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하정민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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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정민 기자입니다.

dew@donga.com

취재분야

2024-03-31~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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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하정민]러스트벨트 ‘미사일맨’ 귀환… 한국은 맞을 준비 돼 있나

    미국 경제는 내수가 이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기준 개인의 소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68%를 차지했다. 즉, 미 소비자의 편익이 커져야 경제가 성장한다. 소비자 입장에선 미국산에 비해 값싼 해외 상품이 넘쳐나는 게 좋다. 문제는 미 생산자, 특히 백인 노동자 계층이 이 명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데 있다. 그들 또한 한편으론 소비자다. 그러나 이들은 “실업자가 될 판인데 싼 물건이 있어도 살 돈이 없다. 무슨 소용이냐”고 항변한다. 미 제조업 메카였지만 자유무역과 세계화 여파로 쇠락한 공업지대 ‘러스트벨트’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직접 겪은 현실이기에 경제학적 사실을 거론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종의 ‘확신범’이다.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집권 시 통상 정책을 관할할 것이 확실시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주 애슈터뷸라에서 나고 자랐다. 철강업이 발달했던 애슈터뷸라는 1960년대 2만4000여 명이던 인구가 약 3분의 2에 불과한 1만7000여 명으로 줄었다. 본인은 의사 부친을 둔 덕에 평탄한 삶을 살았지만 고향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이웃과 지인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생생히 목격했다. 이런 그는 자유무역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개념이며 중국은 미국의 적(敵)이라고 확신한다. 헐값에 과잉생산된 중국산 제품이 넘쳐날수록 미 노동자의 삶은 나빠지고 이런 식으로 중국 경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미 민주주의 또한 위협받는다는 신념이 투철하다. 저렴한 가격, 자원의 효율적 배분, 규모의 경제 달성 같은 자유무역의 이점은 경제 원서에 나오지 현실은 다르다는 게 한결같은 그의 주장이다. 그가 트럼프의 재집권 시 1985년 ‘플라자합의’를 다시 추진할 것이란 보도가 잇따른다. 당시 일본, 옛 서독 등에 대한 무역적자로 신음하던 미국은 뉴욕 맨해튼의 플라자호텔에서 엔화, 마르크화 등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라고 압박해 관철시켰다. 특히 USTR의 ‘젊은 피’였던 38세의 혈기 왕성한 공무원 라이트하이저는 일본 측 관계자가 초기에 제시한 협상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해당 문건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이 관계자의 면전에 날렸다. 그에게 ‘미사일 맨’이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한국은 플라자합의 당시 의도하지 않은 수혜를 누렸다. 일본과의 수출 경쟁 품목이 많은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상승해 상대적으로 한국산 수출품의 가격이 싸진 덕이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이 ‘제2 플라자합의’를 추진한다면 패권 갈등 및 무역 전쟁 중인 중국, 엔화 가치가 연일 하락 중인 일본은 물론이고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 또한 거센 원화 절상 압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일 무서운 사람이 “내가 해 봐서 아는데…”를 시전하는 이다. 경제적 위용만 놓고 보면 39년 전 일본의 위상은 지금의 중국 못지않았다. 이런 일본을 굴복시켰던 그다. 한국을 얼마나 몰아붙일지 벌써부터 오금이 저린다. 싫든 좋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착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사정 또한 봐주지 않을 게 뻔하다. 극한 갈등과 분열에 빠진 한국이 이런 라이트하이저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지 암담할 뿐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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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개도 버거운데… ‘3개의 전쟁’ 앞에 선 바이든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가능성으로 중동의 긴장이 극한으로 치닫는 가운데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라는 기존 ‘2개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이라는 ‘3번째 전쟁’까지 가시화한 탓이다. 미국의 지속적인 이스라엘 지원에 대해 유권자들의 반대가 적지 않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고정표’로 꼽혔던 집권 민주당 지지자들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대(對)이스라엘 정책의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강한 만류에도 이란 보복을 다짐하고, 가자지구에서의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경 행보 또한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대거 지지했던 미국 내 무슬림계 지지자의 이탈을 부르고 있다. 여기에 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유약하고 늙었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를 파고드는 것이다. ● 바이든, ‘집토끼’ 이탈에 고심 미 CBS 방송과 여론조사회사 유고브가 9∼12일 미 성인 23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하마스 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올 2월 38%보다 5%포인트 낮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전통 지지층, 즉 ‘집토끼’로 꼽히는 청년 및 민주당 지지 성향 유권자의 반발이 일반 유권자보다 컸다. 18∼29세 응답자 중 40%가 “대통령의 이스라엘-하마스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2월(51%)보다 11%포인트 급락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18∼29세 유권자의 전반적 지지율도 같은 기간 55%에서 43%로 12%포인트 하락했다. 민주당 지지 유권자 역시 32%만이 “대통령의 이스라엘-하마스 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10월보다 15%포인트 하락했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따른 미국의 대응을 묻는 말에는 42%가 “이스라엘의 반격을 지원하되 미군 투입은 반대한다”고 했다. 32%는 “아예 개입하면 안 된다”고 하는 등 74%가 미국의 개입에 부정적이었다. 지난해 7월 중동전쟁 발발 후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대거 지지했던 미국 내 무슬림 유권자 중 상당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 편만 든다며 이미 “지지 취소”를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층 유권자까지 이탈한다면 재선 가도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트럼프-볼턴 “바이든 외교 실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란의 공격 당일인 13일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세를 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공격받는 것은 미국이 매우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집권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외쳤다. 트럼프 행정부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은 “미국의 억지 실패를 보여준다”고 공격했다. 야당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에 대한 유화책이 끔찍한 사태를 초래했다”고 동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만류하고 있지만 네타냐후 정권이 보복을 실행한다면 미국은 중동의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을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고스란히 미국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미 의회 지도부와 통화하며 이스라엘 및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안보 패키지’ 예산의 조속한 통과를 당부했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강하게 반대해 난항이 예상된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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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정치의 종교화, 정치인의 제사장화

    “11월 5일은 거짓말쟁이들에게 ‘심판의 날(judgment day)’이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월 대선 유세 중 한 말이다. 자신이 이번 대선에서 이기는 것은 신(神)의 뜻이며 그래야 ‘2020년 대선 사기’ 주장을 믿지 않는 반대파를 응징할 수 있다고 외친다. 종교와 거리가 먼 삶을 산 그가 신을 거론하는 것은 모순적이나 이런 행보가 그만큼 미 보수 유권자에게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도 된다. 그의 핵심 지지층인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그를 ‘메시아’로 여긴다. 신이 구원을 위해 트럼프를 보냈다는 말을 듣노라면 주장의 타당성을 떠나 지금이 영국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온 17세기인지 2024년인지 헷갈린다. 세계 곳곳에서 이처럼 종교를 앞세운 정치인이 득세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주주의, 자유주의 못지않게 현대 사회의 근간으로 꼽히는 ‘정교분리’ 원칙이 위협받고 있다. 19일부터 6주간 치러질 총선에서 3선을 노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의 지도자가 아니라 힌두교 제사장처럼 보인다. 그는 최근 이슬람 사원 터에 건립된 힌두교 사원의 봉헌식을 주재했다. 모디 정권은 무슬림 남성과 힌두교 여성의 결혼 금지도 추진하고 있다. 해당 여성이 결혼 후 남편의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 무슬림계 난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법도 강행했다. 나라 이름도 바꿀 태세다. 영국 식민지배 시절 도입된 ‘인디아’ 명칭을 버리고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인도를 뜻하는 ‘바라트’를 쓰겠다는 것이다. 모디 총리는 이미 일부 공문서에도 ‘바라트’를 썼다. 다종교 다인종 다문화 국가라는 인도의 역사와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처사다. 이 분야의 ‘원조’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 1923년 건국부터 확립된 정교분리 원칙을 2003년 집권 이후 깡그리 무너뜨렸다. 동로마 제국의 유산 ‘아야소피아’ 대성당을 이슬람 사원으로 바꿨고 여성의 히잡 착용, 주류 판매 규제 등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도 속속 도입했다. 나라 이름 역시 바꿨다. 지난달 지방선거 참패로 타격을 입은 그가 핵심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를 통해 지도력을 회복하려고 신정일치 국가로의 전환까지 추진할지 모를 일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집권 내내 인구의 13.5%인 초정통파 유대교도 ‘하레디’에 끌려다닌다. 직업도 없고 세금도 안 내면서 정부 보조금에 기대 유대교 경전 ‘토라’만 읽는 집단이다. 이스라엘은 유대계 정체성 보존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하레디의 병역을 1948년 건국 때부터 면제했다. 지금은 사회 전반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비판이 거세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병력 부족 또한 심각하다. 그런데도 네타냐후 총리는 이들에게 병역을 강요하지 못한다. 집권 기반인 극우 세력과 척을 질까 두려워서다. 종교를 앞세우는 세력의 상당수는 범죄 앞에서도 당당하다. 불법을 저지른 후 “억울하게 희생됐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4건의 형사 기소와 여러 민사 소송에 직면한 트럼프 전 대통령, 뇌물수수 등으로 현직 총리 최초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모두 “죄가 없는데 정치적 이유로 법정에 섰다”고 주장한다. 이런 ‘희생양 호소인’이 많아질수록 법치주의는 길을 잃는다. 이들의 지지자 또한 다를 것이 없다. 지지하는 정치인은 맹목적으로 떠받들고 그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이단과 악(惡)으로 치부한다. 정치인과 국민의 관계가 ‘교주’와 ‘신도’로 변하는 순간이다. 전 세계 76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에 ‘정치의 종교화(religionization of politics)’가 두드러진다는 점이 착잡하다.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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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개의 전쟁, 美대선 전 안끝날 것…트럼프 재선시 방위비분담금 인상 불가피”

