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은 지금 독서 토론중…'한도시 한책 읽기운동' 진행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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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동화를 읽는 어른 모임’ 회원들이 책의 주인공인 암탉 ‘잎싹’의 희생에 대해 ‘모성은 본능인가, 아닌가’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도서관협회
24일 오후 ‘동화를 읽는 어른 모임’ 회원들이 책의 주인공인 암탉 ‘잎싹’의 희생에 대해 ‘모성은 본능인가, 아닌가’로 갑론을박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도서관협회
요즘 충남 서산 시민들의 관심사는 경기 회복, 행정수도 이전, MBC TV 드라마 ‘대장금’의 줄거리뿐만이 아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우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수시로 입에 오르내린다.

24일 오후 서산시립도서관 중국어 강의시간에도 ‘암탉’이 화제에 올랐다.

“수탉과 헛간 식구들이 ‘잎싹’(주인공 암탉 이름)에게 하룻밤 쉬어 가는 것을 허락했지만 다음 날에는 쫓아냈습니다. 저는 알을 못 낳고 폐계가 된 ‘잎싹’에서 명예퇴직자들을 떠올렸어요. 사회가 무기력한 사람들을 감싸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이상록·39·회사원)

“인권도 중요하지만 사회에는 질서가 있어야 해요. 리더인 수탉으로서는 헛간 식구들을 위한 규율을 무시하기 힘들었을 겁니다.”(김신숙·49·주부)

서산에서 진행 중인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시민들이 1년에 한두 권의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독서 프로그램. 1998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시작돼 미국 38개주 90여개 도시와 영국 캐나다 호주로 퍼져나간 독서운동을 모델로 했다. 한국에서는 한국도서관협회가 행정자치부와 서산시의 지원을 받아 올 5월 시작했다.

‘한 도시…’는 책을 ‘핑계’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끼리 토론을 해보자는 운동이다. 미국에서 이 운동이 처음 시작됐을 때에도 다인종 사회의 통합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따라서 시민대표로 구성된 도서선정위원회가 책을 고를 때 △서산의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연령, 세대 구분 없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며 △토론이 될 만한 쟁점들을 많이 담고 있을 것을 먼저 고려했다.

초중고교 학생들은 교실에서,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주부들은 각종 독서회나 문학회가 마련한 소그룹에서 토론을 벌인다. 이들은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직접 사서 본다. ‘전람회 그림’이란 서산 시내 북카페에서는 매일 오후 7시부터 1시간 동안 자유토론이 진행된다. 서산시립도서관은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토론에 참석할 수 있도록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 ‘치킨런’을 상영하기도 했다.

인구 15만명의 소도시 서산에서 이 같은 행사는 문화적 소외감을 달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1일 저자 황선미씨와의 토론회에 참석했던 인지중학교 1학년 차재욱군(13)은 “내가 이해한 것과 작가의 의도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토론을 전제로 하니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다”고 말했다.

이 운동을 처음 제안한 도서평론가 이권우씨(40)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과정 자체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낳는다”고 설명했다.

서산시는 내년에도 이 사업을 계속 시행하기로 하고 3000만원의 사업예산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주인공 ‘잎싹’은 양계장의 암탉. 마당에 사는 암탉처럼 자기도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는 소망으로 안전한 양계장을 나온다.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결국 알마저 낳을 수 없는 폐계가 되자 대신 청둥오리 알을 품어 지극 정성으로 키워내 날려 보낸 뒤 족제비에게 목숨을 내어준다. 200년 사계절출판사 출간. 글 황선미, 그림 김환영.

서산=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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