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교수 논란의 본질]‘대한민국 정통성-美참전가치 否認’

  • 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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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의 남한 정통성 부인 발언으로 야기된 논란이 정치적 논쟁으로 바뀌면서 강 교수와 그를 옹호하는 인사들의 주장도 논리의 비약과 수위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

강 교수는 자신의 잇단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12일 인터넷매체 ‘데일리 서프라이즈’에 올린 ‘6·25전쟁은 침략전쟁 주장이야말로 국보법 위반’을 통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이 글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을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란 표현의 문제로 몰고 갔다. 그는 “‘통일전쟁론’은 오히려 북의 공식 입장인 남한의 북침에 대한 정당방위론을 부정한 것”이라면서 “6·25는 국제법상 내전”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서강대 신지호(申志鎬·정치학·자유주의연대 대표) 겸임교수는 강 교수의 이 같은 반론에 대해 “강 교수 필화사건의 본질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고 1950년 김일성의 통일전쟁으로 소멸됐어야 할 나라로 바라보는 부정적 국가관의 문제”라며 “그런데도 강 교수는 마치 논쟁의 성격이 6·25전쟁을 국제법상 침략전쟁으로 규정할 것인지, 내전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의 학문적 논쟁인 것처럼 비켜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강 교수 발언이 당초 논란이 된 것은 ‘통일전쟁’이라는 표현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미국을 6·25전쟁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가져온 ‘원수’로 규정하는 그의 인식 때문이라는 게 신 교수의 분석이다.

강 교수가 “6·25 때 1만 명 희생으로 전쟁이 끝날 수 있었으나 미국 때문에 399만 명이 더 죽었으므로 인명 희생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 미국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다”라고 말한 데서도 역사인식의 문제가 드러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미 군정청이 실시한 여론조사 자료 가운데 일부만을 취사선택해 “광복 후 한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사회·공산주의를 지지했으므로 그렇게 되어야 했다”는 강 교수의 주장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상당수 국민들이 당혹해 했던 것은 강 교수가 우리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통념들을 전면 부인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강연과 인터넷 기고 등을 통해 매우 감정적인 용어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장시기(張時基·44·영문학) 동국대 교수가 13일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김일성은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강정구 구하기’에 뛰어들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장 교수는 민교협 집행위원을 맡고 있으며 이번 학기 안식년을 맞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에서 연구 활동 중이다.

장 교수는 이 글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시선을 빌려 김일성은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라고 말하다가 후반부에서는 “하나의 한반도 속에서 김일성은 가장 위대한 근대적 지도자들 중의 하나”라고 단언하며 그를 간디나 나세르에 비교했다. 특히 장 교수가 글의 제목을 이처럼 매우 단정적으로 표현한 것이 주목된다. 우리 사회에서 “김일성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선언할 경우 어떤 반작용이 초래될지 쉽게 예측 가능한데도 일부러 그 같은 ‘자극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현직 교수가 김일성에 대해 ‘위대한 지도자’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쓴 것이 논란이 되자 장 교수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반제국주의 입장에 선 김일성이 인도의 간디처럼 비서구 진영의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말한 것”이라고 한발 뺐다.

학자들은 강 교수 사건이 이처럼 혼미에 빠진 것에 대해 정치권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영(金一榮·정치학) 성균관대 교수는 “일개 학자의 부적절한 발언에 따른 수사 과정에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발언하는 바람에 좌우 갈등의 양상으로 커져버렸다”고 말했다.

연세대 김호기(金晧起·사회학) 교수는 “강 교수 필화사건에는 처음부터 강 교수 발언에 대한 찬반의 문제와 함께 그와 같은 의견을 용납할 것이냐는 표현의 자유문제가 함께 놓여 있었다”면서 “그러나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부적절한 개입으로 문제가 권력기관 간의 불필요한 파워게임으로 비화됐다”고 지적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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