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영 박사의 신나는 책읽기]순수한 어린시절 최고의 책은?

  • 입력 2008년 3월 4일 02시 58분


명작의 숲 거닌 아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됐대요

어른의 시대는 긴 데 비해 어린이의 시대는 짧다.

어른의 시대는 대략 30년부터 길게는 60년까지 이어지지만 어린이의 그것은 고작 6년이다. 이 짧은 기간에 어린이들은 학교 가기, 친구 사귀기, 숙제하기, 학원 가기, 놀러 가기 등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쪼개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른처럼 나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어른의 머리에는 때가 묻어 있는 것에 비해 어린이의 머리는 깨끗해서 한 번 그려진 그림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짧은 시기에 좋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영혼에 때를 묻힐 수는 없다. 어린이 시대에는 최고의 책만을 손에 들려 주어야 한다. 좋지 않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어린이에게는 정말 없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만일 어떤 책이 열 살에 읽고, 스무 살에 읽고 다시 서른 살, 마흔 살에 읽어도 가치가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어떤 책이 열 살에 읽었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스무 살에 읽었더니 재미가 없고, 서른 살에는 읽을 가치가 없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 아니다. 그 책은 이류의 책이거나 삼류의 책이다. 그런 책은 열 살 먹은 아이들에게도 읽힐 필요가 없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만일 한국 어린이는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 어린이도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만 반짝 읽히다 사라진다면 그 책은 좋은 책과는 거리가 있다. 바꿔 말해서 그런 책은 특정 지역 어린이에게도 읽힐 필요가 없다.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는 책 중에는 한철 반짝 읽히다 잊혀지는 책이 많다. 책이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지 못하면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 넘지 못한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는 책, 그것을 우리는 세계명작 혹은 고전이라고 부른다. 어떤 책이 수천 년 또는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면 그 속에는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진실이 들어 있음에 틀림없다. 인류가 전승해 온 그 진실이야말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꼭 차지해야 할 보석이다.

성장 이야기는 ‘이니세이션스토리’(Initiaionstory)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동문학의 한 형태다. 주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 보잘것없는 평범한 아이가 훌륭한 인물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어린이들은 이런 이야기 속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체험하며 성장해 간다. 이런 이야기에는 위인전, 옛날이야기가 있다.

○ 감동의 교육성을 가진 책

“위대한 작가는 위대한 교육자다. 그러나 위대한 교육자라고 모두 위대한 작가는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문학의 교육성에 대한 매우 적절한 해석이다. 문학의 교육성은 어디까지나 결과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고, ‘도덕의 옷’이 아니라 ‘감동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착한 아이를 만들기를 바라는 우리 아동문학의 교육성은 독자를 규범적인 인물로 만들지만 개성을 추구하는 서구에서는 독자를 창의적이게 만든다.

우리도 이제 착한 아이뿐 아니라 개성 있는 아이를 찾아야 한다. 규칙과 규범을 주입하는 강의식 교육성이 아니라 독자를 더 나은 세계로 성장시키는 감동을 통한 교육성을 추구해야 한다.

○독자의 상상력을 키우는 책

독서란 일종의 언어적 추측 게임이다. 저자가 언어로 제시하는 상황을 따라가며 작가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추측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작가가 직접 설명해 주는 문장에서는 기쁨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가 추측하고 상상할 부분이 많은 문장에서 기쁨을 얻는다. 예를 들면 독자는 다음 두 문장에서 얻는 것이 다르다.

(1) 링컨은 언제나 복숭아 뼈가 쑥 나오는 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2) 링컨은 키가 크고 가난하며 사치스럽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첫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링컨의 외모와 가정환경, 성품 등을 독자 나름대로 추측하도록 하는 탄력적인 문장이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작가가 그러한 사실을 모두 설명해 준다. 이 문장에서는 작가가 말해 주는 것 외에는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추측할 필요도 없는 굳은 문장이다. 이런 문장에서 독자는 할 일이 없어 심심해진다.

좋은 책은 그 내용뿐 아니라 독자와의 상호 관계에서 비로소 탄생한다. 독자가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문장은 기쁨을 주고 그 내용 이상의 가치를 탄생시킨다.

책이 지닌 가치의 절반은 독자가 만든다. 그리고 읽으면서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책만이 명작이 되어 오래오래 독자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 mynam@kred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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