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징용피해자, 자국 법원서 日기업에 첫 집단손배소송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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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100만위안-사죄광고 요구… 배상금 최대 1조7000억 원 육박
日정부 “1972년 성명때 청구권 소멸”

중일전쟁(1937∼45년) 당시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된 중국인 피해자들이 단일 건으로 최대 1조7000억 원에 이르는 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26일 중국 베이징(北京) 제1중급인민법원에 냈다. 중국 법원에서 처음 다뤄지는 이번 소송은 중일 갈등의 새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최종 판단을 기다리는 한국인 강제징용자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중국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머우한장(牟漢章) 씨 등 강제징용 중국인 피해자와 유족 37명이 일본 기업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피소된 기업은 일본 광산업체인 코쿠스(焦炭)공업(옛 미쓰이·三井 광산)과 미쓰비시(三菱)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이다. 소송은 35개 일본 기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1943∼45년 중국인 3만8953명이 일본 35개 기업의 135곳 이상의 작업장에서 강제노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전했다. 최고령 피해자는 79세, 최연소자는 11세로 대부분 30세 이하였다. 이들 중 6830명(8.3%)이 일본에서 숨졌다.

코쿠스공업에서는 연행자 5650명 중 1023명(18.1%)이 숨졌다. 미쓰비시머티리얼에서도 3765명의 연행자 가운데 722명(19.2%)이 사망했다.

원고 측 고문단의 캉젠(康健) 변호사는 “일본 회사들에 중국과 일본의 주요 매체에 각각 사죄 광고를 싣고 피해자 1인당 100만 위안(약 1억7415만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며 “피해자 9415명 전원이 참가할 수 있는 집단소송임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소송 총액은 최대 94억1500만 위안(1조6396억2225만 원)에 이르며 일본 기업이 패소하면 중국 내 자산 차압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고문단 소속의 쩌우창룬(鄒强倫) 변호사는 “역사의 진실을 되살리려는 게 소송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일본 측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피소된 기업들은 “아직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했다”며 언급을 피했다. 지지통신은 “얼어붙은 일중 관계에 새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산케이신문은 “제소 지원 단체에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가까운 학자가 여러 명 있다”고 전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중국 측 관계자와 관계 기업 간의 민사소송 문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일중 공동성명에 따라 청구권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강제징용은 엄중한 범죄행위이며 아직 적절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 피해자들은 1990년대 이후 일본 법원에 제소했으나 패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2007년 4월 “중국이 전쟁배상 청구를 포기한 1972년 일중 공동성명으로 개인 청구권도 포기했다”고 판결했다. 중국인 피해자들은 “국가 간 협정을 맺었다고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베이징=이헌진 mungchii@donga.com
도쿄=배극인 특파원
#중국 징용#일본기업#집단손배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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