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다보니]10년새 이렇게 잘 살게 될줄은…

  • 입력 1997년 1월 3일 20시 38분


새해 연휴는 잠시나마 지난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몇 안되는 귀한 시간이다. 다들 모여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떠들썩한 제야 파티를 벌인 뒤의 새해 첫날은 특히 그렇다. 10년간 한국을 떠났다 지난 해 다시 돌아온 나에게는 한국에서의 엄청난 변화때문인지 그 감회가 남달랐다. 지난 83년부터 86년까지 주한 호주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했던 나는 지난해 공사로 서울을 다시 찾았다. 내눈에 가장 놀랍게 비친 것은 대다수의 한국인이 그 짧은 사이 엄청 잘살게 됐다는 점이다. 13년전 한국은 여러면에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전하는 시기였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도시로 밀려 들어왔고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당연한 것으로 누리는 옷이나 음식점, 오락거리들은 아무나 즐길 수 없었다. 물론 당시 한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총력을 쏟아부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해 고통스런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 국가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 구금상태였다. 우리집 책상에는 84년 당시 일반시민으로서 김영삼대통령이 준 명함이 있고 벽에는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준 서예 한점이 걸려 있다. 한국과 호주는 역사나 관습면에서 많이 다르다. 하지만 양국은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양국이 보여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양국의 지역적 세계적 관심은 일치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양국 협력과 교류도 긴밀해지고 있으며 호주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여행국중 하나다. 지난해 2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호주를 관광방문했으며 1만여명의 학생이 호주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호주의 첨단 테크놀러지 틈새시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고 호주에서 한국차의 판매량도 급증하고 있다. 호주는 전세계 이민자들로 구성된 신생국가인만큼 한국과 같이 오랜 역사와 문명을 지닌 국가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많다. 호주에 살고 있는 3만여 한국교포들은 근면과 성실을 호주로 가져왔으며 교육과 일에 대한 그들의 헌신은 호주에서 한국인 사회가 3만여명이라는 숫자보다 훨씬 더 큰 무게를 갖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83년 부임 직후 북한이 자행했던 아웅산테러의 비극이 아직도 생생한데 재임 첫해에 잠수함 침투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도 가까운 시일내에 변화할 것이다. 지난 13년동안 한국을 지켜보면서 알게 된 한국인 특유의 용기와 불굴의 인내로 이를 극복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피터 로<호주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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