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獨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지휘자 구자범 씨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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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를 지휘할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 상임지휘자 구자범 씨. 구 씨는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서는 동양인이라고 특별한 차별을 받지 않았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있기 때문에 얼굴이 잘생길 필요도, 키가 클 필요도 없다”라며 미소 지었다. 김미옥  기자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를 지휘할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 상임지휘자 구자범 씨. 구 씨는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서는 동양인이라고 특별한 차별을 받지 않았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 있기 때문에 얼굴이 잘생길 필요도, 키가 클 필요도 없다”라며 미소 지었다. 김미옥 기자
“사람들은 제가 절대음감을 타고난 것을 축복으로만 생각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절대음감을 둔화시키는 훈련을 거치며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독일의 정상급 국립오페라극장의 수석상임지휘자가 된 구자범(具自凡·36) 씨는 ‘음악 천재’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스물다섯의 나이에 뒤늦게 독일 만하임대 음대로 유학을 떠난 그가 10년 만에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의 수석상임지휘자로 세계적인 지휘자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바탕에는 타고난 절대음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절대음감은 술잔을 부딪칠 때 쨍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음정을 알아맞힐 수 있을 만큼 모든 음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능력. 휴대전화 번호를 누를 때 나는 소리만 듣고도 번호를 알 수 있다. 이런 능력은 음악전공자 중에서도 많지 않은데 구 씨는 만하임대 심리학과에서 “개의 청력을 지녔다”고 말할 만큼 초절정의 음감을 지닌 것으로 판명됐다. 나라마다 440∼445Hz로 조금씩 달리 규정하는 A음을 들려주었을 때 그 음이 442Hz인지, 443Hz인지를 맞힐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런 절대음감이 오히려 최고의 지휘자가 되는 데는 장애가 됐다고 한다. “저의 음감은 피아노의 평균율(조바꿈이 자연스럽도록 수학적으로 계산해 조율한 음율)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사람의 목소리나 다른 관현악기의 순정률(자연 상태의 음률)을 견디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그의 귀는 디지털음의 정밀성을 지니고 있어 잡음이 섞인 아날로그음을 참지 못한다는 것. 이는 여러 종류의 악기와 사람 목소리의 조화를 끌어내야 하는 지휘자에게는 되레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그는 일부러 아마추어 남성 아카펠라 합창단을 지휘하며 자신의 예민한 귀를 아날로그음에 맞도록 둔화시키는 특별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는 가사를 먼저 숙지한 뒤 음악을 듣는다. 이런 훈련을 하다 보니 독일어뿐 아니라 오페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어에도 능숙해져 성악가들에게서 호평을 받는 요소가 됐다. 만하임대 음대 대학원생 시절 오페라극장의 바닥 청소를 맡은 데 이어 피아노 반주로 오페라 가수들의 연습을 도와주는 오페라 코치를 거치며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현장 경험을 쌓아온 것도 큰 자산이 됐다.

“독일의 오페라극장은 오케스트라, 합창단, 솔리스트, 무용단, 연극단을 함께 운영하며 1년 내내 상시 공연을 펼칩니다. 오페라극장 건물 안에 무대 의상과 세트, 구두를 직접 제작하는 공장까지 있습니다. 직원이 1000명을 넘는 경우도 있어요. 하나의 작은 도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 씨가 하노버극장 수석상임지휘자로 선임된 것은 지난해 10월. 하노버극장은 다름슈타트 국립오페라극장 차석 상임지휘자인 구 씨를 비롯한 후보 4명을 초청해 지휘를 시켜 본 뒤 그를 낙점했다. 그는 올해 9월부터 이 극장에서 펼쳐지는 주요 공연의 지휘를 맡는다.

“독일의 오페라극장 시스템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성악가들과 호흡을 같이하도록 하면서 키워내죠. 오페라의 서곡을 ‘신포니아’라고 부르듯이 오페라와 교향곡을 모두 경험하면서 커야 제대로 된 지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독일의 전통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성악가와 연출가, 무대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지는 오페라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독일에서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악기고 지휘자는 그 악기의 연주자다. 악기를 조율할 수 있는 권한은 수석상임지휘자에게만 있다. 다른 지휘자들은 그 ‘악기’를 빌려서 연주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독일에서는 초청 지휘자가 그 ‘악기’를 빌려 연주할 경우에는 리허설 없이 바로 무대에 올라야 한다. 그러나 ‘선심’ 좋은 한국에서는 조율도 하게 해 준다.

구 씨의 그 조율 솜씨를 직접 살펴볼 기회가 온다. 그는 2월 22∼25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지는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를 지휘한다. 합창은 국립오페라합창단과 국립합창단, 관현악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또 2월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서 현대음악가 파울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과 슈만의 교향곡 4번을 지휘할 예정이다.

그가 국내에서 오페라를 지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무엇보다 리허설을 한국말로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웃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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