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선거구 위헌 상태로…선거구획정 연내 처리 무산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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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 선거구 획정작업의 연내처리가 무산되면서 ‘전 선거구의 위헌상태’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됐다.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은 30일 본회의에서 “정치개혁특위 위원들의 사퇴로 올해 안에 선거구 획정작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정개특위를 다시 구성해 내년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목요상(睦堯相)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도 “소수당에 의한 회의장 점거와 폭력행사 등 국민 앞에 부끄러운 국회의 모습을 또 다시 보여준 데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위원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여야 4당 총무들은 이날 모임을 갖고 새해 초 정개특위를 재구성키로 합의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상하한선 인구편차가 3 대 1을 넘는 현 선거구(3.88 대 1)에 대해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뒤 2003년 12월 31일까지를 법 개정의 유예기간으로 뒀었다. 그러나 정치권이 선거구 획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조차 정하지 못한 채 법 개정 시한을 넘김으로써 선거구의 위헌사태로 인한 혼란과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선거구가 위헌이 되면 정당법상 선거구를 기초로 정해진 모든 정당활동이 불법이 된다.

우선 지구당 창당과 이에 따른 중앙당 창당이 불가능해져 신당을 만들 수 없게 된다. 현행 정당법은 전 선거구의 10분의 1 이상(23개)의 지역구를 창당해야만 중앙당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내년 초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나서는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된다. 지구당의 개편도 불가능해져 재·보궐선거를 치를 수도 없다.

지구당에서의 당원교육 및 연수, 의정보고활동 역시 모두 불법이 된다. 현역의원들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이들의 입법 활동 역시 그 효력을 둘러싼 시비가 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소급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현역의원들의 법적 지위는 그대로 보장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새해 정치개혁특위가 재구성된다 해도 선거구 가이드라인에 대한 여야의 합의가 쉽게 도출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여야는 선거구 재획정이 무산된 뒤에도 어떠한 양보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선거법 개정작업이 선거구 획정에만 매달림으로써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나 정치신인들에게 선거운동의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 등 정치개혁의 핵심내용들이 뒷전으로 밀린 것도 정치권엔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결국 정치권은 선거구 수를 둘러싼 줄다리기로 날밤을 새우면서 헌법재판소가 정한 법개정시한을 넘기고 정치개혁도 무산시켜 ‘정치실종’을 스스로 초래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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