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대통령, 나치 대학살 자행 佛마을 찾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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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영혼을 부정하지 않는다, 조국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 잊지 않겠다”
어린이 207명 등 주민 642명 희생
佛대통령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방문”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오른쪽)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2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군이 대학살을 벌인 프랑스 중서부 도시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을 찾았다. 두 정상이 생존자 로베르 에브라 씨와 함께
손을 잡고 교회를 둘러보고 있다. France3 화면 캡처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오른쪽)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2일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군이 대학살을 벌인 프랑스 중서부 도시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을 찾았다. 두 정상이 생존자 로베르 에브라 씨와 함께 손을 잡고 교회를 둘러보고 있다. France3 화면 캡처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저지른 잔혹한 전쟁범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나치의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공식 방문한 데 이어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4일 나치의 대학살이 자행된 프랑스 리모주 지방의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을 방문했다.

이날 오후 2시 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부부와 함께 주민들이 학살된 마을 교회를 방문하고 희생자 기념비에 화환을 바쳤다. 두 정상은 로베르 에브라 씨(88) 등 학살 현장의 생존자 2명으로부터 당시의 끔찍했던 현장에 대한 증언을 듣기도 했다. 독일 대통령이 이 마을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치군은 1944년 6월 10일 이 마을 교회에 여성과 아동을 가둔 채 독가스를 풀고 불을 지르는 등 주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이 사건으로 성인 남자 190명, 성인 여자 245명, 만 15세 이하 어린이 207명 등 642명이 숨졌다. 남자들은 헛간에 감금시킨 후 수류탄으로 몰살시키고, 여자와 아이들은 교회에 감금시킨 뒤 불을 질러 죽였다. 밖으로 나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기관총으로 사살했다. 학살에서 생존한 주민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인원은 6명에 불과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프랑스 당국은 이 사건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마을을 폐허 상태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을 인근에 새로 만들었다. ‘유령 마을’로도 불리는 오라두르쉬르글란은 지금도 학살 당시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고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1999년에는 학살 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 유품을 모아 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에는 학살이 발생한 시점에 멈춰진 시계, 열기에 녹은 안경 등 희생자들의 개인 유품이 전시돼 있다.

가우크 독일 대통령은 전날 엘리제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내 영혼을 부정하지 않겠다. 이 마을이 기억하고 있는 독일과 현재의 독일은 전혀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가우크 대통령의 이 마을 방문에 대해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방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함으로써 프랑스와 독일은 담대한 미래를 준비해 왔다”고 평가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2일 악명 높은 나치 무장친위대(바펜 SS) 출신 92세 노인이 70여 년 전에 저지른 살인으로 재판정에 섰다. 네덜란드 출신의 독일 국적자인 브루인스는 1944년 네덜란드에서 레지스탕스 요원 1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남은 생이 얼마 되지 않는 90대 노인이 나치 전범으로 법의 심판을 받기는 2011년 폴란드 시비보르 유대인 강제수용소 간수 출신 존 데마뉴크(당시 91세), 지난해 아우슈비츠 수용소 간수 출신 한스 리프시스(93세) 재판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독일에서 나치 전범은 공소시효가 없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독일#요아힘 가우크#나치#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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