    “‘두 개의 전쟁’은 빨라도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끝나기 어렵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하마스 지도부 등 전쟁의 당사자가 모두 미국 대선의 승자를 확인한 후 자신들의 다음 행보를 결정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56)가 현재의 국제 정세를 진단하며 한 말이다. 회의 참석 차 내한한 그는 7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각종 분쟁 등 현재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80년 간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누린 일종의 ‘대가’이자 각국 권위주의 통치자의 장기집권 및 고령화와 관련이 깊다고 진단했다.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를 지키지 않으며 민주주의, 인권 등을 경시하는 푸틴 대통령(72), 네타냐후 총리(75), 시진핑(習近平·71) 중국 국가주석,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70) 등이 장기집권하면서 80여 년간 지켜졌던 국제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는 의미다.크로닌 석좌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승리하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불가피하며 그가 주한미군 철수 등을 다시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공통점은 상대에게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위협’을 이용하는 것이며, 한국에도 이 위협을 가할 것이란 의미다.또한 그는 네타냐후 총리가 의도치 않은 미 대선의 ‘킹 메이커’가 됐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중재에 나선다 해도 ‘강 대 강’를 이어가는 양측 중 어느 한 쪽도 설득하기 어렵고,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날수록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강한 비판에 직면해 대선 국면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크로닌 석좌는 미국 플로리다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조지 부시 전 행정부 시절 미 국제개발처(USAID)에서 일했고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신미국안보센터(CNAS), 미 평화연구소 등의 싱크탱크에서 근무했다. 현재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로 재직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두 개의 전쟁, 미국 대선과 한국 총선을 포함해 전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슈퍼 선거의 해’,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국제 정세의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는 규칙 기반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에 익숙해져 있었다. 냉전이 종식되고는 민주주의가 승리했다는 믿음이 퍼졌다. 이 규칙 기반의 국제 질서가 위기에 처했다. 지금 우리는 독재 정치의 귀환을 보고 있다. 미국이 과거의 위상을 잃고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가 약해진 와중에 러시아 중국 북한 등 현상 변경을 원하는 국가들은 기존의 국제 질서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또 미국을 포함해 주요국 지도자들은 모두 70,80대 고령이 됐다. 푸틴 대통령, 시 주석, 네타냐후 총리, 에르도안 대통령 등은 모두 10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다. 평균 수명 연장이 불러온 예상치 못한 결과다. 2개의 전쟁 또한 싫든 좋든 미국이 주요 행위자나 다름없어서 11월 미 대선 전까지는 확실한 휴전이 이뤄지기 어렵다. 푸틴도 하마스도 네타냐후도 대선 승자를 보고 다음 행보를 결정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때문에 전세계 각국 모두 더 많은 갈등과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대비의 핵심은 ‘억지력 강화’에 있다.”─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재선한다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방위비분담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을 통해 현재보다 분담금을 두 배 올린다 치자. 그렇다 해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이를 더 올리거나 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운운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모두 상대에게서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위협’을 이용한다.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상대방이 물러나도록 압박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종의 ‘파워플레이(powerplay)’다.파워플레이는 적을 대처할 때는 좋은 방법이지만, 친구와 동맹을 대할 땐 끔찍한 방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본인과 가족 외에는 누구에게든 파워플레이로 일관한다.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등 그가 자신의 핵심 참모들을 내친 방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가 재집권에 성공해 한국을 더 많이 압박할 수록 안타깝게도 한국 내 반미 여론과 자체 핵무장론 등이 고조될 것이다.”─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부쩍 강화되고 있다.“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사회에서 고립된 푸틴 대통령에겐 김 위원장이 거의 유일한 친구다. 김 위원장 또한 자신이 푸틴 대통령과 동등하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그는 자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 푸틴 대통령, 시진핑 주석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작지만 위대한 국가(small great nation)’로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밀착한다고 해서 북한이 러시아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 누구의 위성국가도 되지 않으려고 한다.김 위원장이 핵 위협을 가하는 목적은 ‘나도 푸틴처럼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공포감을 조성해서 자신을 더 중요한 협상 대상으로 만드려는 것이다. 그는 핵무기 위협을 통해 얻어지는 ‘힘’과 ‘영향력’을 원한다.”─그 여파로 한국 일각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나온다.“미국과 일본이 모두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우선 미국은 한미일 3국 협력이 위협받기 때문에 반대할 것이다. 일본 역시 한국과 북한이 모두 핵을 가지게 된다면 자국 안보가 크게 위협받는다고 여길 것이다. 나의 일본인 친구도 이 사안에 굉장히 불안해 하고 있다. 한국이 지나치게 북핵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 지난해 4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이 한국을 방어할 것이라는 약속이 더 공고해졌다.한국과 일본의 이해 관계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일치한다. 식민지배 역사 등 한국의 아픈 과거사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과거를 부정하지는 말되 너무 사로잡히지도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영국과 프랑스는 1000년 넘게 수 차례 전쟁을 벌인 앙숙이고 아직도 서로를 헐뜯고 조롱한다. 하지만 두 나라는 여전히 협력할 사안에 대해서는 긴밀히 협력한다. 한국과 일본 관계도 그러기를 바란다.”─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차로 접어들었다. “최근 러시아가 일부 성과를 얻고 있으나 ‘승리(win)’가 아니라 ‘지지 않은 것(not losing)’에 가깝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일부 지역을 점령한다 해도 우크라이나 내부, 전세계적인 반(反)러시아 여론이 워낙 높아 과거처럼 친러 인사를 우크라이나의 ‘꼭둑각시 대통령’으로 세우기는 어렵다. 푸틴 정권이 원하는 친러 정권 수립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다만 안타깝지만 우크라이나 또한 일부 영토를 잃는 것도 감내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국경은 언제든 바뀌는 것이고 지금의 국경이 영원불변한 것도 아니다. 폭주하는 푸틴 대통령을 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11월 대선,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야당 공화당과 지원을 지지하는 집권 민주당의 정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멈춰진 상태지만 시 주석이나 김 위원장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가 지도록 두면 안 된다. 11월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건 새 미국 대통령에게도 중국이나 북한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안에 관심이 있다면 푸틴 대통령이 쉽게 승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특히 우크라이나 상황은 대만에 매우 중요하다. 푸틴 대통령이 목표를 이루거나 재집권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면 시 주석 또한 대만을 침공할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또한 장기화하고 있다.“안타깝게도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세기 대영제국, 옛 소련, 미국이 모두 패한 아프가니스탄처럼 가자지구 또한 이스라엘의 영원한 뇌관으로 남을 것이다. 그 수렁에서 빠져나올 길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만 제거하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하마스를 궤멸해도 제2, 제3의 하마스가 또 나올 것이다.미국은 우크라이나에는 군사 지원만 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달리 중동에는 미군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 정도가 우크라이나 전쟁보다 훨씬 높다. 이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네타냐후 총리가 11월 미 대선의 ‘킹메이커’가 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긴밀하다. 이런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을 도울 가능성은 낮다. 이스라엘이 강경책을 고수해 더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죽으면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될 것이고 그의 지지율 또한 타격받을 것이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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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 테러 공포’에 떠는 유럽… 反무슬림 ‘피의 보복’ 악순환 우려

    2014∼2015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갖가지 테러로 신음했던 유럽이 또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IS의 분파 ‘IS-K’(호라산)가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테러를 저질러 최소 137명이 숨진 가운데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도 IS 관련자의 테러 시도가 속속 적발되고 있다. 스페인은 2019∼2023년 적발된 110개 이상의 테러 활동 중 95%가 이슬람 극단주의와 관련이 있다고 공개했다. 7월 올림픽 개막을 앞둔 프랑스는 24일 테러 경보 체계 총 3단계 중 가장 높은 ‘최고 단계’ 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난민의 지속적 유입, 무슬림의 높은 출생률 등으로 유럽 내 무슬림 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경제난과 양극화 등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무슬림들이 극단주의에 빠지기 쉬운 토양이 만들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르투갈 등 최근 선거를 치른 유럽 주요국에서 극우 정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무슬림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것 또한 ‘폭력의 악순환’ 우려를 높인다. ● 獨-佛서도 IS 연계 테러 시도 정치매체 폴리티코유럽 등에 따르면 독일 경찰은 19일 스웨덴 의회를 총기로 공격할 계획을 세운 IS 지지자 2명을 체포했다. 경찰은 “아프가니스탄 국적자인 이들이 현장 상황 조사, 무기 구입은 물론이고 시리아 북부에 수감된 IS 대원을 돕기 위한 모금 등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슬람권은 스웨덴이 지난해 자국 곳곳에서 벌어진 이슬람 경전(꾸란) 소각 사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며 강한 불만을 표했다. 스페인 국가안보회의(CSN) 또한 같은 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IS와 알카에다를 주요 안보 위협으로 지목하며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 등의 위험이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알카에다는 2004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인근의 통근 열차 4대에 테러 공격을 가해 193명이 숨지고 2000여 명이 부상당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 에펠탑 근처에서 흉기를 휘둘러 관광객 1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다치게 한 용의자 또한 공격 직전 IS에 충성을 맹세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란계 프랑스인인 이 용의자는 이미 테러 전과가 있었고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꾸준히 접촉해 왔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이슬람 테러리즘의 지속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고 시인했다. IS는 2015년 1월 시사매체 ‘샤를리 에브도’ 테러, 같은 해 11월 파리 바타클랑 극장 테러 등 여러 테러를 자행했다. ●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토양 조성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EU 내에서 튀르키예(터키)를 제외한 무슬림 인구는 1990년 약 3000만 명에서 2010년 4400만 명, 2023년 5030만 명으로 늘었다. 시리아 내전 후 2015년부터 중동계 난민이 대거 몰려들었고 백인보다 높은 무슬림의 출생률 또한 이들의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백인과의 소득, 교육 격차 등으로 사회 주류에 끼지 못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개의 전쟁 등으로 고물가와 경제난이 고착화한 것도 현실에 불만을 가진 일부 무슬림이 극단주의에 빠지도록 만드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포르투갈, 네덜란드, 핀란드 등 최근 총선을 치른 나라에서는 모두 강력한 반(反)이슬람, 반난민 정책을 내세운 극우 정당이 약진했다. 이로 인한 사회 전반의 이슬람 혐오 여론이 일부 무슬림의 극단 행동을 부추기고 이것이 추가 폭력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개의 전쟁, 미중 패권 갈등에 따른 신(新)냉전 구도 등으로 주요국이 과거만큼 테러 위협에 대처할 여력이 부족해졌고, 장기화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또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테러범에 대한 최대한의 보복을 다짐한 것 또한 ‘피의 악순환’ 우려를 높인다. 호주 시사매체 컨버세이션은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정권은 테러 시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잔혹한 보복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국가가 대테러 작전을 수행할 때보다 자제력과 책임감이 떨어진다”고 우려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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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책의향기 온라인]

