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담대하거나, 집요하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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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김경남 옮김/356쪽·1만6800원·모비딕
日영화 거장의 속살 오롯이…

“천사처럼 담대하게, 악마처럼 집요하게.” 이를 영화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왼쪽)은 유럽과 할리우드 영화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가게무샤’(1980년) 촬영장을 찾은 프랜시스 코폴라(가운데) 감독과 조지 루커스 감독. 모비딕 제공
“천사처럼 담대하게, 악마처럼 집요하게.” 이를 영화인생의 모토로 삼았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왼쪽)은 유럽과 할리우드 영화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칸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가게무샤’(1980년) 촬영장을 찾은 프랜시스 코폴라(가운데) 감독과 조지 루커스 감독. 모비딕 제공
일본 대중문화 소비에는 정치적인 시차가 존재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1910∼1998)의 영화도 그가 죽고 난 뒤에야 볼 수 있었다. 그는 1998년 9월 별세했고 그해 10월 일본 문화가 개방돼 ‘라쇼몽’(1951년)이나 ‘7인의 사무라이’(1954년)를 합법적으로 감상하기까지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이 자서전도 일본 현지에 단행본으로 나온 때가 1984년이니 국내에서 번역되기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다. 그의 영화와 자서전을 비롯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을 미국 출판사 크노프의 구로사와 프로덕션이 보유하고 있어, 이 사실을 수소문해 판권 계약을 하는 데만도 1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책장을 열면 세계적인 거장의 고전 영화가 그러하듯 오래전 제작됐으나 그 빛이 바래지 않은 이야기들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영화계 데뷔 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네 살 위의 형이다. 수재이자 염세주의자였던 형은 28세에 자살하기 전까지 영화 평을 쓰고 무성영화 시절 변사로 활약하며 동생의 영화 수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별 볼일 없는 화가 인생을 접고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이 ‘인생 최고의 스승’이 됐다. 그리고 이 대목부터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빨라진다. 야마모토 감독의 조감독 시절부터 데뷔작인 ‘스가타 산시로’(1943년)를 비롯한 명작이 탄생하기까지의 뒷얘기가 전시 및 전후 혼란기 무성영화에서 토키(유성영화) 시대로 접어든 일본 영화계 현장을 배경으로 영화처럼 펼쳐진다.

두 번째 작품 ‘가장 아름다운 자’(1944년)는 공장에 동원된 여성 자원봉사대의 얘기다. 그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여배우들에게 화장을 지우고 영화 배경인 공장 기숙사에서 일반 여공들과 똑같이 먹고 자면서 매일 8시간 넘게 일하게 했다.

‘추문’(1950년)의 ‘실패’는 등장인물에게 끌려다녔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살아 있어 작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저절로 연필이 미끄러지듯 그의 삶을 쓰고 있었다.”

전시 내무성 검열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노 감독의 분노가 지면을 뚫고 나올 듯하다. 생일 케이크가 나와도 미국적이라며, 여자의 무릎만 보여도 외설적이라며 잘랐다. 전후엔 영화사 노조의 발언권이 강해 배우 채용 심사도 하고, 시나리오도 심의해 그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그는 평생 30편의 영화를 찍고, 89세를 일기로 죽기 3년 전까지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자서전은 11번째 영화 ‘라쇼몽’에서 끝난다. 일본 감독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첫 작품으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전혀 다른 증언을 하는 줄거리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여기서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라쇼몽’ 이후의 나에 대해서는 그 뒤의 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일본#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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