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날 영면에 들다'…'인연' 피천득 선생 영결식

  • 입력 2007년 5월 29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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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별세한 수필가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의 영결식이 29일 오전9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고인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기도 했다. 고인이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영결식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의 주례로 미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영결미사를 마친 뒤 소설가 조정래 씨는 조사에서 "많은 문인들이 탈나고 때 묻는 현실이지만 선생님은 고결하고 우아하고 깨끗하셨다"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온유하게 대했지만 스스로에게는 단호했던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고인의 제자인 석경징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생은 높이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살면서도 한결같이 정갈하고 청아한 모습이었다"면서 "그림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복사판 그림 한 장, 베토벤 전집 하나 소유하지 않으셨던 삶 자체가 '무소유'였다"고 추모했다.

이해인 수녀는 피아니스트 신수정 씨의 반주에 맞춰 '피천득 프란치스코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조시를 낭송했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고별사를 통해 "선생은 맑은 것이 가려지기 쉬운 세상에 맑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면서 "교활한 지혜를 멀리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을 선생은 삶을 통해 깨우치셨다"고 말했다.

고인이 애지중지했던 딸 서영(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 씨는 헌화식 도중 관 위에 엎드려 오열했다. 차남 수영(서울아산병원 소아과 의사) 씨는 "4월 아버님께서 서울대 교정을 거닐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날씨가 쌀쌀해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유가족들은 영결식에 앞서 오전5시 유해가 안치된 관을 버스에 싣고 서울대 교정을 한 바퀴 돌면서 고인의 '마지막 소원'을 풀었다. 영결식을 마친 뒤 고인의 유해는 장지가 있는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으로 옮겨졌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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