    현금이 오가는 거래 뿐아니라 현금 없이 일어나는 거래도 회계 장부에 기록하는 회계 원칙을 ‘발생주의(Accrual Basis)’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이 이 발생주의 원칙에 따라 재무제표를 만들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까지 ‘현금주의(Cash Basis)’에 근거한 결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 재정의 효율성, 투명성,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 책은 정부 운영의 효율성과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 발생주의를 택해야 하며 이것이 민주주의를 강화한다고 강조한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2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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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유럽은 없다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단일 패권국으로 거듭났다. 유럽 전체가 폐허로 변했지만 미 본토의 피해는 전무했기에 막강한 제조업 인프라를 쉽게 구축할 수 있었다. 달러 또한 기축통화가 됐다. 최근 중국의 부상 등으로 과거보다 정치사회적 패권은 약화됐지만 경제 패권은 굳건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년을 넘겼다.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나 이 전쟁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 격차가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질지 모른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자본시장 규모, 주요 기업의 시장 가치 등은 이미 비교가 무의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미 경제는 연율 2.5% 성장했다. 특히 4분기(10∼12월) 성장률은 3.2%에 달했다. 미 기준금리는 5.5%로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1.0%포인트 낮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지난해 성장률은 0.5%로 추정된다. 역내 최대 경제대국 독일 경제는 같은 기간 ―0.3% 성장해 ‘유럽의 병자’로 불린다. 미국과 유로존의 지난해 GDP가 각각 약 27조 달러, 약 15조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2.5%’와 ‘0.5%’란 성장률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미국의 덩치가 훨씬 크고 성장을 방해하는 고금리 환경이 펼쳐졌는데도 몸집을 불리는 속도가 빠르다. 또한 미 1위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가총액은 3조 달러가 넘는다. 유럽 1위인 덴마크 노보노디스크는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710억 달러. 미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시총 합계 또한 약 49조2000억 달러다. 유로넥스트(약 6조8000억 달러)의 7배 이상이다. 유럽 땅에서 벌어진 2년간의 전쟁은 유럽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고 경제 부담도 급증시켰다.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미국과 달리 러시아산 의존도가 높은 유럽 경제의 한계도 노출했다. 특히 겉으로는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기치로 러시아의 폭주를 막겠다면서도 뒤로는 자국의 이해관계만 중시하는 민낯도 드러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허울뿐인 대(對)러시아 제재 대신 촘촘한 제재를 가하는 데 주저한다. 무기가 부족한 우크라이나를 위해 한국 등 제3국의 무기를 수입하자는 주장 또한 역내 군사 강국 프랑스가 반대한다. 전쟁 전부터 누적된 문제도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고급 해외 인력을 빨아들여 높은 혁신 역량을 보유했다. 유럽은 급격한 고령화 와중에 중동, 북아프리카 등의 저숙련 이민자가 주로 유입돼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 미국에 비해 짧은 근무 시간, 강성 노조 등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덜 일하고 더 노는데 앞서 있는 경쟁자를 따라잡을 순 없다. 또한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 빅테크가 이미 유럽 정보기술(IT) 시장을 장악했는데도 유럽은 빅테크 규제에만 골몰한다. 규제보다 시급한 것은 유럽판 구글, 애플을 만들고 키우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철퇴를 가한들 이미 유럽 전체가 미국의 IT 식민지나 다름없는 판국에 유럽 기업이 그 자리를 메꿀 능력은 있는지 의심스럽다. 2000년 6월 당시 부동의 세계 1위 휴대폰 기업이었던 핀란드 노키아의 시총은 약 3000억 유로였다. 당시 애플(200억 유로)보다 15배 많았다. 채 24년이 못 되는 기간에 애플은 시총 약 3조 달러의 공룡이 됐지만 스마트폰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한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부는 MS에 팔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이라도 강도 높은 혁신을 단행하지 않으면 더 많은 유럽 기업이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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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방위비 안내면 러 나토침공 독려할 것”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사진)이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집권 당시 나토가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며 회원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2.0%의 국방비를 지출하도록 압박했던 그가 재집권하면 방위비를 이유로 동맹에 대한 안보우산을 철회할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 도중 과거 한 나토 회원국 지도자가 자신에게 “우리가 돈(방위비)을 내지 않더라도 러시아로부터 공격받으면 우리를 보호하겠는가”라고 물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에 자신은 “당신이 체납자(delinquent)라면, 보호하지 않겠다(I would not protect you). 오히려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독려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했다. 또 “청구서에 나온 대금을 납부하라(You got to pay your bill)”고 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부유한 동맹국이 충분한 방위비를 내지 않는다며 거센 불만을 표했다. 그는 한국과 독일에 각각 ‘미국을 벗겨먹으려 한다(rip off)’, ‘부자 나라가 방위비를 그렇게 적게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한미군 및 주독미군 철수 등도 거론했다. 동맹들은 반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 성명에서 “동맹이 서로를 방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암시는 미국을 포함해 모두의 안보를 훼손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 년간 동맹을 지켜온 미국의 안보우산이 사실상 종식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1950년 딘 애치슨 당시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뺀 ‘방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후 5개월 만에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며 세계가 미국의 의지를 신뢰하지 않으면 6·25전쟁 같은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평했다.트럼프 “동맹이라도 돈 안내면 체납자”… 나토 “모두의 안보 위협” 트럼프 “돈 안내면 침공 독려” 논란동맹국에 GDP의 2% 국방비 요구… 미달땐 안보우산 철회 가능성 시사유럽 “안보 가지고 장난하나” 발칵韓, 美와 방위비분담 협상 조기착수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 방어한다.” 1949년 설립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헌장 5조’ 내용이다. 31개 나토 회원국 중 단 한 국가만 공격을 받아도 나머지 30개국이 군사력을 결집해 공동 반격에 나선다는 것이 골자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그간 중립을 유지했던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 것 또한 이 집단 안보우산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75년간 유지되던 나토 헌장 5조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집권 당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토가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각 회원국에 자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강하게 압박했던 그는 10일(현지 시간) “재집권하면 돈을 내지 않는 동맹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침공을 부추기는 일마저 불사하겠다”는 취지의 위협을 가했다. 나토 주요 회원국은 물론이고 한국, 일본 등 아시아 핵심 동맹국에도 비슷한 압박이 가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재임 당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등을 언급했고 방위비 분담금 5배 증액도 요구했다.● 트럼프 “동맹이라도 돈 안 내면 체납자” 미국은 나토 설립 후 대부분의 재정을 책임졌다. 나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 기준 나토 국방 지출의 71.7%를 미국이 부담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 회원국에 ‘GDP의 2%’ 기준을 직접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제 통계사이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31개 나토 회원국에서 GDP 대비 2%를 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나라는 폴란드(3.9%), 미국(3.49%), 그리스(3.01%) 등 총 11개국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 기준에 미달하는 독일에 대해 “부자 나라가 왜 이리 돈을 조금 내냐”며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사사건건 대립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주독미군 3만6000명 중 1만2000명 감축 방안을 발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기준에 미달하는 국가를 ‘체납자’로 취급했다. 미국에 내야 할 돈을 빚졌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11월 대선에서 재집권하면 국방비 지출이 2.0%에 미달하는 상당수 나토 회원국이 미국의 거센 증액 요구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 또한 방위비 증액과 주한미군 조정을 연계한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그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해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을 올해 중 조기 착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SMA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서 한국 정부가 부담할 금액을 규정하는 협정으로, 11차 SMA는 2025년까지 적용된다. 정부 소식통은 종료 기한이 약 2년 남은 SMA 협상을 서둘러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재임 때처럼 큰 폭의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고 했다. 우리 측 협상 대표로는 이태우 주(駐)시드니 총영사가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든-유럽 전체 부글부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선에서 재격돌할 가능성이 높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1일 성명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폴란드, 발트해 국가도 공격해도 된다는 청신호”라며 “끔찍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쟁 중인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폭력배(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편을 들면 안 된다”고 했다. 전 유럽은 발칵 뒤집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미국과 유럽을 약화시키고 미국과 유럽 군인을 더 큰 위험에 처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나토는 미 대통령 기분에 따라 작동하는 군사동맹일 수 없다”고 말했다.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대해 “동맹의 안보를 가지고 장난칠 핑계가 될 수 없다”며 분노했다. 피터 리케츠 전 영국 상원의원은 골프 애호가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미를 들어 “나토는 GDP의 2%란 돈을 내면 방위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트리클럽’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하정민 기자 dew@donga.com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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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조코위’ 집권 10년 만에 후퇴한 인니 민주주의

