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에서 선거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치러져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감시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를 행사하는 건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부정 선거를 감시한다는 이유로 이런 기본 원칙조차 무시하고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 제도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4·10 총선 사전투표를 앞두고 서울과 부산, 대구, 경기 김포 고양 등 전국 26곳의 사전투표소와 개표소, 본투표소 등에서 불법 카메라가 잇달아 발견된 겁니다. 총선을 불과 11일 앞두고 유권자의 자유로운 선거를 위협하는 유례없는 사건이자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경찰은 인천, 경남 양산 등에서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극우 성향 유튜버 한모 씨(49)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29일 밝혔습니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28일 오후 9시 10분경 경기 고양시 한 주택에서 한 씨를 긴급체포했습니다. 한 씨는 인천 계양구와 연수구, 부평구 등 9곳과 경남 양산시 6곳의 사전투표소 등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 씨는 경찰 조사에서 “선관위가 사전투표율을 조작하는 걸 감시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한 씨와 같은 차량을 타고 이동한 70대 남성 1명도 신원을 특정해 양산에서 체포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조사 결과 이날 오후 6시 기준 서울 강서구와 은평구 각각 1곳, 인천 남동구 2곳, 계양구 3곳, 연수구 3곳, 부평구 1곳, 부산 북구 1곳, 울산 북구 1곳, 대구 남구 3곳, 경기 성남 1곳, 고양 2곳, 김포 1곳, 경남 양산 6곳 등 총 26곳에서 불법 카메라가 설치된 사실이 파악됐습니다. 전날 인천, 양산 등 8곳에 이어 18곳에서 추가 발견된 겁니다. 더 많은 투표소에 카메라가 설치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전국 각지에서 불법 카메라 설치 사실이 드러나자 이날 오후에서야 “전국 3565곳의 사전투표소 등 모든 투·개표소의 불법 시설물 특별 점검을 실시한다”고 했습니다. 일이 터진 다음에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선관위의 안일한 태도가 선거 제도에 대한 불신마저 키운 건 아닐까요.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14조가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