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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가인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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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6> 패티김

    6·25전쟁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1959년 한국의 대중음악사는 그 이후로 30년 이상을 통치하게 될 두 사람의 위대한 디바를 데뷔시킨다. 한 사람은 엘레지의 여왕으로 제2의 트로트 전성시대를 열게 되는 이미자. 그리고 또 한 사람은

    • 201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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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5>박정현

    《세이렌은 영혼이 깃든 감미로운 목소리로 항해 중인 선원을 섬으로 유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리스 신화의 바다의 요정이다. 뮤즈 멜포메네와 강의 신 아켈로스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150cm가 될까 말까 한 가녀

    •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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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 ‘영원한 가객’ 송창식

    그는 록과 트로트, 한국 전통음악의 미학까지 특유의 서정적 음악언어로 승화시켜 1970, 80년대를 산 대중의 마음에 우뚝한 봉우리로 자리 잡았다. ‘강헌의 가인열전’이 ‘천의무봉의 가객’ 송창식의 다양한 면모를 전한다.▶A20면

    •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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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4>송창식

    가왕(歌王) 조용필의 맞은편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단 한 명의 가객은 송창식이다. 가왕이 일인제국 시대를 일구던 1980년대에도 송창식은 ‘가나다라’(1980년)를 시작으로 우리 대중음악의 고전이 된 ‘우리는’과 ‘푸르른 날’(1983년)을 한꺼번에 토해 내었으며, ‘참새

    •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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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3> 이소라

    여명기부터 한국 대중음악사는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음악 시장의 문을 열어젖힌 소프라노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그러했고 트로트라는 최초의 주류 장르를 폭발시킨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이 그러했다. 1960년대 엘레지의 여왕 이

    • 201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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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2> 임재범

    《조용필이 양지의 가왕이라면 임재범은 어둠의 제왕이다. 조용필의 승리가 끝없는 연습과 음악적 열정으로 이룬 후천적인 승리라면, 임재범은 자학과 가학 사이를 오가는 본능의 더듬이로 폭발하는 음악적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그러나 25년을 넘

    • 201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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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 ‘호랑이’ 임재범

    위기에 처했던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회생시킨 주인공이 바로 그였지만 잊혀져 가던 그를 밝은 세상으로 끌어낸 것 또한 ‘나는 가수다’였다. 카랑카랑한 포효로 백두산 호랑이를 연상시키며 팬들을 전율에 빠뜨리곤 하는 타고난 로커. 그러나 그의 25년 음악 이력서

    • 201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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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 歌王 조용필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를 위로하고 때론 격동시켰던 가수들의 일대기 ‘가인열전(歌人列傳)’을 주 1회 연재합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씨가 각 가인이 가진 위대함의 비결을 전하는 한편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시대’와 만나 더욱 빛을 발했는지 그 의미를 조명

    •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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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헌의 가인열전]<1> 조용필

    《신군부가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오욕의 권좌에 오르던 1980년 바로 그 시점에 이 땅의 대중음악은 불세출의 젊은 장인을 영접하면서 새로운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막 30대에 들어선 조용필은 더 이상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에 오른 보수 회귀의 선봉

    •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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