    인도네시아는 인도 중국 미국에 이은 세계 4위 인구 대국이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과 달리 인도와 미국처럼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기에 ‘세계 3대 민주주의 국가’를 자처한다. 다만 민주주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45년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오랜 군부 독재를 거쳤고 2004년 직선제를 도입했다. 첫 직선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역시 군인 출신이었다. 이에 2014년 첫 민선 대통령 조코 위도도(조코위)가 취임했을 때 2억8000만 국민의 기대가 엄청났다. 사람들은 그를 ‘인도네시아의 오바마’라 했다. 당시 세계 최고 권력자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1961년생, 흙수저 성공담, 그때만 해도 소탈했던 이미지 등이 흡사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한때 인도네시아에 살았다는 이력까지 더해졌다. 10년이 흐른 지금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조코위 대통령이 14일 치러질 대선 1차 투표를 장남 기브란에게 권력을 물려줄 도구 정도로 여기는 탓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집권 투쟁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 대신 미는 사람은 2014년, 2019년 대선에서 모두 본인과 대결했던 프라보워 수비안토 게린드라당 대선 후보. 프라보워의 부통령 후보가 기브란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과거 프라보워와 대결할 때 “군부 독재로 회귀하고 싶으냐”고 그를 공격했다. 프라보워는 군인 출신이고 전 장인 또한 군부 출신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이다. ‘독재’ 운운할 땐 언제고 3선을 금지한 헌법 때문에 자신의 3연임이 어려워지자 이제 정적(政敵)을 후임자 겸 아들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삼으려 한다. 집권당의 주요 정치인은 프라보워만큼 기브란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기브란이 부통령 후보에 오른 과정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 부친의 정치적 고향인 솔로 시장으로 재직 중인 37세의 기브란은 당초 ‘정·부통령 후보의 출마 자격은 40세 이상’이라는 선거법으로 출마가 불가능했다. 그러자 헌법재판소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된 사람은 연령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기상천외한 헌법 소원을 인용해 위헌 판결을 내리고 출마 장애물도 없애줬다.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조코위 대통령의 매제 겸 기브란의 고모부인 안와르 우스만이다. 우스만은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어기고 이 인용 결정에도 참여했다. 각계의 비판이 들끓자 헌법재판소장에서 물러났다. 많은 동남아 지도자는 세습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모두 부친이 총리 혹은 대통령이었다. 또한 리 총리와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는 각각 자신의 아들과 딸을 차기 총리로 만들려고 한다. 그런 두 사람조차 우선은 친분이 두터운 정치인에게 잠시 총리직을 맡겨 조금이라도 비판을 무마하려는 시늉은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세습을 위한 최소한의 구색은 갖추려는 것이다. 조코위 대통령에겐 그 시늉조차 번거로운 듯하다. 아들의 출마에 필요한 고작 3년을 못 기다려 사실상 헌법을 뜯어고쳤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고 아들의 선거 운동에도 열심이다. 세습을 위한 ‘징검다리용 후임자’로 정적을 택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국민을, 헌법을, 민주주의를 우습게 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취임 직후 한국을 찾아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 동시 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인도네시아를 한국처럼 만들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성장은 이뤘을지 모르나 그가 갓 싹을 틔운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은 아들의 부통령 등극과 무관하게 남을 것이다. 그가 인도네시아의 첫 민선 대통령이 아니라 ‘민선 대통령이면서 세습을 시도한 첫 번째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안타깝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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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인터뷰/하정민]“중동 분쟁 이면에는 ‘힘 빠진 美’… ‘트럼프 2.0’ 가능성도 갈등 키워”

    《“이스라엘, 하마스, 이란 등 중동 전쟁의 이해당사자 모두 전쟁의 장기화를 내심 바라고 있다. 노회한 중동 각국 지도자의 장기 집권,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 또한 역내의 분쟁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국내의 대표적인 중동 전문가이며 지난해 11월부터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56)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발발 100일을 맞아 내린 진단이다. 그는 ‘슈퍼 선거의 해’를 맞아 세계 각국에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인이 득세하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중동 전쟁 또한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세계 곳곳의 분쟁 강도와 빈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인 교수는 개전 100일 다음 날인 이달 15일 동아일보와 화상 인터뷰에 이어 최근 중동 곳곳을 공격한 이란에 파키스탄이 보복해 서남아시아로도 확전 우려가 고조된 18일 추가 서면 인터뷰를 갖고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 및 분쟁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세력 약화”라고 분석했다.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 체제가 중국 등 다극(多極) 체제로 바뀌면서 미국은 그 대처에도 바빠 ‘세계의 화약고’ 중동을 과거처럼 관리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분쟁의 상시화, 일상화, 장기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고립주의를 외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이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영국 더럼대에서 중동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동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높지 않을 때부터 각종 강연과 기고로 중동을 알리며 명성을 얻었다. 오래전부터 아랍 주요국을 누볐지만 그럴수록 아랍계가 아닌 중동의 세 나라, 즉 이스라엘(유대계), 튀르키예(튀르크계), 이란(페르시아계)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이전 연구년을 이스라엘에서 보냈고 이번에 튀르키예로 왔으니 다음 연구년은 이란으로 가겠다. 이를 통해 중동 갈등의 연원과 해결 방안을 입체적으로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100일을 넘겼다. “양측 모두 전쟁을 빨리 끝낼 동기가 부족하다. 하마스는 가자를 넘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를 대체할 지배세력이 될 속내를 보이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서안지구 내 하마스의 지지율이 올랐다. ‘이스라엘의 부역자 같은 무능한 PA 대신 이스라엘과 맞서는 우리를 선택해 달라’는 주장이 먹히는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중 수장을 교체하지 않는다. 단결해야 한다’는 여론에 기대어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네타냐후 내각이 거듭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교전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직 총리 최초로 재판을 받고 있고,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비판도 큰 네타냐후 총리는 전선(戰線)이 넓어져야 정치 생명이 연장되는 측면이 있다. 하마스를 후원하는 이란 또한 ‘외부의 적’을 세력 확장의 명분으로 삼고 있어 사태의 해결이 쉽지 않다. 네타냐후 총리(75)와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89), 하마스 지도부,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85) 등은 다 장기 집권 중이다. 모두 내부 반대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정권 연장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약 2만5000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희생됐다. 미국의 저강도 작전 요구나 국제사회의 휴전 압박이 거센데도 왜 이스라엘은 받아들이지 않는가. “선제공격을 당했으니 면피용으로라도 두 조건 중 최소 1개는 충족돼야 휴전을 검토할 것이다. 이번 공격을 주도한 ‘하마스 2인자’ 야히야 신와르를 제거하거나 하마스가 억류 중인 약 130명의 인질 중 상당수를 돌려받는 것이다. 어느 쪽도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스라엘이 휴전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11월 미 대선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네타냐후 총리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사이는 미지근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임 이스라엘 총리가 집권하면 곧바로 워싱턴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관례를 깼다. 2022년 12월 세 번째로 집권한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9월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했을 때 겨우 만났다. 반면 ‘브로맨스(bromance)’로 불릴 만큼 네타냐후와 가까웠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텔아비브에 있던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첨예한 종교 분쟁지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의 3각 수교도 중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처럼 트럼프와 가까운 내가 총리로 있어야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 전쟁을 지속하며 버티려 할까 걱정이다.” ―이번 중동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인가. “이란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후 그 이념을 수호하고 이슬람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을 ‘국시(國是)’로 삼고 있다.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에도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을 지원하는 이유다. 특히 시아파 정체성을 이용해 역내 패권국이 되려는 생각이 뚜렷하다. 이미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라크와 자국을 잇는 거대한 ‘시아파 벨트’를 구축했고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손발이 묶인 사이에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마스의 도발 전까지 중동의 주인공은 이란의 경쟁자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물밑에서 수교 협상을 벌였고 미국에는 원자력발전소 기술 이전, 동맹 수준의 안보 협력을 요구했다. 수교가 이뤄졌다면 이스라엘이 거침없이 아라비아반도를 넘나들며 이란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으니 이란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이제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이 공동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이란은 이 무장단체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전략적 입지를 구축했다. 다만 이란의 앞날도 녹록지 않다. 히잡 의문사 규탄 시위 등 사회적 저항이 확인됐고 경제난은 매우 심각하다. 신정일치 체제를 지지해 온 빈곤층이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진짜 위기가 올 것이다.” ―휴전 후 가자지구를 누가 다스릴 것이냐는 문제에 현실적인 해법은…. “230만 명 가자 인구의 절반은 미성년자다. 2007년 하마스가 가자를 장악한 후 다른 통치 체제를 경험한 적이 없다. 반(反)이스라엘, 반미 노선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를 치러도 하마스와 비슷한 강경 성향의 조직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를 없애도 제2, 제3의 하마스가 나올 것이다. 미국은 PA가 서안지구와 가자를 모두 통치하는 것을 내심 바란다. 이론적으로 가장 나은 대안이나 무능과 부패로 서안지구에서조차 인기가 낮은 PA가 가자 민심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 창살 없는 수용소에 갇힌 듯 살아왔던 가자 주민들은 PA가 이스라엘에 붙어 호의호식했다고 여긴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국제사회가 일종의 신탁 통치를 하자고 주장하나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동 일대의 다른 전쟁과 분쟁도 장기화, 만성화했다. “시리아는 2011년부터, 예멘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내전 중이다. 리비아 또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2011년부터 준내전 상태다. 궤멸된 줄 알았던 이슬람국가(IS)도 아직 건재하다. 미국의 힘과 영향력 약화가 주요 원인이다. 싫든 좋든 미국이 단일 패권국으로서 중동에 관여할 때는 최소한의 역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인도태평양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할 것이다. 중동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분쟁의 강도와 빈도 또한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다.” ―중동 전문 학자로서 해법이 안 보이는 상황을 볼 때 어떠한가. “무력하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은 더 무섭다. 인간을 구원해야 할 종교가 살상 명분으로 작용하는 것도 비통하다. 하지만 암울한 시기에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켰음을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보여준다. 그런 지도자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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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어서도 ‘시아 vs 수니’ 대립의 상징 솔레이마니 [글로벌 이슈/하정민]

