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권자, 어떤 후보 선호하나]<上>‘아마추어 정치인’ 시대는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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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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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밀착형 전업 정치인’ 정당선호도 뛰어넘는 득표력

국민이 선호하는 국회의원 후보는 어떤 인물일까. 동아일보가 명지대 미래정치연구소와 함께 18대 총선에서 소속 정당보다 월등히 높은 득표율을 올린 후보들을 분석한 결과는 ‘인기후보’들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16일자에는 선호 기준의 권역별 차이와 함께 유권자들이 ‘기피하는 후보들’의 특성도 분석할 계획이다.

○ 초선의원의 힘


1987년 미국의 케인, 페레존, 피오리나 교수팀은 ‘인물 지지 투표(The Personal Vote)’라는 책을 냈다. 유권자 설문조사와 의원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미국 연방하원 초선의원이 중진의원보다 높은 지지로 당선됐음을 객관적 수치로 제시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초선의원들이 ‘중앙 활동형’보다는 ‘지역구 활동형’에 더 가깝고 이것이 유권자로부터 인지도를 올리고 투표로 보상을 받는 비결인 것으로 분석됐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초선의원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명지대 미래정치연구소의 분석이다. 실제 이번 조사 결과 ‘선호후보’ 158명 중 4선 이상 의원이 2명에 불과한 것도 선수가 올라가 중진이 될수록 대체로 지역 현장활동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치학에서는 ‘초선의원 부상현상’(second-time surge) 이론이 있다. 초선의원의 득표율이 처음 원내에 진출하던 당시의 선거에 비해 유난히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초선의원일수록 중앙정치의 야망을 키우기 위해 재선이라는 단기적 성과를 내야 하고 이를 위해 지역구 활동에 매진한다는 얘기다. 영국 노동당의 초선의원들은 재선 고지를 넘을 때의 선거에서 평균 1500표의 프리미엄 효과를 누렸다는 연구도 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이 확인됐다. 특히 우리의 선거풍토에서는 공천과 선거 과정에서 유동성이 많기 때문에 초선의원들이 대체로 다른 선수의 의원들보다 지역구 활동에 왕성하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 선진국형 모델로 이동하는 과도기


‘선호후보’ 중 직업군 비율을 분석한 결과 전문정치인이 30.4%로 가장 높다. 이어 법조인(21.5%), 관료(10.8%), 학계(10.1%), 노동·사회단체(8.9%), 기업인(7%) 순이었다.

전문정치인 출신의 ‘선호후보’들은 대부분 도의원을 지냈거나 지역에서 당료를 거치는 등 기초적인 정치현장 경험을 가진 이가 많았다. 전문정치인은 다른 직업군에 비해 특히 오랫동안 지역에 공을 들인 사람이 많았다.

명지대 미래정치연구소는 이에 대해 “전문정치인의 선호도가 높은 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정치문화와 비슷한 형태로 가고 있다는 한 징표”라고 분석했다.

귀족 중심의 친목모임으로 시작한 서구 의회는 사회의 전문화, 분업화를 거치면서 점차 대의기관으로서 위상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비전문적인 아마추어 의원들이 전문 직업정치인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즉, 정치를 겸직하는 이들이 아닌 전업 정치인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행정부의 기능이 커지면서 이들을 감시하는 의회의 업무가 폭증했다. 지역구민들의 요구도 함께 증가하면서 정치도 하나의 전문영역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조사는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 오픈프라이머리 해도 현역의원 유리


한나라당은 국회의원 공천을 민심이 반영되는 상향식으로 하자는 공감대 속에 당원 여부에 상관없이 일반국민이 경선에 참여해 후보를 뽑는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결과에 따르면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해도 현역의원들이 정치신인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일반도 인지도와 친밀도에서 앞서는 의원들을 더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에서 득표율이 해당 지역의 정당 득표율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확실한 선호후보’ 34명 중 정치신인은 한 명도 없었다는 점도 이를 보여준다.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더라도 경선 막판에는 결국 당선 가능성이 표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이 때문에 투표자들 역시 현역 위주로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명지대 연구소 측은 분석했다. 국민의 선택폭을 넓힌다는 취지의 오픈프라이머리가 오히려 인지도 낮은 정치 신인의 원내 진입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당원 양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정당정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 선호 후보 ::

자신의 지역구에서 소속 정당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아 후보 개인의 경쟁력이 입증된 이들을 뜻한다. 각 지역구 후보 득표율이 해당 지역구 정당 득표율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이들을 선호 후보 로 정의했다.
▼ 선호후보 중 신인 27명… 23명이 수도권 출마 ▼
눈길 끄는 선호후보


현역의원들의 강세 속에서도 ‘선호 후보’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신인 27명은 나이가 젊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27명의 평균 연령은 47.6세로 선호 후보 평균 연령(51.8세)보다 4.2세나 젊었다. 55세 이상은 3명밖에 없었으며 65세 이상은 한 명도 없었다.

정치신인 ‘선호 후보’ 27명 가운데 23명은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었다.

선호 후보로 분류된 정치신인을 직업별로 보면 ‘전문 정치인’ 비율이 44.4%로 가장 높다. 전체 245명의 지역구 당선자 가운데 전문 정치인이 차지하는 비율(24.1%)보다 훨씬 높다. 현역의원의 지역구 프리미엄을 가장 효과적으로 상쇄할 수 있는 정치신인의 직업으로는 지역에 주로 기반을 둔 전문 정치인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정치신인 중 소속 정당의 득표율보다 후보 자신의 득표율이 가장 큰 폭으로 높았던 후보는,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민주당 전재수 후보였다. 부산 북-강서갑에 출마한 그는 38.6%를 득표해 해당 지역 민주당 정당득표율(18.7%)보다 19.9%포인트나 더 얻었다. 전 후보는 36세로 ‘선호 후보’ 중 가장 젊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 후보가 같은 정치신인이고 젊은 편인 한나라당 박민식 후보와 맞붙으면서 소속 당의 인기에 비해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것은 그가 2006년 부산 북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 등 지역에서 꾸준히 기반을 닦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지역에서 당선된 박민식 후보 역시 ‘선호 후보’에 포함됐다.

한나라당의 정치신인 중에는 박영아(서울 송파갑), 유일호 후보(서울 송파을)가 소속 정당의 득표율보다 각각 18.5%포인트, 17.2%포인트를 더 얻어 1, 2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한나라당의 ‘선호 후보’ 1, 2위는 대구에 지역구를 둔 서상기, 박근혜 의원이었다. 선호 후보군의 상위권에는 이들을 비롯해 한나라당 소속 대구·경북 지역의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들어 있다. 이는 지난 총선 당시 대구·경북 지역에서 박 의원과 친박 의원들에 대한 동정론이 강하게 일었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선호 후보’ 1, 2위는 이광재, 홍재형 의원이었다. 지역 일꾼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이광재 의원은 2년 뒤 강원도지사로 당선되기도 했다.

당시 총선에서 낙선한 민주당 선호 후보 중에는 이듬해 보궐선거에서 원내에 진입한 이찬열 의원,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 고양시장으로 각각 당선된 이재명, 최성 후보가 포함돼 있다. 2008년 총선에서는 비록 낙선했지만 언제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에서 현역의원 프리미엄이 확인됐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현역의원 교체 열망도 높다는 사실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미국 하원의원의 재선율은 95% 전후에 이른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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