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사과 키우는 근교 농장, 피서객 몰리는 유원… 뚝섬의 변신은 무죄[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1/26/132848142.5.jpg)
《섬 아닌 섬, 뚝섬의 변천사오늘날 서울에는 실제로 섬이 아니면서도 ‘섬’이라는 이름을 지닌 곳이 있다. 바로 ‘뚝섬’이다. 대략 현재의 성동구 성수동과 광진구 구의동·자양동 일대다. 조선시대 뚝섬은 둑섬, 둑도, 살곶이벌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한자로는 ‘독도(纛島)’라 표기했…
![“선산이나 마을묘지 금지”… 일제의 묘지 규제, 경성의 경계를 넓히다[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1/05/132710871.5.jpg)
《일제의 묘지 통제가 불러온 것1914년 6월, 조선 후기 민씨 척족 세력의 중심 인물이었던 민영익이 20여 년의 망명 생활 끝에 중국 상하이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시신이 인천항에 도착하자 친척인 백작 민영린과 남작 민영기 등이 조선헌병대 사령관이자 총독부 경무총장인 다치바나 고이치…
![후원-노비촌에서 일제 실험장 겸 근대교육 심장으로… 대학로의 탄생[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10/14/132559279.6.jpg)
《근대 ‘대학촌’ 대학로의 양면성조선 후기, 두 차례 전란의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한 한양은 한강을 따라 상업이 활기를 띠면서 점차 근대도시의 형태를 갖춰갔다. 사람과 물자가 모인 곳은 주로 한강 포구와 연결된 도성의 서남부였다. 포구를 따라 상권이 형성되고 교통의 중심이 한강 남쪽으…
![시민운동의 결실에서 항일 의거의 현장으로… ‘부민관’의 격동 10년[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9/24/132459702.1.jpg)
《근대 경성의 문화 심장, 부민관“이즈음 준공된 부민관(府民館)의 낙성식 겸 개관식은 예정한 바와 같이 10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성대히 거행하여 동 12시 30분경에 무사히 마치고 계속하여 40분부터 낙성 축하의 연무(演舞)를 공연하였다.” (동아일보, 1935년 12월 11일)…
![충신의 제단-제국의 기념물-시민의 공간… 혼종의 역사 장충단[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9/03/132313684.5.jpg)
《시대별 장충단공원의 변천사“장충단은 옛날 남별영(南別營) 자리로 이태왕(고종) 32년 을미 8월 20일 민비피시사변(閔妃被弑事變) 때에 절사한 궁내 대신 이경직(李耕稙)과 연대장 홍계훈(洪啓薰)을 사(祀)하기 위하여 설한 것이니 (중략) 근래에는 공원을 설치하여 운동장 기타 설비가 …
![‘황실의 공원’ 개방하니 3·1운동 발상지로… ‘조선인의 공원’ 탑골공원[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8/13/132183209.4.jpg)
《탑골공원 ‘민족 상징’ 된 배경“봄을 맞는 이 공원…. 아 3월을 맞는 팔각정, 팔각정아 기억하겠느냐? 그때의 그 일을? 기억이 상신(尙新)이구려! 그때가 벌써 5년이로구려. 우리들이 그대의 품에서 크게 소리치며 벅적거렸던 때가. 저들은 우에노, 히비야(도쿄의 대표적인 공원들)를 자…
![“붉은 물이 폭포처럼” 서울 삼킨 대홍수… 일제 외면에 자력구제 나선 민중[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23/132057297.5.png)
《‘을축년 대홍수’로 보는 한강 수해“17일 오후 8시에 37척 4촌(약 11.3m)에 달하여 위험이 경각에 달하였던 한강 연안 용산 일대에는 동 11시 반경에 38척 4촌에 달하여 수백 년 이래에 처음 있는 큰 홍수임으로 경성부 출장소에서 위급함을 일반에 알리기 위하여 경적까지 울리…
![“조선 최초 비행사의 첫 고국 비행”… 韓 항공 역사는 여의도서 시작됐다[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7/02/131927277.5.jpg)
《국내 최초 국제공항 ‘여의도비행장’“세계 어느 나라 공항의 시설에 비해 빈약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판잣집이 있는 공항이기는 하나 국내외의 사신들이 한 번씩은 거쳐 가는 국가의 관문이다. 여하튼 독립 쟁취 이후의 우리 역사는 이곳을 빼놓고는 이루어질 수 없으리만치 무릇 정치 경제 …
