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61>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25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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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門의 잔치(19)

“삼가 뜻을 받들겠습니다.”

장량이 그렇게 말하자 패공이 문득 생각난 듯 당부했다.

“여기서 패상의 우리 진채까지는 40리 길이라 하나, 여산(驪山)을 타고 내려가 지양(芷陽) 샛길로 빠지면 20리 남짓이외다. 항왕이 혹시 사람을 풀어 뒤쫓을지 모르니, 공은 내가 지름길로 우리 진채에 이르렀을 즈음이 되거든 그때에야 내가 떠났음을 알리도록 하시오.”

그런데 장량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들 등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세 분은 여기서 무엇들을 하고 계시오? 설마 이대로 몰래 떠나실 궁리들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세 사람이 놀라 돌아보니 경(卿)의 작위를 받은 장수로서 항우를 돕고 있던 진평(陳平)이란 자였다. 진평이 다시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대왕께서 특히 패공을 찾고 계시오.”

그 말에 세 사람은 어찌할 줄 몰랐다. 머뭇거리면서 얼른 대꾸를 못하고 있는데 진평이 이번에는 은근히 겁주는 말투로 몰아댔다.

“세 분 정말 도망이라도 가시려는 거요? 어서 돌아갑시다. 아니면 군사들을 불러 억지로 모시겠소.”

아무래도 멋모르고 하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때 다시 번쾌가 나섰다. 한발 다가간 번쾌는 왼손으로 진평의 옷깃을 감아쥐고 오른손으로는 칼자루를 움켜잡으며 결연하게 말했다.

“다 알고 하시는 소리 같으니 바로 말하겠소. 그렇소. 오늘 이 홍문의 술자리가 아무래도 탈 없이 끝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먼저 패공을 모시고 자리를 뜨려 하오. 공도 이만 모르는 척하고 우리를 보내 주시오. 만약 군사를 부르시면 그 군사가 이르기 전에 이 칼이 먼저 공을 쪼개놓을 것이오. 그리되면 우리는 그야말로 ‘양쪽 모두 져서 함께 다치고[양패구상] 다같이 끝장을 보는[同歸於盡]’ 꼴이 나고 말 것이외다.”

그러자 진평이 유들유들한 웃음을 지으며 받았다.

“이곳은 백만대군 한가운데 있는 상장군의 진중이고, 내 칼이라고 해서 멋으로 내 허리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리고는 갑자기 두 손을 모아 패공에게 공손하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패공의 상이 여기서 죽을 만큼 구차하지 않으니, 내가 지금 보내드린다 해서 반드시 우리 대왕을 저버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패공께서는 어서 떠나십시오. 그리고 무사히 몸을 빼내시어 일후 큰 뜻을 이루시게 되거든 저를 잊지나 말아주십시오.”

그리고는 슬며시 돌아서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패공도 그런 진평의 뜻을 알아들었다. 번쾌를 재촉해 군문을 빠져나온 패공은 데리고 온 100여명의 장사들과 수레를 그대로 둔 채 하후영(夏候영)과 근강(근彊), 기신(紀信)만을 불러 항우의 진채를 빠져나갔다. 셋 모두 번쾌처럼 패현(沛縣) 인근의 사람으로 젊은 날부터 유방을 따라온 사람들이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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