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정책실장 글 전문

  • 입력 2005년 7월 20일 16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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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종이비행기’ 한 비서관을 보내며

참여정부는 소통(communication)의 문제를 안고 있다. 가지고 있는 뜻과, 하고 있는 일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대학입시 본고사가 불러 올 공교육의 위기를 걱정하는 대통령의 말은 다음날 아침, ‘학력 콤플렉스’를 지닌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고의 국립대학 총장과 ‘한판’ 붙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 정치구조와 정당에 대한 깊고 오래된 고민을 담은 ‘연정’과 ‘선거제도’ 관련 구상은 무슨 음모가 있는 것처럼 소개된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일은 정부출범부터 지금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어 왔다. 공무원 주도의 정부혁신은 ‘홍위병 키우기’로 둔갑하고, 자주국방은 ‘반미’로 매도되곤 했다. 시장의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연일 ‘좌파정책’으로 공격받았고, 청와대 회의의 대부분을 경제문제에 할애하고도 ‘경제 챙기지 않는 정부’로 매도되곤 했다.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나름대로의 철학과 원칙을 확실히 지켜 온 대통령을 외국순방 한두 번에 확 바뀌는 ‘가벼운 사람’으로 그려대더니 이제는 ‘변한 것이 없다’느니 ‘다시 돌아갔다’느니 하고 써 댄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본질적 내용보다는 한두 마디의 표현을 두고 시비한다. 사상의 다양성에 대한 짧은 언급은 곧 바로 ‘좌익사상 논란’으로 보도되고, ‘과거에 있어 수도이전은 한 시대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했다’는 사실적 언급은 ‘집권세력의 집권연장을 위해 수도이전을 밀어 붙인다’는 비판적 사설로 이어진다.

개인적 느낌이지만 형상을 왜곡시키는 굴곡 심한 유리벽이 참여정부와 국민 사이에 놓여있는 듯하다. 일부 거대언론의 존재를 말함인데, 밖에서 이들 유리벽을 통해서 보는 참여정부와 대통령의 모습은 비정상이다. 머리는 크고 손은 작고, 뒤틀린 허리에 머리에는 큼지막한 뿔까지 달렸다. 그리고 이 잘못된 이미지는 강력하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실에 가까운 대안적 이미지의 형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참여정부라 하여 어찌 잘나기만 하겠나마는 이렇게 머리에 뿔까지 달린 모습으로 각인되어서야 되겠는가?

실제로, 거대언론의 의제 및 이미지 형성 능력은 탁월하다. 뭐든 집요하게 쓰기 시작하면 진보적 성격의 언론조차 얼마 가지 않아 그 페이스에 함몰되고 만다. 행담도 사건을 동북아위원회 차원의 일이 아니라 청와대와 대통령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던 사건인양 부풀린 일은 그 좋은 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도로공사 사장이 동북아위원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행담도개발주식회사의 회사채 발행 보증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도로공사 사장이 보증을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세살 먹은 아이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을 키우고 부풀린 것인데, 놀라운 것은 한 거대신문이 이 문제를 거푸 거론하자 다른 모든 신문도 결국은 비슷한 의혹을 제기하게 되더라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잘못된 ‘유리벽’을 넘어 참여정부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때로 분노하고, 또 때론 그 거대한 영향력 앞에 낙담하고…. 그러면서 정성을 들여 가꿔온 것 중의 하나가 <청와대브리핑>. 갇힌 사람이 종이비행기로 구원을 요청하듯, 정부출범 이후 지금까지 참여정부의 모습을 그려 날려 왔다. 때로는 ‘벽’을 넘어 날아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벽’에 걸려 떨어지기도 한 것이 벌써 500회를 넘기고 있다.

이 <청와대브리핑>을 담당하던 노혜경 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났다. 인사차 찾아 온 노 비서관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했더니 “마지막 부탁”이라며 “점심 대신 <청와대브리핑>에 올릴 글을 써 달라”고 했다. 순간, 그 절실한 요구가 가슴에 닿았다. 한 장 한 장 접어서 날릴 때의 어려움과 열정이 느껴졌다.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했던 죄책감에 얼른 대답했다. “만사를 제쳐놓고 바로 써 드리지요.”

“노 비서관님,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접어 날리던 그 모습과 열정,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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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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