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마시면 말이 많아지거나 손이 떨려 들고 있던 물건을 자신도 모르게 떨어뜨린다는 사람도 있다. 오후에 마신 커피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이도 적지 않다. 반면 맛과 향이 좋아서 습관적으로 마실 뿐 커피를 마신다고 생리적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커피를 마셔야 정신이 맑아져 오전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의약품에서도 이 같은 차이가 나타난다. 흔히 복용하는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이 어떤 이에게는 큰 효과를 나타내지만 다른 이에게는 별 신통치 않을 수 있다. 복용할 약의 분량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약을 개발할 때는 이런 개인별 차이를 고려한다. 신약 하나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데 10년 넘게 걸리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약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작용을 유발해 목숨을 잃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대다수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을 최종 선택하고 그에 따라 복용 분량을 결정한다.
분자생물학의 발달 덕분에 커피 같은 기호식품이나 의약품에 대한 개인별 반응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인체에는 각 화학물질에 특이하게 결합하는 수용체가 있다. 이 수용체의 구조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약물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수용체 구조가 개인마다 다른 이유는 수용체를 만들도록 명령하는 DNA의 염기서열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천∼수만 개 염기서열 중 1, 2개가 달라도 수용체 구조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런 차이는 크게는 인종이나 민족 간에 나타난다. 유럽 사람보다 한국 사람에게 더 효과적인 약이 있고, 한국 사람 중 특정 체질에 더 잘 듣는 약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 수용체 DNA의 염기서열 차이를 반도체와 비슷한 DNA칩을 이용해 알아내는 방법이 개발돼 있다. 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를 인종 또는 민족, 심지어 개인별로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안전한 약을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를 줄여 신약개발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개인별로 적합한 처방을 하게 돼 약에 대한 부작용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양약도 한약처럼 체질에 따라 조제하는 ‘맞춤약 시대’가 오고 있다.
유장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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