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공짜는 없다

  • 입력 2007년 5월 2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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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꿴 호랑이’ 그림=권문희. 사계절 펴냄
‘줄줄이 꿴 호랑이’ 그림=권문희. 사계절 펴냄
십여 년 전 외국으로 이민 가서 살다 다니러 온 친구가 있어서 휴대전화 가게가 밀집한 상가로 갔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단 하루만 있어도 휴대전화가 있어야 하겠다면서 함께 사러 가자고 해 온 것입니다. 몇 달 있다 도로 갈 거니까 가능하면 싼 걸 구해야 했지요.

상가에 들어서니 입구부터 그 친구가 혹할 만한 문구가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표현도 여러 가지였지요. 공짜, 무약정, 완전 공짜, 무조건 무료, 최신형 완전 무료 공짜…. 가게마다 경쟁적으로 큰 글씨를 써 붙여 놓고 있어서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가게들 앞에 서 있는 손님은 별로 없더군요.

그 친구가 ‘공짜’라는 글자를 운동회가 열리는 운동장의 만국기처럼 붙여 놓은 가게로 들어가려 하기에 제가 말렸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느냐고, 저렇게 요란하게 써 붙이고 호객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어디서 찾겠느냐고. 그러면서 더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상가 가장 안쪽에 손님이 두어 사람 있는 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가게도 다른 가게처럼 휴대전화가 가득 든 진열장이 있었고 사방에 케이스며 줄을 매달아 놓은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공짜라느니 무료라느니 하는 말은 전혀 쓰여 있지 않았지요. 그렇다면 정품을 제값 받고 판다는 말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런 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손님이 많으니 무슨 까닭일까요.

저는 가게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젊은 여주인과 비슷한 나이의 종업원이 서서 손님을 응대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제 등 뒤에서 느닷없이 ‘하하하’ 하는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친구의 웃음소리였지요.

그 가게의 벽 가운데에는 흰 복사지가 단 한 장 붙어 있었습니다. 종이에 적힌 글씨는 작지만 예쁘고 선명했습니다. 그 가게에서 읽을 글자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리로 향하게 되어 있었지요. 거기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땅 파서 장사합니다!!!!’

친구는 그 가게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했습니다. 땅이나 흙은 아니고요.

휴대전화는 물론 아주 공짜는 아니더군요. 그래도 그 친구 기분은 좋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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