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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19년 독립선언 장소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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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19년 독립선언 장소 변경

입력 2006-02-28 03:08수정 2009-10-08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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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일은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독립을 선언한다.”

1919년 2월 24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최린(崔麟) 집에서 천도교와 기독교 대표들 간에 이뤄진 합의.

그러나 그로부터 나흘 뒤인 2월 28일. 독립선언 장소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중국요리점 명월관의 별관인 태화관으로 갑자기 변경됐다.

그 배경과 이유를 놓고 남북한의 역사학자가 토론을 벌인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한국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전집과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조선전사(朝鮮全史)’를 토대로 꾸며본 난상 토론.

▽남한 학자=3·1운동 전날인 2월 28일 손병희(孫秉熙) 집에서 민족대표 23인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사전모임을 열었다. 박희도(朴熙道)가 ‘탑골공원은 군중심리에 의해 폭력화할 우려가 있다’며 장소 변경을 제안했고 참석자 모두가 이에 찬성했다.

▽북한 학자=운동계획을 갑자기 바꾼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들의 ‘독립선언식’ 놀음을 계기로 반일봉기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일제 탄압의 올가미를 벗어나기 위해 요리점 뒷골방에서 조용히 독립선언식을 진행하려 한 것이다.

▽남=하지만 민족대표들은 2월 28일 모임에서 ‘독립선언 후 일제 경찰이 오더라도 피하지 말고 함께 체포당하여 정정당당하게 경과를 주장할 것’에도 합의했다.

▽북=민족대표란 자들은 독립운동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평화적이고 타협적인 ‘독립 청원운동’ 범위에 멈춰 세우려 했다. 그것은 철두철미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배신행동이다. 그래서 다음 날인 3월 1일 청년학생대표들이 태화관으로 가서 ‘당당한 독립선언을 왜 이런 요리점에서 하는가’라고 추궁하지 않았는가.

▽남=학생대표들이 갑작스러운 장소 변경에 항의하며 민족대표들에게 ‘탑골공원으로 갈 것’을 요청한 것은 맞다. 그러나 민족대표들은 일본 경찰에 에워싸인 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경찰서로 끌려가면서도 거리의 군중에게 독립선언서를 뿌리며 만세를 불렀다.

▽북=민족대표란 자들은 태화관에서 ‘먹자판’을 벌여놓고 독립선언서조차 낭독하지 않았다.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에 스스로 전화를 걸어 일제의 품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민족의 원쑤’들에게 투항해 버린 것이다.

남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책 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바꾼 것뿐인데…. 다 쓰고 나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내일은 3·1절입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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