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62…아메 아메 후레 후레(38)

  • 입력 2003년 7월 8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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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밭은 보리밭, 저기는 콩밭, 저 너머는요? 저기저기 온통 키가 똑같은 풀이요, 저건 뭐예요?”

“고량(高粱)이다. 여기서는 반죽을 얇게 펴서 과자를 만들기도 하고, 기름에 튀겨서 경단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지. 모대주(茅臺酒)는 알코올 도수가 55도라서 한 잔만 마셔도 금방 취기가 돈다”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손바닥으로 바람을 가리고 불을 붙였다.

“그래” 담배 끝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보라색 연기가 잠자는 남자의 얼굴을 스쳤다가 낮은 천장으로 천천히 피어올랐다.

“기관차 말인데요”

“그건 차장한테 물어보지 그러냐”

여객전무가 잠자는 남자 앞에 섰다.

“손님, 주무시는데 죄송하지만…”

남자는 이제 막 잠들려는 사람처럼 눈을 두세 번 깜박이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이를 갈았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 여객전무는 급사에게 속삭였다.

“저기요. 저, 뭐 좀 물어봐도 돼요? 기관차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는 뭉게구름처럼 하얄 때도 있고, 비구름처럼 시커멀 때도 있는데, 왜 그래요?”

과감하게 질문을 하자 다소 마음이 흥분되고 손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소녀는 오른손가락으로 왼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석탄을 집어넣고 타기 시작할 때는 검은 연기가 나고, 활활 탈 때는 연기가 하얗단다. 출발할 때나 언덕길을 오를 때도 석탄을 집어넣으니까, 검은 연기가 나곤 하지”

“고맙습니다”

소녀가 고개를 숙이자 여객전무도 고개를 숙이고 다음 차량으로 옮겨갔다.

“아주 열심이로구나” 사냥모 쓴 남자가 콧구멍으로 상아 같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4학년 때 들어온 남자애한테 석차는 밀려났지만, 매화반에서는 내가 제일 손을 많이 들었어요. 나, 돈 많이 모으면 부산여고에 들어가고 싶어요. 양아버지가 허락해 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야, 허락해 주시겠지. 자기 스스로 번 돈인데” 남자는 담배를 톡톡 쳐서 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자리 밑에는 담배꽁초에 시커메진 복숭아 껍질과 씨, 빈 도시락과 나무젓가락, 땅콩 껍데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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