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청문회(聽聞會)

  • 입력 1999년 9월 2일 18시 25분


이제 聽聞會라는 말이 그리 생소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일해재단 광주사태 국제통화기금(IMF)사태 등을 통해 수차 경험했기 때문이다. 본디 미국의 의회제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한국도 88년부터 국회법을 개정하여 본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국정의 중요 사안에 대해 증인 참고인 등을 불러 그들의 증언과 진술을 통하여 眞相(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런데 어느 하나 속시원하게 眞相이 밝혀진 적이 없었다. 證人(증인)들의 否認(부인)과 責任轉嫁(책임전가), 일부 의원들의 黨利黨略(당리당략)을 앞세운 정치공세로 疑惑(의혹)과 忿怒(분노)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사회 일각에서는 聽聞會 무용론도 대두되고 있다.

형식과 내용에서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도 聽聞會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推鞫(추국)제도가 그것이다. 주로 謀反(모반)이나 大逆(대역)과 같은 중대 國事犯(국사범)을 심문했던 것으로, 訊杖(신장)을 사용하여 모진 고문을 가하면서 自白(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推라면 鞫은 철저하게 심문하는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왕이 직접 심문하는 親鞫(친국)이 있고 義禁府(의금부)나 司憲府(사헌부)에서 행했던 庭鞫(정국)이 있다.

어떤 경우든 王命(왕명)에 의하는 것으로 일단 推鞫이 결정되면 심문을 담당할 관원을 선발하고 義禁府내에 鞫廳(국청)을 설치하여 죄인을 불러온다. 성명 연령 본관 등을 물어 본인임을 확인한 다음 죄목을 낱낱이 들어 심문하고 마지막으로 自白토록 하는 것이다. 물론 自白하지 않으면 訊杖이 따랐다.

大明天地(대명천지)에 그같은 방법이 통할 수 있으랴마는 답답한 심정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옛날 舜(순)임금 때의 법무장관 皐陶(고요)는 누구나 承服(승복)할 수 있는 명판결로 백성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다. 외뿔 달린 (해치)라는 神羊(신양)을 이용하여 명쾌하게 是非(시비)를 가렸던 것이다. 그 神羊 좀 다시 데려왔으면 하는 심정이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chung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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