    632년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사망했다. 시아파는 후계자로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 겸 사위 알리를 추대했다. 수니파는 혈연관계가 없지만 독자 세력이 강했던 무함마드의 친구 겸 후원자 아부바크르를 옹립했다. ‘피’를 앞세웠지만 ‘힘’에선 밀린 알리는 살해당했다. 이후 약 1400년간 시아파는 단 한 번도 소수파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 현재도 18억∼20억 명으로 추산되는 전 세계 이슬람 인구의 10∼15%에 불과하다. 오랜 대립 역사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같은 ‘공동의 적’이 없었다면 같은 종교의 범주에 묶여 있지도 않고 내내 전쟁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양측은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인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수니파 왕정국은 오일머니를 이용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세속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왕정을 몰아낸 이란은 ‘풍족하진 않아도 이슬람 교리를 따르는 신정일치 국가가 최고’란 자부심으로 산다. 무함마드의 후계자 경쟁 때 수니파와 시아파가 각각 ‘영향력’과 ‘정통성’을 내세웠던 것과 비슷하다. ‘쪽수’에서 밀리는 시아파 맹주 이란은 세력 확장에 사활을 건다. 2002년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된 후 20년 넘게 서방의 경제 제재를 맞으면서도 레바논 헤즈볼라, 예멘 후티, 이라크 카타입헤즈볼라(KH) 등 인근 시아파 무장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니파인 팔레스타인의 양대 무장단체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또한 후원했다. ‘중동 내 영향력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도 끝’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미군의 공개 살상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이 해외 무장세력 지원을 담당한 이란 최고위 인사다. 혁명수비대 내에서도 해외 작전과 특수전을 담당해 최정예로 불리는 쿠드스 대원들은 오합지졸 상태인 곳곳의 시아파 민병대를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미사일, 무인기 등도 보급해 정규군 수준으로 키웠다. 이를 통해 이란은 시리아 레바논 예멘 이라크와 자국을 잇는 거대한 ‘시아파 벨트’를 구축했다. 주변국을 사실상 위성국으로 만들었기에 굳이 자국군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수니파 왕정국, 이스라엘, 미국 등을 군사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다. 솔레이마니가 고국이 아닌 이라크 바그다드공항에서 숨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4, 2015년 거듭된 테러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3일 솔레이마니의 4주기 추도식장에서 테러를 저질렀다. 시아파 세력 확장에 평생을 바친 솔레이마니의 상징성을 감안해 의도적으로 장소를 골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잊혀진 존재로 전락한 IS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을 과시해야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 이에 수니파가 눈엣가시로 삼던 솔레이마니의 묘지 인근에서 폭탄을 터뜨려 건재를 알리려 했다는 의미다. IS만 사자(死者)의 상징성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과 시아파 무장단체 또한 ‘순교자’로 추앙받는 솔레이마니의 후광이 절실하다. 이란은 만성 경제난, 히잡 의문사 규탄 시위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시아파 무장단체는 이란의 지원이 없으면 존립 자체가 어렵다. 죽은 솔레이마니를 내세워야만 내부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수니파와 시아파의 극한 갈등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살아서도 전쟁터만 누빈 솔레이마니가 땅속에서조차 평안을 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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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총통선거 박빙 싸움… 中, 힘으로 새 정부 길들이기 나설듯”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된 현 시점에서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하면 대만 안보에 좋지 않다. 차기 대만 총통은 중국과의 대화를 늘려야 하며 특히 민간 교류 확대가 필수적이다.” 대만의 원로 정치학자이며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자오춘산(趙春山·78)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가 지난해 12월 26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13일 실시될 총통 선거 결과가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며 한 말이다. 대만을 포함해 올해 한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이란, 인도네시아,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는 잇따라 대선과 총선이 치러진다. 대만 대선 격인 총통 선거는 이 ‘슈퍼 선거의 해’에서 주요국 첫 타자일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한반도 등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도 커 그 어떤 선거보다 많은 관심을 모은다. 자오 교수는 반(反)중국 성향인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 후보와 친중 성향인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侯友宜) 후보 중 누가 승리하더라도 근소한 표차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신임 총통이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 독불장군식 행보를 보이면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이어 “선거일부터 신임 총통이 4년 임기를 시작하는 올해 5월 20일까지의 넉 달 동안 양안 관계가 특히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새 총통이 이 기간에는 가급적 중국을 자극하지 말고 나라 안팎의 분열 해소 및 사회 통합에 힘쓸 것을 조언했다. 자오 교수는 1946년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다. 3년 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이 본토에서 대만으로 패퇴할 때 부모를 따라 대만으로 넘어왔다. 국립정치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따고 모교 교수로 재직했고 중국공산당의 정치 체제 및 대외 정책 등을 집중 연구했다.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에게 양안 관계 전략 등을 조언했다. 국민당계 학자로 꼽히지만 민진당 인사들과도 교분이 두텁다. 지난해 2월 중국 베이징에서 권력 서열 4위 왕후닝(王滬寧)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를 접견할 정도로 중국 내 인맥도 탄탄하다. 그의 제자인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가 인터뷰를 통역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거가 코앞이지만 승자 예측이 쉽지 않다. “1996년 대만 총통 선거에 직선제가 도입된 후 가장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 중 누가 승자가 되더라도 득표율 격차는 3∼5%포인트, 표 차이는 50만 표 내외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4년 전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57.2%를 득표해 상대 후보와의 격차가 18.6%포인트(약 265만 표)에 달했다. 이런 일방적인 상황이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민진당과 국민당은 모두 자신이 승리해야 중국과의 ‘전쟁’을 막고 ‘평화’가 온다고 주장하나 젊은 세대는 임금 인상, 주택 구매 등 경제 의제에 집중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민진당의 주요 지지층이었으나 민진당과 국민당 모두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젊은 유권자는 이번 선거의 키워드를 전쟁 혹은 평화가 아닌 ‘번영’과 ‘쇠퇴’라고 본다. 누가 승리하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柯文哲) 후보가 두 기성 정당에 실망한 이런 표심을 얼마나 흡수하느냐가 최종 승자와 득표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젊은 유권자의 관심이 경제 의제로 옮겨간 이유는 무엇인가. “차이 총통의 집권 8년간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된 와중에 경제 성장까지 둔화해 민진당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유권자가 늘었다. 8년간 실질임금은 사실상 감소했는데 집값은 더 오르고 취업난 또한 상당하다. 대만의 PIR(Price Income Ratio·소득 대비 주택가격 배율)은 20이 넘는다. 근로자가 20년 동안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두 모아야 겨우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인지라 현재 지지율에서 앞서는 라이 후보가 새 총통이 되더라도 대선과 같은 날 치러지는 입법원(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당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민당 또한 압도적 격차로 1당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할 새 총통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 “대선과 총선 모두 접전 양상인 만큼 특정 후보와 정당의 일방 노선 추구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새 총통의 최우선 과제는 역시 분열 해소가 돼야 한다. 대만 내부의 반대파도 포용하고 차이 총통 집권 후 8년간 중단된 중국과의 대화 창구도 복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이 필요하다. 차이 총통은 4년 전 대선에서 역대 최다 득표 및 최다 격차로 압승했기에 반중 정책을 펼 명분을 보유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세 후보의 대결로 누가 승리해도 과반 득표가 어려운 만큼 승자가 ‘일방통행’을 고집하면 정당성 논란이 뒤따를 것이다. 차이 총통, 마 전 총통,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등은 모두 최고 명문 국립대만대를 졸업한 엘리트 법조인이었다. 이번 선거는 두 명의 의사 출신 후보(라이칭더, 커원저)와 한 명의 경찰 출신 후보(허우유이)가 대결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사회 다양성 측면에서 일부 진전이 이뤄졌다고 본다.” ―일각에선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라이 후보가 집권하면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본다. “중국이 일정 부분 군사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새 정부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중국 경제가 좋을 때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 강도가 오히려 낮았지만 현재 부동산 시장 부실 등으로 중국의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면서 내부 불만이 적지 않다. 이 동요를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중국공산당이 대만에 대한 강경책을 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런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또한 교착 국면에 빠지는 양상이다. 2개의 전쟁이 언제 어디로 확산될지 모르고, 다른 곳에서도 국지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듯 국제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군사력으로 열세인 대만이 중국과의 갈등 수위를 높이기보다 현상유지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꼽히는 것이 늘 마음이 편하지 않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 당시 미중 무역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그렇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한다면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패권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양국 관계가 상당한 변화를 맞을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상대국 정상과의 일대일 담판을 선호하므로 동맹을 규합해 세를 불리는 데 치중한 바이든 대통령과 큰 차이가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의 동맹까지 상대해야 하는 현재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 한 명만 상대하면 되니 편하다고 여길 수 있다. 다만 그가 워낙 즉흥적이고 예측이 쉽지 않은 인물인 만큼 정책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다. 대만도 쉽게 유불리를 진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만을 중국에 맞설 카드로 이용할지, 대만 군사 지원에 드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할지 속단하기 어렵다.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가 13일 총통 선거의 결과보다 양안 관계에 미칠 파급력이 크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또한 대만 못지않게 고민이 많다. “한국의 상황이 대만보다 훨씬 양호하다. 한국도 북한을 다루기 위해 중국이 필요하지만 중국 또한 북한과의 관계 정립에 한국을 지렛대로 쓰려 한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한국과 더 밀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는 점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주권과 국익을 수호할 여지를 준다. 다만 중국이 대만에 대한 군사 행동에 나서면 미국은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을 활용해 억지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한국 또한 양안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형편이다.”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발전에도 왜 세계 분쟁은 더 늘어날까. “물질 문명의 진보 속도를 정신 문명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후변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등 전 세계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 또한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인류 모두가 이 문제를 발생시킨 주범이고 누구 하나 그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도 서로 자신의 잘못은 없다며 남 탓만 하는 것이 정신 문명이 진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자오춘산(趙山) 대만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1946년 중국 광시성 구이린 출생(본적 산시성)1949년 대만행(국립정치대 정치학 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박사 수료)1972~2002년 국립정치대 교수2002~2017년 단장대 교수2008~2016년 마잉주 전 총통 고문2017년~현재 단장대 대륙연구소 명예교수중국공산당의 정치 체제, 주변국 관계, 대외 정책 등에 관한 여러 연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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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인터뷰]“韓-호주, 인도태평양 공동 린치핀… 양국 군사협력 강화해야”

