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의 과제는]완고함 벗고 시대변화 귀 열까

  • 입력 2005년 4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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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선출된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방문국은 폴란드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의 길을 충실히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제2기(期)’=추기경단이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한 것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업적을 마무리하라는 뜻이라고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이 20일 보도했다. 베네딕토 16세 스스로 20일 첫 미사에서 전임 교황의 유지를 충실히 받들겠다고 확인했다.

78세의 베네딕토 16세는 다음 교황으로 이어지는 가교(架橋)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차기 교황은 가톨릭의 여러 문제에 본격적으로 맞서야 할지 모른다. 베네틱토 16세에게는 ‘과도기 교황’으로 차기 교황을 위해 길을 닦는 임무가 주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뚜렷한 호오(好惡)=새 교황은 추기경 시절인 1985년 브라질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두 보프 신부에게 ‘묵언(默言)’ 징계를 내렸다. 며칠 뒤 브라질의 한 주교는 보프 신부에게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의 저작에서 이단적 요소를 찾아내 맞불을 지르라고 제안했다.

미국의 주간지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는 보프 신부의 이 사례야말로 베네딕토 16세가 가톨릭 내부를 극단적으로 대립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라고 지적했다.

슈피겔이 4월 초 독일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그의 교황 피선에 반대하는 응답 비율이 36%에 이르렀다. 그의 분명한 보수적 성향이 부른 역풍이었다. 그의 교황 피선을 찬성하는 비율은 29%였다.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는 과거 20년간 가톨릭 내부 논쟁에서 베네딕토 16세가 관련되지 않았던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기간은 그가 교황청 신앙교리성성(聖省) 수장으로 있던 때와 일치한다.

낙태와 피임, 콘돔 사용, 인공수정, 동성애를 비롯한 성윤리와 여성의 사제 서품에 반대하는 그의 교조주의적 입장이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통합의 사제’로 변신할까=베네딕토 16세는 35세 때 참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진보적 자세를 보였다. 당시 그는 신앙교리성성의 전신인 교리성성(Holy Office)에 대해 치욕스럽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던 그가 1968년 전 세계를 휩쓴 학생운동을 목격하면서 점차 보수화된다.

슈피겔은 그가 추기경 시절 “개혁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말을 해왔다고 전했다. 새 교황은 20일 첫 미사에서 △그리스도교 통합 △다른 종교와의 대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 이행 등을 공언했다. 문제는 그가 추진할 ‘개혁’의 범위다. 베네딕토 16세는 8월 독일 쾰른에서 열리는 세계가톨릭청년대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젊은이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교리의 엄격한 수호자’에서 ‘통합을 주도하는 가톨릭의 수장’으로 변신할 것인가. 베네딕토 16세에게 쏠리는 세계의 이목이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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