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취임 7개월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한 것이 단적인 예다. 탈레반의 복귀로 인권 악화가 뚜렷하게 예상됐음에도 바이든은 강행했다. 1990년대 인종 청소가 자행된 보스니아 내전에 미국 정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던 그였지만 ‘의원 바이든’과 ‘대통령 바이든’은 달랐다. ▷미 언론에선 “트럼프는 말로 했지만 바이든은 행동으로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내에서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져온 개념이다. 트럼프가 이를 전면에 앞세우면서 브랜드화했을 뿐이다. 오히려 정치 초보였던 트럼프는 두서없이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여 실제 효과는 크지 않았다. 반면 6선 의원 출신에 외교가 주특기인 바이든은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진행하고 있다. ‘조 아저씨(Uncle Joe)’의 웃음 뒤에 가려진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이런 고수를 상대하기 어렵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9-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통령실 ‘군기 잡기’ [횡설수설/장택동]

    “모든 보고는 내게 먼저 하라.” 2017년 7월 취임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전 직원을 소집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4성 장군 출신의 켈리는 파벌 간의 암투와 보고체계 붕괴로 혼란스럽던 도널드 트럼프 초기 대통령실의 기강을 잡기 위해 투입된 소방수였다. 그는 실세로 평가받던 백악관 공보국장을 내쳤고, 대통령의 딸과 사위까지 먼저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가 근무했던 1년 반이 트럼프 시절의 백악관에 그나마 질서가 유지됐던 때였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실의 기강이 해이해지면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나서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비서관들의 ‘새만금 헬기 유람’으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직원 조회를 주재하면서 “(대선 공로에 대한) 보상의 유효기간은 어떤 경우는 6개월, 어떤 경우는 1년”이라고 경고했다. 이명박 정부 정정길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직원의 성폭행 혐의 등으로 어수선했던 2009년 직원회의를 소집해 “작은 실수 하나도 국민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며 기강 잡기에 나섰다. ▷김대기 비서실장이 13일 첫 직원 조회를 연 것도 흐트러진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대규모 감찰 및 업무평가를 통해 행정관 및 행정요원급 직원 50여 명을 교체했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통령실 실무진을 대거 교체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내부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 실장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짱돌”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쓴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반부터 대통령실의 기강이 흐트러졌다는 것은 대통령실 첫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감찰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윤핵관의 비서들로 가득 찼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여권 핵심 인사들의 사람 심기가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지인의 아들, 김건희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전 직원 등이 대통령실에 근무해 ‘사적 채용’ 논란도 있었다. 인사 라인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쳐 채용한 것인지 의문이 여전하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실에서 민정수석이 폐지되면서 공직기강비서관은 비서실장 직속으로 바뀌었고, 인사검증은 법무부로 넘어갔다. 오랫동안 유지돼온 시스템이 바뀐 만큼 관련 업무에 공백이 생길 여지가 있다. 또 수석비서관 이상에 대한 감찰을 강화하려면 특별감찰관 임명이 필요한데, 대통령실과 국회 간에 원활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과 개선이 병행돼야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다. 비서실장 혼자서 군기 잡기에 나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9-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빅4에 백인男 없는 英내각