![여고생 120명 싣고가다 전복… 이윤 앞세워 달린 京城 전차의 민낯[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6/11/131787943.5.png)
《전차 운영 독점한 경성전기회사1929년 4월 22일, 화창한 봄날이었다. 이날은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의 개교 23주년 기념일. 기념행사를 마친 학생들은 청량리 영휘원(永徽園)에 참배를 가기 위해 전차 세 대에 나눠 탔다. 영휘원은 진명여고의 설립자인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 엄씨(고종의…
![경복궁에 청사 짓고는 “新도로 축선과 안 맞는다”… 광화문 옮겨버린 일제[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5/21/131658364.1.jpg)
《권력 축선 따라 이전된 광화문1968년 12월 11일, 광화문 준공식이 거행됐다. “겨레의 비운과 더불어 한쪽에 버려졌던 광화문이 이제 소슬히 제자리에 그 우람한 원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조상의 빛난 얼과 슬기를 되살려 번영하는 자주국가로서…
![“충천의 괴물”… 경복궁에 들어서는 ‘일제의 심장’에 불편한 조선인 심기[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4/30/131527250.1.jpg)
《조선총독부 신축이 부른 도심 재편동아일보 1921년 7월 28일자에는 ‘충천(衝天)의 괴물, 경성 제일의 큰 굴뚝’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북악산 아래 정면의 혈을 잘라서 근정전 앞에 총독부를 짓는 역사는 4년 전부터 시작한 일로 공비가 500만 원이나 든다 하여 완성된 후에…
![“그리운 내 고향의 거리여!”… 멀끔해지며 일본인에 손바뀜 된 종로[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4/09/131382158.5.jpg)
《1920년대 종로 정비의 아이러니지금도 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고 보내며, 전차도 자동차도 이루 어디를 가고 어디서 오는지 심히 분주하다.네거리 복판엔 문명의 신식 기계가 붉고 푸른 예전 깃발 대신에 이리 저리 고개를 돌린다.스톱-주의-고-차, 사람, 동물이 똑 기예 배우듯 한다.…
![日王 결혼 기념 운동장서 韓 근현대 스포츠 요람으로… 영욕의 83년[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3/19/131242031.1.jpg)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의 변천사2008년 5월 14일 서울시는 철거를 앞둔 동대문운동장에서 ‘굿바이 동대문운동장’이라는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서울시장과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당시 한국올림픽축구대표팀 코치), 고 유상철 전 인천 감독(당시 선수) 등이 마지막으로 축구공을 …
![‘불란서제’ 들어온 유행의 기점, 경성역… 농촌 떠나온 하층민의 관문[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2/26/131113684.1.jpg)
《옛 서울역 ‘경성역’의 명암1925년 10월 15일 ‘경성역’ 낙성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관민 유지 4000명이 래집(來集)하였으며 간단히 식을 마친 후 정거장 내부를 관람’하기도 했다. ‘오후 한 시부터는 일반 부민에게 관람을 허락하기로 하였는 바 정각 전부터 관람자가 물결같이 …
![천황 사신 두고 청일전쟁 승전기념비까지… 경성에 침투한 일본 신사[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5/02/05/130974930.5.jpg)
《신사로 본 日 식민지 정책1913년 8월 29일 ‘왜성대(倭城臺) 위대신궁(大神宮)’에서는 ‘일한병합기념일 임시제전’이 거행됐다(매일신보). 이듬해 7월 30일에는 ‘경성의 관민 일동’이 메이지 천황(1912년 7월 30일 사망)을 추모하는 ‘요배(遙拜)의식’을 ‘왜성대 공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