    《“한국과 호주는 인도태평양의 공동 ‘린치핀(linchpin·핵심축)’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충돌이 발생하는 지금,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원칙과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개방적이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을 만들어야 합니다.”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10일 한국을 떠나는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54)가 동아일보와 마지막 한국 언론 인터뷰를 갖고 “국제 정세가 어느 때보다 혼란한 지금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법치 등을 중시하는 두 나라가 특히 군사 협력을 강화해 중견국 지위에 걸맞은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일부 강대국의 대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차나 수레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아 고정시킨 ‘린치핀’이 해당 바퀴의 안정을 담보하듯 한국과 호주 모두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하는 핵심 국가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그는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은 2021년 1월 최초의 여성 주한 호주대사로 부임했다. 전임자 17명이 모두 남성이었던 데다 그의 외조부가 6·25전쟁 당시 호주 해군 호위함 ‘와라뭉가’를 타고 한강 유역의 경계 및 병참을 담당했던 참전용사여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집무실에서 가졌던 취임 초 인터뷰와 달리 이번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성북구 주한 호주대사관저에서 이뤄졌다.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경의 관저 거실에서 만난 그는 “부임 직후 첫 인터뷰를 동아일보와 했는데 마지막 인터뷰도 하게 되어 감사하다. 귀국 후 (호주) 외교부에서 통상 업무를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등으로 국제 정세가 혼란하다. “두 개의 전쟁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쟁과 충돌은 국제 질서와 규범을 따르지 않는 세력이 많아져 생긴 일이다. 일부 국가는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을 넘어 아예 파괴하려고 한다. 이에 따른 혼란과 갈등을 일부 강대국의 노력만으로 바로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과 호주 같은 중견국이 질서를 수호하는 일에 앞장서야 ‘국제 규범을 지키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이를 지키지 않는 나라도 줄어든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3년째 맞설 수 있는 것은 미국이 뒷배가 돼줄 뿐 아니라 한국, 호주 등 중견국이 직간접적인 군사,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대러시아 제재에도 동참했기에 가능했다. 최근 인도태평양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역내의 핵심 중견국인 한국과 호주가 더 협력해야 한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북부의 린치핀, 호주는 인도태평양 남부의 린치핀이다.” ―양국의 전략적 협력, 특히 군사 협력이 강화됐다. “지난해 가을 양국 해군이 ‘해돌이(한국 해군의 돌고래 캐릭터)-왈라비(호주 상징인 캥거루과 동물)’ 연합훈련을 실시했다. 한국군은 호주에서 실시된 2023년 ‘탈리스만세이버’ 연합 훈련, 2022년 ‘피치블랙’ 공군훈련 등에도 F-16 전투기, KC-330 공중급유기 등의 최신식 무기를 보내 상호 운용성과 작전 역량을 강화했다. 호주는 한국산 무기의 수입을 늘렸다. 지난해 말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 129대를 24억 달러(약 3조1380억 원)에 구입하기로 했고 2021년 K9 자주포 ‘AS9’도 사들였다. 전 세계에 ‘K방위산업’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호주가 일익을 담당했다고 본다. 군사 협력의 활동 범위 또한 넓어졌다. 두 나라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나우루에서 지뢰 제거를 위한 ‘랜더세이프’ 작전을 같이 했다. 비무장지대(DMZ)의 지뢰 제거 경험이 풍부한 한국군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이런 협력이 가능했던 이유로 2013년부터 시작된 양국의 격년 국방·외교장관 회의 ‘2+2’를 꼽고 싶다. 양국 관계의 주요 뼈대로 두 나라의 협력은 물론 삼자, 다자협력의 틀도 제공한다. 최근 한국, 호주, 일본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와의 해양연계성 포럼을 개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5월 호주에서는 노동당 소속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취임하며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인도태평양 중시 등 외교안보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전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을 계속 집행하고 안보 정보는 다른 정파와도 반드시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뿌리내렸다. 호주는 2021년 미국, 영국, 호주 3자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에 가입하면서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SSN)을 구입하기로 했다. 이에 2030년부터 최대 5척의 SSN을 도입할 예정이며 이를 순조롭게 준비하고 있다. 구입 결정 당시 일각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꼭 이 역량을 확보해야 하느냐. 다른 분야에 쓸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제는 사회 전반에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 ―호주는 북한 제재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발사한 직후 한국, 호주, 미국, 일본 4개국이 이에 연루된 북한 주민과 단체 등을 겨냥한 공동 제재를 단행했다. 4개국이 최초로 공동 대북 제재에 나섰다는 것은 북한의 거듭된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를 보여준다. 호주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북핵은 인도태평양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며 호주 국익과도 직결돼 있다. CVID를 위해 한국, 미국 등은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다른 파트너들과도 대북 제재 등의 협력을 계속할 것이다. 일부 국가가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참전용사의 외손녀로서 6·25전쟁에 관한 여러 업무를 수행했다. “한국과 호주는 2019년 제4차 ‘2+2’ 외교·국방장관 회의에서 호주 참전용사의 유해 발굴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7월 맷 키오 호주 보훈장관이 한국을 찾았고 석 달 후에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호주로 건너가 생존 중인 참전용사와 유가족을 방문했다. 이런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뜻깊은 경험이었다. 나의 외조부는 6·25전쟁 당시 한강 일대의 경계 및 병참 업무를 담당했다. 최근 외조부와 비슷한 시기는 아니지만 같은 함정에서 근무했다는 생존 용사를 만나 정말 기뻤다. 자신의 생명을 건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의 오늘이 가능했고 나 또한 이곳에 대사로 부임할 수 있었다. 열 살 때 돌아가신 외조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늘 아버지인 외조부를 그리워하시는 어머니를 대사 재직 중 한국에 모시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는 늘 한국에 오고 싶어 하셨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고령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0년 차 외교관이다. ‘좋은 외교관’의 정의는. “‘매력(charm)’과 ‘집요함(persistence)’을 갖춘 사람. 외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행위다. 강압을 가해선 안 되며 반드시 매력과 설득을 통해 상대방을 사로잡아야 한다.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닌 만큼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 외교뿐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 국가 관계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민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임기 중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고 양국 관계의 ‘포괄적전략동반자(CSP·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관계 격상에 기여해 영광이다. 한국이 2022년 말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한 것 또한 인도태평양을 중시하는 호주에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 호주만 한 최적의 전략적 파트너가 없다는 점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최초의 여성 주한 호주대사라는 점에 주목하는 분도 많아 감사했다. 미약하지만 나의 존재가 더 많은 여성이 지도자로 거듭나는 데 ‘역할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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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美 부통령 후보군에 오른 ‘힐빌리 촌놈’

    미국 동부의 명문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제국의 미래’ ‘타이거 맘’ 등의 저서로 유명한 스타 교수 에이미 추아의 애제자였다. 졸업 후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사에서 일했다. 로스쿨 동문인 인도계 아내 우샤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서기를 지냈고 캘리포니아주의 진보 성향 로펌에서 근무했다. 올 1월 미 상원에 입성한 공화당 소속 J D 밴스 미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부부의 이력이다. 미 엘리트의 전형적인 성공 경로를 보여주는 동시에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 색채가 진하게 풍긴다. 뉴욕,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등 미 동서부 해안 대도시는 민주당의 텃밭으로 꼽힌다. 일대 대학의 학풍은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샤 또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샌디에이고 태생이며 2014년까지 민주당원이었다. 밴스의 차별점은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이 고향이라는 것이다. 한때 철강회사 AK스틸의 본사가 있었지만 급속한 세계화, 자동화의 물결에 밀려 쇠락한 ‘러스트 벨트’(낙후된 산업지대)의 표본이다. 2020년 기준 인당 연간 평균 소득은 2만4184달러(약 3144만 원). 5만 명 주민의 22.5%가 빈곤층이고 학사 학위 소지자의 비율은 15.6%다. 성장기 밴스의 삶 또한 이 통계 그대로였다. 마약 중독자인 모친은 종종 폭력을 휘둘렀고 부친은 아들의 친권을 포기했다. 일가 친척 중 대학 졸업자도 없다. 자신은 외조모의 보살핌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계층 이동에 성공했지만 그러지 못한 이웃들이 정부 보조금과 마약에 찌들어 사는 모습을 서술한 ‘힐빌리의 노래’란 책을 2016년 6월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힐빌리는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켄터키, 웨스트버지니아주 등 미 동부 애팔래치아산맥 일대의 저소득 저학력 백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이들 스스로 날 때부터 출구가 안 보이는데 백인이란 이유로 다른 소수인종에 비해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역차별만 받는다는 피해의식이 강하다. 그의 책이 나온 2016년 미 대선에서 힐빌리는 자신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듯한 아웃사이더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몰표를 던졌다. 특히 저임금을 좇아 해외로 간 공장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이겠다는 구호에 매료됐고 트럼프를 백악관 주인으로 만들었다. 밴스에게는 “아무도 트럼프의 당선조차 예측하지 못할 때 어떤 석학보다 그 이유와 맥락을 잘 분석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정계 입문의 길 또한 열렸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39세 상원의원이란 밴스의 오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의 시선은 ‘미 2인자’를 향한다. 최근 미 언론은 독보적인 지지율 1위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을 무의미하게 만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떤 부통령 후보를 고를지 주목하고 있다. 밴스의 이름은 어떤 매체의 부통령 후보군 기사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7일 밴스를 세라 허커비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보수 논객 터커 칼슨 등의 경쟁자보다 가장 먼저 거론했다. 밴스가 어떤 식으로든 트럼프 집권 2기에 요직을 맡을 것으로 내다봤다. 밴스는 지난해 11월 상원의원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로 초반 열세를 뒤집었다. 은혜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최근 재집권 시 정치 보복 논란을 부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여러 문제적 발언을 “진의가 왜곡됐다”며 두둔하고 있다. “트럼프가 또 훌륭하고 위대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낯 간지러운 칭송까지 곁들였다. 측근 발탁 시 ‘충성심’을 가장 중시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특성, 대표적인 경합주이며 17명이라는 적지 않은 선거인단이 걸려 있는 오하이오주 출신, ‘아메리칸 드림’ 자체인 인생 여력, 미 사회에서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하는 인도계 부인 등 부통령 후보 지명에 관계없이 밴스가 지금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발판은 충분하다는 평이 많다. 베스트셀러 작가 출신 정치인의 최종 정착지가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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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헨 밀레이 당선에… 트럼프-보우소나루 “희망 다시 빛나”

