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99>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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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렇지는 않을 듯합니다. 항왕은 타고난 무골(武骨)로 한 싸움 한 싸움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뿐 길게 보고 계책을 짜낼 머리가 없습니다. 방금도 팽성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강해지는 저항에 본능적으로 불리함을 감지하고 길을 바꾼 듯합니다. 곧 뜻밖으로 완강하게 버티는 우리 수장(戍將)들과 뒤쫓아 오는 대왕의 대군에 앞뒤로 협격(挾擊)당하는 게 싫어서 잠깐 비껴선 것입니다.”

제왕 한신이 그렇게 별로 걱정하는 기색 없이 한왕의 말을 받았다. 한왕이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항왕이 회수(淮水)를 건넌 뒤 다시 동으로 강수(江水·장강)를 건너 강동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는 바로 제왕이 말한 상책(上策)을 고르는 셈이 되오. 그리 되면 어찌하겠소?”

“그 일은 막아야지요. 대왕께서는 추격의 완급을 조절하시어 항왕으로 하여금 중책(中策)을 고르도록 몰아가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항왕을 회북(淮北)에 잡아둘 수 있겠소?”

“먼저 대왕께서는 되도록이면 군사를 천천히 몰아 항왕에게 흩어진 서초의 군사들을 다시 모아들일 틈을 주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회남왕을 시켜 구강에 남은 군사들로 하여금 강동으로 가는 길목이 되는 회수 나루를 막게 하십시오. 그러면 세력이 불어난 항왕은 구태여 회수를 건너지 않고 회북에서 싸우기 좋은 땅을 골라 한 번 더 대왕과 결판을 내려 할 것입니다. 그때 대왕께서는 대군을 쪼개 여러 길로 나누어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들게 하십시오. 그러다가 그곳에 이르러 재빠르게 에워싸도록 하면 항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대군이 친 그물 한가운데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제왕 한신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왕은 팽성 부근에서 패왕 항우를 협격하지 못하게 된 게 못내 아쉬웠으나, 이미 일이 그렇게 된 마당에는 달리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한신의 계책에 따르기로 하고 그날로 경포가 보낸 사자에게 답신을 주어 보냈다.

‘회남왕은 구강에 급히 사람을 보내 강동으로 돌아가는 길목이 되는 회수 나루를 막게 하라. 나루마다 높은 곳에 군막과 깃발을 벌려 세워 대군이 지키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배를 거두어 남북으로 오가는 뱃길을 끊어버려라. 회북에 있는 회남왕의 군사가 이르러야 할 곳과 때는 일후 다시 사람을 보내 일러줄 것이다.’

이어 한왕은 하루 행군 거리를 절반으로 줄여 대군을 이끌고 천천히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패왕 항우의 움직임을 살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팽성 남쪽에서 흩어진 초군을 모아 세력을 불린 패왕 항우는 남쪽으로 내려가 해하(垓下)에 자리 잡았습니다. 성곽을 크게 고치는 한편 성 남쪽에 높은 방벽과 든든한 보루를 두른 진채를 세우는 것이 성안과 기각지세(기角之勢)를 이루어 그곳에서 한바탕 크게 싸워볼 작정인 듯합니다.”

탐마로부터 그와 같은 말을 들은 한왕은 한신의 다음 계책을 따랐다. 먼저 대군을 다시 나누어 자신과 한신, 팽월이 각기 한 갈래를 이끌고 동 서 북 3면으로 가만히 다가가 해하를 에워싸기로 했다. 그리고 경포에게도 사람을 보내 기현 남쪽 길로 해하에 이르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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