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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64년 링컨, 그랜트 총사령관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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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864년 링컨, 그랜트 총사령관 임명

입력 2009-03-10 02:57수정 2009-09-2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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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훌륭한 정치가였다. 하지만 군사적 경험이 전혀 없었고 군대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주 정치적 배경을 기초로 지휘관을 임명했고 패배한 장군을 소환하라는 여론이 비등하면 그 여론에 꺾이기 일쑤였다.

남북전쟁(1861∼1865) 동안 한 번 실패한 장군은 좀처럼 다시 기회를 얻지 못했다. 윈필드 스콧, 어윈 맥도월, 조지 매클렐런, 헨리 핼럭, 존 포프, 앰브로즈 번사이드, 조지프 후커, 조지 미드에 이어 링컨이 마지막에 발견한 인물은 율리시스 그랜트였다.

그랜트는 웨스트포인트를 하위권으로 겨우 졸업하고 음주로 물의를 일으켜 불명예 제대한 실패한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남북전쟁 발발 후 탁월한 지휘관으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줬다. 그랜트는 부하들을 사려 깊게 배려했고 그들의 경험과 기술에 자신의 명령을 조율한 사람이었다.

1862년 그가 이끄는 북군이 헨리 요새와 도넬슨 요새를 잇달아 함락하고 1만2000명을 포로로 붙잡는 대승을 거두자 그랜트는 국가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이듬해 그랜트가 빅스버그와 채터누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링컨은 그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됐다.

링컨은 한때 그랜트의 과도한 음주벽이 다시 도졌다는 소문을 듣고도 “그랜트 장군이 애용하는 위스키 상표를 알아낼 수 있으면 당장 다른 모든 장군에게 그 위스키를 보내겠다”고 선언하며 그를 감쌌다.

그랜트야말로 남북전쟁을 승리로 끝낼 사람이라고 확신한 링컨은 1864년 3월 10일 그를 북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남북전쟁의 운명을 그에게 맡겼다. 그때까지 유일하게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에게만 주어졌던 중장(별 3개) 계급을 그랜트에게 수여했다.

그랜트는 평소 전장에서 당번병도, 야영 막사도, 담요도 없이 병사들과 함께 땅바닥에서 잠을 자곤 했다. 오직 칫솔 하나만 들고 다녔다. 특히 중장 승진을 위해 워싱턴에 도착한 그랜트의 겸손한 태도는 다시 한 번 그를 ‘국민의 영웅’으로 각인시켰다.

해질 무렵 그랜트가 초라한 행색으로 아들과 함께 한 호텔에 들어서자 직원은 꼭대기 층의 작은 방 외엔 빈방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랜트가 숙박계에 ‘U S 그랜트와 아들’이라고 서명하는 것을 보고서야 직원은 당황해서 즉시 방을 바꿔줬다.

1866년 다시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장(별 4개) 계급을 단 그랜트는 1868년 당시로선 최연소인 46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돼 이후 8년 동안 전후 미국의 재건을 이끌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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