    “남미에 희망이 다시 빛난다. 이 좋은 바람이 미국과 브라질에도 불기를 바란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확정 직후 ‘브라질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 내놓은 반응이다. 흡사 밀레이 대선 캠프의 좌장 같은 말투다. 2022년 11월 대선 패배에도 호시탐탐 정계 복귀를 노려 온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극우 열풍 확산에 대한 노골적인 희망을 드러냈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재집권을 시도 중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또한 자신을 수차례 칭송한 밀레이 당선인의 승리를 반겼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당신(밀레이 당선인)이 자랑스럽다”고 반색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해 “사회주의자와 싸우는 몇 안 되는 현인(賢人)이어서 존경한다”고 극찬했다.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북미, 중남미 정치인 세 명은 활발한 소셜미디어 사용을 통해 반(反)기성정치, 반엘리트 정서를 자극한다. 또 자신이 구원자라는 메시아 담론을 설파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BBC 브라질판이 분석했다. 작은 정부, 무기 소지 등을 지지하고 열광적 지지층과 반대파를 동시에 보유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웃사이더 → 최고권력자 직행세 사람은 모두 기성 정치권과 철저히 거리를 둔 채 단기간에 최고권력자가 됐다.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의회 및 공직 경험이 전무하다. 2015년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찻잔 속 태풍’을 점친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대선 후보가 됐다. 2016년 11월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밀레이 당선인 또한 2021년 하원의원이 된 지 2년 만에 최고권력자가 됐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1988년 정계에 입문했지만 30여 년간 8번이나 당적을 옮기는 등 역시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2018년 10월 대선 때도 소속 사회자유당에 대선 9개월 전 입당했다. 주류 언론과 불화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권자와 직접 소통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밀레이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틱톡, 인스타그램 등 젊은층이 즐겨 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가 강제로 뺏은 돈을 받아내야 한다”는 감세 공약을 설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공식 기자회견, 대변인 등을 거치지 않고 X(옛 트위터)에 곧바로 주요 정책 등을 공개했다.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한 그의 지지층이 2021년 1월 의회에 난입했을 때 이를 선동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X로부터 사용 정지를 당하자 아예 ‘트루스소셜’을 직접 만들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또한 트위터, 페이스북을 활발히 사용한다. 2018년 대선 직전 괴한의 습격을 받자 병원에서 치료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며 지지층을 결집했다.● 선거 부정론 즐겨… “민주주의 위태” 세 사람은 선거 부정론을 즐겨 제기하며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공통된 지적도 받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직도 2020년 대선에서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다시 집권해야 한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또한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1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을 때 미국에 머물며 선거 부정론을 제기했다. 전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관행을 깬 것이다. 밀레이 당선인은 자신이 1위를 한 8월 예비선거 때부터 일부 후보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2위로 밀린 10월 대선 1차 투표 때도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차이점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동성혼, 낙태 등을 반대하며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지지를 얻고 있다. 다만 밀레이 당선인은 자유주의자답게 동성혼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이 (인간 대신) 코끼리와 함께 있고 싶고 코끼리가 동의하면 그건 그 사람과 코끼리의 문제”라고 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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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웃사이더→최고권력자’ 직행…밀레이·트럼프·보우소나루의 공통점은?

    “남미에 희망이 다시 빛난다. 이 좋은 바람이 미국과 브라질에도 불기를 바란다.”‘아르헨티나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확정 직후 ‘브라질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 내놓은 반응이다. 흡사 밀레이 대선 캠프의 좌장 같은 말투다. 2022년 11월 대선 패배에도 호시탐탐 정계 복귀를 노려온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극우 열풍 확산에 대한 노골적인 희망을 드러냈다.내년 11월 대선에서 재집권을 시도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 또한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당신(밀레이 당선인)가 매우 자랑스럽다”며 반색했다. 밀레이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종종 트럼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혀왔다.‘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북미, 중·남미 세 명의 정치인은 활발한 소셜미디어 사용을 통해 반(反)기성정치, 반엘리트 정서를 자극하며 자신이 구원자라는 메시아 담론을 설파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BBC 브라질판이 분석했다. 작은 정부, 무기 소지 등을 지지하고 열광적 지지층과 반대파를 동시에 보유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웃사이더 → 최고권력자 직행세 사람은 모두 기성 정치권과 철저히 거리를 둔 채 단기간에 최고권력자가 됐다.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의회 및 공직 경험이 전무하다. 2015년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찻잔 속 태풍’을 점친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대선 후보가 됐다. 2016년 11월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밀레이 당선인 또한 2021년 하원의원이 된 지 2년 만에 최고권력자가 됐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1988년 정계에 입문했지만 30여년 간 8번이나 당적을 옮기는 등 역시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2018년 10월 대선 때도 소속 사회자유당에 대선 9개월 전 입당했다. 주류 언론과 불화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권자와 직접 소통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밀레이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틱톡, 인스타그램 등 젊은층이 즐겨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가 강제로 뺏은 돈을 받아내야 한다”는 감세 공약을 설파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공식 기자회견, 대변인 등을 거치지 않고 X(옛 트위터)에 곧바로 주요 정책 등을 공개했다.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한 그의 지지층이 2021년 1월 의회에 난입했을 때 이를 선동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X로부터 사용 정지를 당하자 아예 ‘트루스소셜’을 직접 만들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또한 트위터, 페이스북을 활발히 사용한다. 대선 직전 괴한 습격을 받자 병원에서 치료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며 지지층을 결집했다.● 선거 부정론 즐겨, “민주주의 위태”세 사람은 선거 부정론을 즐겨 제기하며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공통된 지적도 받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직도 2020년 대선에서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다시 집권해야 한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또한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1월 루이스 이냐시우 다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을 때 미국에 머물며 선거 부정론을 제기했다. 전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관행을 깬 것이다. 밀레이 당선인은 자신이 1위를 한 8월 예비선거 때부터 일부 후보가 자신의 투표용지를 훔쳤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2위로 밀린 10월 대선 1차 투표 때도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차이점도 있다. 트럼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동성혼, 낙태 등을 강하게 반대하며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지지를 얻고 있다. 다만 밀레이 당선인은 자유주의자답게 동성혼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과거 페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이 (인간 대신) 코끼리와 함께 있고 싶고 코끼리가 동의한다면 그건 그 사람과 코끼리의 문제”라고 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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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긴축종료 기대감 ‘훈풍’… “이르면 내년 3월 금리인하” 전망도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CPI)가 월가 예상치를 크게 하회하면서 지난해 3월 이후 이어졌던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 기조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이며 관건은 금리 인하의 ‘시기’와 ‘강도’일 뿐이란 전망 역시 나온다. 월가 일각에서는 빠르면 내년 3월부터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내릴 것으로 본다. 이를 반영한 듯 국내외 금융시장에도 훈풍이 불었다. 15일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28.1원 하락한 1300.8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31원 넘게 떨어져 1297.6원까지 진입했다. 14일(현지 시간) 뉴욕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상승하자 15일 코스피와 코스닥 또한 각각 2.2%, 1.9% 올랐다. 이날 일본 닛케이지수는 2.52%, 홍콩 항셍지수는 3.92% 뛰었다. 미 노동부는 10월 CPI가 전년 동월 대비 3.2% 올랐다고 14일 밝혔다. 9월 상승률(3.7%)과 월가 예상치(3.3%)를 모두 밑돌았다. 아직 연준의 목표치 2.0%에 못 미치지만 지난해 여름 9%를 넘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다. 특히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4.0%로, 2021년 9월 이후 2년 1개월 만의 최저치였다. 미 물가 진정세가 수치로 확인되면서 지난해 3월 이전 ‘제로’였던 기준금리를 현재 5.25∼5.50%까지 올린 연준의 긴축 사이클 또한 끝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펀드 매니저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미 금리 인상 주기가 종료됐다”고 답했다. 금리 선물(先物)을 통해 기준금리 수준을 점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 역시 연준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99.8%로 예상했다. 다만 금리 인하의 시점과 강도에 대해서는 주요 금융사의 전망이 엇갈린다. 중동과 유럽에서 벌어진 두 개의 전쟁 등으로 미 경제 또한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연준이 내년 초부터 금리를 내릴 것이란 의견과 성장률, 고용, 소비 등 미 경제지표가 괜찮은 수준이므로 인하 시기와 횟수 모두 적을 것이란 전망이 맞선다. 스위스 UBS은행은 미 경제가 빠르면 내년 2분기(4∼6월)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며, 연준 또한 경기 부양을 위해 내년 3월부터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14일 밝혔다. 이후 계속된 금리 인하로 2025년에는 기준금리 수준이 1.2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내년 4분기(10∼12월)가 되어야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점쳤다. 추가 인하가 이어져도 2026년 2분기는 되어야 기준금리가 3.50∼3.75%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 주요 인사와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또한 과도한 인하 기대감은 금물이라고 진단했다. 오스턴 굴즈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14일 “인플레이션이 하락할 때 그 과정에 몇몇 장애물이 있다”며 본격적인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 연은 총재 역시 “인플레가 2%까지 순조롭게 내려가고 있다고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가세했다. 다이먼 CEO 또한 “인플레가 그리 빨리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연준이 조금 더 (긴축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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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하정민]‘난민’서 ‘억만장자’된 하니예