    영국 내각에는 ‘The Great Offices of State(국가 중요 관직)’라고 불리는 4개의 자리가 있다. 내각 구성원 중에서도 특히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총리와 재무장관, 외교장관, 내무장관을 가리킨다. 6일 출범한 리즈 트러스 내각은 이 ‘빅4’를 모두 백인 남성이 아닌 인물들로 채웠다. 영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보수당 소속이면서도 취임 일성으로 “개혁”을 외친 트러스 총리의 승부수다. ▷내각의 2인자로 평가되는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사상 첫 흑인 재무장관이 됐다. 영국인 부친과 시에라리온 출신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제임스 클레벌리 외교장관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에 끊임없이 놀림을 당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출입국 정책 등을 담당하는 내무부를 지휘하게 된 수엘라 브래버먼 역시 아프리카와 인도 혈통이 섞인 비백인 여성이다. 보수층에서는 “주요 직위에 백인 남성의 자리는 없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반면 야당 노동당에서는 이들의 발탁을 놓고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내놨다.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트러스 총리는 물론 세 명의 장관 모두 보수 일색이라는 것이다. 콰텡은 브렉시트와 감세에 적극 찬성했고, 클레벌리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문해왔다. 브래버먼은 학교가 학생들의 성(性)적 지향을 존중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세 사람은 트러스의 당 대표 선거를 지원한 핵심 측근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트러스 총리가 파격 인사를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국에서 백인 인구 비율은 1991년 94%에서 2011년에는 87%로 줄어든 반면 흑인, 아시아계 등은 늘고 있다. 수도 런던은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비백인이고 2016년부터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사디크 칸 시장이 재임하고 있다. 인종 다양성에 관심을 높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 장관을 늘리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 유권자에게 인기가 없는 보수당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다. ▷영국 보수당은 전 세계 보수정당의 원조라고 할 만큼 역사가 길다. ‘토리’라는 정파가 생긴 지는 300년이 넘었고, 보수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으로 활동한 지도 200년 가까이 된다. 그동안 디즈레일리, 처칠, 대처 같은 지도자들은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정치·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을 적극 수용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보수당은 유지돼 왔다. 트러스 총리의 성패는 이런 과거의 교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개선해서 실행할지에 달렸을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9-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장택동]올리가르히 잇단 의문사

    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시장으로 일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중앙 무대로 끌어올려 준 사람은 보리스 베레좁스키였다.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의 상징인 베레좁스키의 후원으로 푸틴은 크렘린에 부국장으로 입성했고 총리를 거쳐 2000년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푸틴이 대통령이 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졌고, 결국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베레좁스키는 2013년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푸틴 시대 올리가르히의 첫 의문사였다. ▷러시아의 최대 민영 석유업체인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 회장이 1일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추락사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그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했다면서 극단적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다 실족한 것이라는 민간 매체의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루크오일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무력 충돌이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비판적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마가노프의 죽음에 러시아 당국의 개입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앞서 4월 러시아 액화천연가스 기업 노바테크 전 부회장이 스페인에서,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 자회사 가스프롬은행의 전 부회장은 모스크바에서 각각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 이어 5월에는 가스프롬 소유 리조트의 임원이 절벽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처럼 올해 들어 올리가르히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잇따르고 있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망 배경에 대한 궁금증만 계속 커질 뿐이다. ▷올리가르히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들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경제와 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대했고 정부와 올리가르히는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푸틴은 “기업인들은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견제하면서 독자적으로 권력을 구축해 나갔다. 이후 최대 부호였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전 유코스 회장이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망명길에 오르는 등 반(反)푸틴 성향의 올리가르히는 축출되고 친푸틴 기업인들만 남았다. ▷푸틴은 KGB와 군대 등 안보·정보를 담당하던 부처 출신의 이른바 ‘실로비키’를 중용해 통치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올리가르히뿐 아니라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 등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암살되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러시아 선거법상 푸틴은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푸틴의 철권통치가 계속된다면 러시아에 의문사의 그림자가 사라질 날은 아직 멀어 보인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9-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홍수에 잠긴 파키스탄[횡설수설/장택동]

