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능 우울증이라고 아시나요? 겉으로는 직장생활과 학업, 일상을 무리 없이 이어가지만 내면에서는 우울감과 공허함을 느끼는 상태를 ‘고기능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이는 의료계에서 사용하는 공식 진단명은 아닙니다. 이 표현은 지난해 미국 정신과 전문의 주디스 조셉의 저서 ‘고기능 우울증’이 화제가 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후 자신의 감정을 설명할 표현을 찾던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으며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온라인상에서는 “해야 할 일을 다 했는데 행복하지 않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텅 빈 느낌이다”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감이 확산되는 배경에 현대 사회의 구조적 스트레스와 정서적 고립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러한 감정 상태가 나타나는 배경에는 다양한 사회·환경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과 중심적이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 분위기, 학업과 취업·직장에서의 지속적인 압박, 고용 불안과 주거비 상승 등 경제적 스트레스 등이 개인의 정서적 여유를 줄이기 쉽습니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정신건강 관리가 뒤로 밀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1인 가구 증가와 비대면 일상의 확산은 정서적 고립을 심화시키며 외로움과 무기력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단국대 보건과학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고립감과 불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특히 젊은 세대의 심리에 깊이 자리했다”며 “겉으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면이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이를 곧바로 질환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증(症)’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실제로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어려움이 발생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단순히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한 기분이 지속된다고 해서 이를 의학적 진단명처럼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특정 심리 용어가 온라인에서 유행처럼 소비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질환이 아닌 사람은 불필요한 불안을 느낄 수 있고, 반대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낙인에 대한 우려로 치료를 미루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표현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고 감정을 점검하려는 시도는 건강한 행동일 수 있으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과 지지를 나누는 과정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용어 자체가 아닙니다. 현재의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이러한 감정이 장기간 지속되어 학업, 직장생활, 인간관계 등 일상 기능에 어려움을 준다면,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나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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