    1962년 당시 이집트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샤티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 남부 아슈켈론 인근에 살던 그의 부모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 발생한 제1차 중동전쟁으로 난민이 됐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도 이긴 이스라엘은 가자를 점령했다. 혹독한 탄압이 시작됐다. 가자 이슬람대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 ‘무슬림형제단’과 이를 이끄는 아흐메드 야신을 만났다. 1987년 이스라엘의 압제에 항거하는 대대적인 봉기, 즉 제 1차 ‘인티파다’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야신은 무력 투쟁을 천명하며 하마스를 설립했다. 이런 야신을 도우며 두 차례 투옥됐다. 2004년 야신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졌다. 한 해 뒤 이스라엘이 가자의 통치권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에 넘겨주자 이스라엘을 향한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PA의 온건 노선에 반대하며 2007년 가자에서 PA를 몰아냈다. 2017년 하마스 수장이 됐고 지난달 7일 이스라엘 선제 공격을 단행했다. 이스마일 하니예 하마스 정치 지도자의 약력이다. 돈과 거리가 멀어보이는 삶이다. 그런데 최근 영국 더타임스는 그의 재산을 40억 달러(약 5조2000억 원)로 추산했다. 영국 텔레그래프, 프랑스24, 이스라엘 와이넷 등도 13명의 자녀를 둔 하니예가 카타르 도하의 최고급 호텔 포시즌스에 오랫동안 거주했으며 자녀, 사위 등의 명의로 가자 곳곳에 부동산을 보유했다고 보도했다. 난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2009년까지만 해도 그 자신 또한 출생지 샤티 캠프에서 살았던 하니예가 무슨 수로 이 돈을 벌었을까. 그의 부패 의혹을 폭로한 매체들은 하나같이 그가 이집트에서 가자로 들여오는 상품에 20%의 세금을 물리고 암시장에서 밀수 수수료까지 거둬 들여 떼돈을 벌었다고 전했다. 모든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240만 명 가자 주민의 약 3분의 2가 빈곤 상태인데 그 지도자가 가자에 머물지 않으며 조(兆) 단위 재산까지 보유했다는 의혹에 직면한 것은 석연치 않다. 그 부(富)의 원천이 고통받는 가자 주민의 푼돈이라면 더 그렇다. 하니예 외에 다른 하마스 지도자도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게 다 이스라엘과 서방의 가짜뉴스’라고 우기기만 할 수도 없다. 하니예의 장남 또한 이집트 라파 검문소에서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가자로 반입하려다 이집트 당국에 체포된 전력이 있다. 하니예의 부가 단순히 일가의 호화 생활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이 돈의 상당 부분은 이스라엘 투쟁 자금으로 쓰인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분명 잘못이나 그것이 하마스의 선제 공격과 민간인 학살 및 납치를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악(惡)을 악으로 갚겠다고 나서는 순간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피의 악순환’만 되풀이된다. 하마스 지도부가 그토록 싫어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매우 흡사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 또한 아니러니다. 양측 모두 부패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또 둘 다 ‘외부의 적’을 이용해 장기 집권을 해 왔다. 이번 전쟁을 자신들의 행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할 것도 분명하다. 하마스가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성전(聖戰)’이라 주장하며 무력 투쟁을 강화하는 동안 가자 주민의 삶은 점점 수렁에 빠져든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에 따르면 가자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1257달러(약 151만 원)에 불과하다. 1000명의 신생아 중 16.6명이 숨지고 유아의 약 18%가 만성 영양실조로 고통받는다. 실업률은 45%가 넘는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지난달 전쟁 발발 당시 하니예와 하마스 지도부는 도하의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하마스 대원들이 이스라엘 노약자와 어린이 등을 납치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를 ‘성전’으로 여길 사람은 없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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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가자 난민촌 공습은 명백한 전쟁범죄…탄압 멈추지 않으면 중동평화 불가능”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탄압을 멈추지 않으면 중동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이 설사 하마스를 없앤다 해도 제2,제3의 하마스가 또 나올 겁니다.”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63)는 2일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이스라엘이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촌을 거듭 공습한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라며 지난달 7일 전쟁 발발 이후 약 1만 명의 가자 주민이 숨지고 인도주의 위기 또한 고조된 것은 모두 이스라엘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쿠제치 대사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팔레스타인 민간인 보호에 나서야 한다며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숨진 가자지구 주민의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난민촌, 그리스정교회 소속 성(聖)포르피리오스 교회, 구급차 등 민간인 대상 시설을 거듭 공격하는 행위을 막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동아일보는 지난달 18일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대사와 만났고 이에 더해 쿠제치 대사의 발언도 들었다. 전쟁 후 주한 외교공관이 없는 팔레스타인 측의 입장을 꾸준히 대변해 온 이란, 이스라엘의 주한 대사 모두와 만난 언론은 동아일보가 유일하다. 4월 부임한 쿠제치 대사의 첫 국문지 인터뷰이기도 하다.● 하마스 궤멸은 ‘헛된 꿈’쿠제치 대사는 이날 인터뷰 내내 하마스가 선거로 가자지구 제1당에 오른 합법 정부임에도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부정하고 2007년부터 16년간 가자지구를 봉쇄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 민간인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이것이 이번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그는 “가자지구에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희망을 가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청년이 많다”며 가자 주민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하마스 궤멸을 논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 고(故) 야세르 아라파트가 미국과 이스라엘과 맺은 ‘오슬로 평화 협정’이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고 이스라엘 측을 비판했다. 이후 이스라엘이 협정을 지키지 않고 가자지구를 탄압했으며 이에 가자지구 주민 또한 무력 투쟁만이 이스라엘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게 됐다는 것이다.쿠제치 대사는 이스라엘 일각에서 “하마스가 붙잡은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을 데려오기 위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하마스 측에 주자”는 여론이 있을 정도로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내부 여론도 좋지 않다는 점을 거론했다. 네타냐후 정권이 지지율을 위해 내내 극우 행보를 계속한 것이 문제라는 취지다.또한 그는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곳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는 점도 비판하며 “이 곳이 제2의 가자지구가 될 여지가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 서방 이중잣대와 편파보도 심각쿠제치 대사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서방의 이중잣대와 편파 보도가 심각하다고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서방 언론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용인한다”며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 또한 실상에 비해 훨씬 적게 보도되고 있다고 했다.이란이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를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은 팔레스타인에 ‘결례’일뿐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탄압을 흐리기 위한 용도”이며 이스라엘에만 이익일 뿐이라고 단언했다.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하마스를 도와 이번 전쟁에 참전할 가능성에 대해 묻자 그는 “헤즈볼라 지도부는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킨다. 헤즈볼라의 참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참전한다면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위기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의 참전일 것”이라고 논평했다. ● 한-이란 1000년 교류, 협력 더 강화해야한국과 이란의 교류 역사가 1000년에 이른다며 양국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란의 ‘쿠쉬나메(Kush Nama)’ 서사시에는 멸망한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자가 신라까지 왔으며 신라 공주와 혼인을 했다는 내용이 존재한다. 신라 유적에서도 페르시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 여럿 발견됐다.쿠제치 대사는 “이처럼 양국 관계는 1000년 이상을 이어온 관계이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도 매우 좋았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제재, 이란산 원유 판매대금의 한국 동결 등으로 잠시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 회복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한국에 동결됐던 이란산 원유자금 문제가 해결돼 윤석열 대통령께 감사하며 개인적으로도 영광”이라고 했다. 이 자금은 현재 한국에서 카타르 은행으로 이전된 뒤 미국이 다시 동결한 상태다.한국 내 동결 기간 중 환차손, 이자 등으로 이란이 약 15%의 손해를 봤으며 이란 일각에서 이 손해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양국 협력이 강화되면 그 이상의 혜택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란이 원유, 천연가스, 리튬 등 각종 자원을 보유했고 약 8700만 명 인구의 대부분이 젊은 층이어서 산업 선진국인 한국과의 협력 여지가 많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우수한 전력 기술을 공유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한국 대통령의 이란 방문이 없었다며 윤 대통령의 방문을 기대한다고 했다.이란이 ‘한반도의 비핵화’(한국, 미국 등은 ‘북한의 비핵화’라고 표현)를 지지하며 서방과의 핵합의를 복원하기 위한 자국민의 열망도 높다고 소개했다. 그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를 막을 조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이란의 핵합의 복원 추진이 한반도에도 ‘역할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그는 “많은 한국 국민이 이란을 직접 방문하기를 기대한다”며 “이란에 온 모든 사람들이 ‘오기 전 걱정도 있었지만 실제로 와 보니까 너무 좋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 대사1960년 테헤란 출생1988년 테헤란대 경영학과 졸업시리아, 레바논, 나이지리아 등에서 근무2023년 4월~현재 주한 이란 대사☞ 하정민 기자 dew@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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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가자 난민촌 공습은 명백한 전쟁범죄… 팔 탄압 멈추지 않으면 중동평화 불가능”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탄압을 멈추지 않으면 중동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하마스를 없앤다 해도 제2,제3의 하마스가 또 나올 겁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63)는 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피란민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의 자발리야 난민촌을 거듭 공습한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라며 지난달 7일 전쟁 발발 이후 약 1만 명의 가자 주민이 숨지고 인도주의 위기 또한 고조된 것은 모두 이스라엘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18일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대사와 만났고 이에 더해 쿠제치 대사의 발언도 들었다. 전쟁 후 주한 외교공관이 없는 팔레스타인 측의 입장을 꾸준히 대변해 온 이란, 이스라엘의 주한 대사 모두와 만난 언론은 동아일보가 유일하다. 4월 부임한 쿠제치 대사의 첫 국문지 인터뷰이기도 하다. 쿠제치 대사는 하마스가 선거로 가자지구 제1당에 올랐음에도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부정하고 2007년부터 16년간 가자지구를 봉쇄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가자지구에는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희망을 가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청년이 많다”며 가자 주민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하마스 궤멸을 논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 곳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는 점도 비판하며 “제2의 가자지구가 될 여지가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서방의 이중잣대와 편파 보도가 심각하다고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서방 언론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용인한다”며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 또한 실상에 비해 적게 보도되고 있다고 했다. 이란이 하마스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것은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를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은 팔레스타인에 ‘결례’라고 했다. 다만 하마스에 무기를 지원하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탄압을 흐리기 위한 용도”라고 단언했다. 한국과의 협력 의지도 강조했다. 그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한국에 동결됐던 이란산 원유자금 문제가 해결돼 윤석열 대통령께 감사하며 개인적으로도 영광”이라고 했다. 이 자금은 현재 한국에서 카타르 은행으로 이전된 뒤 미국이 다시 동결한 상태다. 한국 내 동결 기간 중 환차손, 이자 등으로 이란이 약 15%의 손해를 봤으며 이란 일각에서 이 손해를 보상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지만 “양국 협력이 강화되면 그 이상의 혜택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란이 원유, 천연가스, 리튬 등 각종 자원을 보유했고 약 8700만 명 인구의 대부분이 젊은 층이어서 산업 선진국인 한국과의 협력 여지가 많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우수한 전력 기술을 공유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한국 대통령의 이란 방문이 없었다며 윤 대통령의 방문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란이 ‘한반도의 비핵화’(한국, 미국 등은 ‘북한의 비핵화’라고 표현)를 지지하며 서방과의 핵합의를 복원하기 위한 자국민의 열망도 높다고 소개했다. 그는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를 막을 조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며 이란의 핵합의 복원 추진이 한반도에도 ‘역할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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