    “구조 활동을 위해 내륙에 처음으로 해군을 출동시켰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땅이 작은 바다처럼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셰리 레만 파키스탄 기후변화부 장관이 외신 인터뷰에서 홍수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다.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가량이 물에 잠겼고, 3300만 명이 수해를 입었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늘에서 지옥문이 열렸다”는 절규마저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올봄 최고 5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더위가 끝나자 ‘괴물 몬순(장마)’이 찾아왔다. 강한 빗줄기가 이어졌고 피해가 집중된 신드주에서는 8월에 평년보다 8배 많은 비가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1100명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채의 집이 부서졌다. 경제적 피해는 1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4%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미 물가 급등과 식량난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2억3000만 파키스탄 주민들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파키스탄은 1인당 GDP가 1500달러 정도에 불과한 빈국이어서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 부실하게 지어진 일부 댐과 제방들은 이번 홍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파키스탄의 산들은 대부분 가파르고 나무도 적어서 빗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홍수 피해가 커졌다고 영국 가디언은 진단했다. 파키스탄 적신월사(적십자사)는 “아직 최악의 상황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수인성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키스탄은 2010년에도 큰 홍수로 200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일부 학자들은 2010년과 올해 모두 라니냐(태평양 해수온 이상 현상)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라니냐와 홍수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수증기가 많이 발생해 폭우가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의 기온이 1도 올라가면 남아시아 지역에서 우기에 내리는 비의 양이 5%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59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가운데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몫은 0.4%에 불과하다. 미국(21.5%)이나 중국(16.4%) 등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 기후연구기관 저먼워치가 평가한 기후위험지수에서도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아이티 등 가난한 국가들이 1∼3위를 차지했다. ‘선진국들이 내뿜은 온실가스에 정작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은 빈국들’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공업화의 혜택을 누려온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들의 고통을 마냥 외면해서는 안 된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8-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장택동]꺾이지 않는 트럼피즘의 질긴 생명력

    미국 대선이 끝난 지 1년 반이 넘게 흘렀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에게 대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위스콘신주 하원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결과 취소를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대선 당시 거리에 무인 투표함을 배치해 부재자 투표 용지를 수거한 것이 위헌이라는 주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대선 무효 주장을 또다시 꺼내든 것이다.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에도 절반 이상이 ‘대선이 사기였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기밀자료를 가지고 나왔는지를 놓고 연방수사국(FBI)이 그의 별장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그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압수수색 이후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층의 57%는 ‘오늘 경선이 진행되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지난달보다 오히려 4%포인트 오른 수치다. 요즘 트럼프에게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보도도 있다. 트럼프 수사에 항의하기 위해 중무장한 채 FBI 지부에 진입하려던 남성이 사살되는 등 지지자들은 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트럼프가 심어놓은 포퓰리즘, 이른바 ‘트럼피즘’이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포퓰리즘의 요소들 가운데 특히 ‘편 가르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효율적으로 이용해왔다. 비(非)백인 여성 의원들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쏘아붙이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지지자들은 “진짜 국민”이라고 추켜세우는 식이다. 국민을 둘로 나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짜 국민’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정치를 통해 그는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20년 대선에서 47%를 득표했다. 2024년 대선에 도전한다면 트럼프는 편 가르기 전략을 전가의 보도처럼 다시 한 번 꺼내들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지난달 연설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건 침략”이라고 비난하는 등 예전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공화당의 다른 유력 주자들 역시 트럼피즘에 기대고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트럼프가 출마하지 않더라도 선거전 양상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트럼프 재임 시절부터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극단적인 양극화는 성숙한 민주주의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민주주의의 롤 모델 역할을 해온 미국에도 포퓰리즘과 편 가르기 정치는 이렇게 위협적이다. 한국은 어떨까. 포퓰리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선거를 올해 두 차례 치르면서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성별과 나이, 지역, 소득 수준 등을 기준으로 국민을 나눈 뒤 자기편으로 설정한 그룹을 향해 집중적으로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로 인한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도 모두 말로만 통합을 외쳤을 뿐, 진지하게 치유를 모색하는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포퓰리스트는 자신이 국민을 통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실제 모델은 시민들을 최대한 분열시키는 것”(얀베르너 뮐러 ‘민주주의 공부’)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권은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야당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언제든 포퓰리즘을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 ‘당신만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포퓰리즘을 경계할 때가 온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 2022-08-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