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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나는 다양한 창의성의 이야기로 한 스푼의 영감을 채워드립니다.


현대 미술가의 전성기는 60대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체파 회화로 시작해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게르니카’를 발표했을 때 파블로 피카소가 56세. 프란시스코 고야가 나폴레옹 전쟁 참상으로 인간의 폭력성을 표현한 걸작 ‘1808년 5월 3일’을 발표했을 때는 68세였죠.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요제프 보이스가 사회를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제시한 역작 ‘7000그루 참나무’를 선보인 것은 61세입니다. 장미셸 바스키아처럼 20대에 뛰어난 감각을 발휘한 작가도 있지만, 그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더

현대 미술가의 전성기는 60대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체파 회화로 시작해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게르니카’를 발표했을 때 파블로 피카소가 56세. 프란시스코 고야가 나폴레옹 전쟁 참상으로 인간의 폭력성을 표현한 걸작 ‘1808년 5월 3일’을 발표했을 때는 68세였죠.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요제프 보이스가 사회를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제시한 역작 ‘7000그루 참나무’를 선보인 것은 61세입니다. 장미셸 바스키아처럼 20대에 뛰어난 감각을 발휘한 작가도 있지만, 그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더 큰 작업을 했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때로 나이가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가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며 피부로 겪은 바가 녹아드는 시간 덕분입니다. 현대미술 작품은 작가의 손기술뿐 아니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과 사상을 담기 때문이죠. 훌륭한 문학가가 젊은 시절 감각적인 작품을 하다가 연륜이 쌓일수록 인간을 깊이 고찰한 복잡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

지난 뉴스레터에 이어 오늘도 9월을 맞아 한국을 찾은 해외 미술계 인물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호암미술관에서 지금 개인전을 열고 있는 스위스 출신의 화가 니콜라스 파티입니다. 파티는 보라색 얼굴, 빨간 줄기를 가진 나무 숲, 버섯 머리를 한 사람처럼 엉뚱하고 기괴한 색채와 이미지가 트레이드 마크인 작가입니다.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미술 시장에서 사랑을 받고 있고, 9월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도 ‘커튼이 있는 초상화’가 약 33억 원에 팔려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런 그가 호암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을 만나 어떤 작품을 펼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합니다. 테이트 미술관의 한 방을 가득 채운 ‘시그램 벽화’ 연작이나, 로스코 작품으로만 만들어진 예배당인 로스코 채플에 가면 막막한 벽 속에 가득 잠긴 기분이 느껴지죠. 그런데 막상 작품이 주는 감정을 설명 하라면 ‘추상표현주의’나 ‘색면 추상’ 같은 미술사 용어 뒤로 숨어들곤 합니다. 추상표현주의가 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을 그리는 흐름을 뜻한다는 것, 또 색면 추상은 말 그대로 색으로 된 면을 넣은 추상이라는 의미임을 생각하면 로스코의

‘색면 추상’ ‘추상표현주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수식어입니다. 로스코 작품에서 감동을 느낀 사람은 많지만 이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상’ ‘색면’처럼 비평가나 미술사가가 정해준 말 뒤로 숨기도 합니다. 로스코가 세상을 떠날 때 19세, 6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작품을 보존, 연구하며 알리는 그의 자녀 케이트와 크리스토퍼 로스코를 3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만났습니다. 케이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작품을 지키기 위해 소송까지 치러야 했고, 크리스토퍼는 로스코의 글을 모은 책을 편집하거나 전시 큐레이팅을 담당하는 로스코 전문 연구자입니다. 두 사람에게 로스코에 대해 물었습니다.모차르트를 사랑한 화가 먼저 아버지로서 로스코의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케이트는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나 젊은 작가를 대할 때도 따뜻했던 사람”이라며 “작품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2024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이 잘린 채 등장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를 콩코르드 광장 단두대에서 처형한 프랑스 혁명. 200여 년 전인 1789년 일어난 일임에도 그 반응엔 여전히 온도 차가 남아 있는 급진적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왕과 왕비가 멀쩡히 살아 있었던 18세기 다른 국가에선 어땠을까요? 화가 난 시민들이 왕을 죽였다는 흉흉한 소식이 유럽으로 퍼지며 불안과 혼란을 조성했던 1800년, 스페인의 궁정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왕과 왕비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 대해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구드룬 마우레르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풍자로 오해받은 그림 “로또 당첨된 졸부의 초상 같다.” 고야가 그린 ‘카를로스 4세 가족’에 관해 가장 유명한 한 줄 평입니다. 프랑스 시인 테오필 고티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이 평을 인용했는데, 대부분이 고티에처럼 19세기 프랑스의 문화 예술인입니다.

전쟁과 혼란으로 왕이 세 번이나 바뀌는 가운데 4명의 왕과 함께 일했던 궁정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프랑스 혁명이 있었던 18세기 말을 지나 19세기가 되고, 70대가 된 그는 세상과 연을 끊고 마드리드 인근 농가에서 칩거합니다. 이 집에서 화가는 정체불명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궁정 화가였을 땐 초상화, 역사화, 풍속화를 주로 다뤘던 그가 홀로 그린 이 그림들이 누구를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낯선 사람의 눈에는 어둡고 공포스러운 이 집의 벽화에 사람들은 ‘검은 그림’(Black Painting)이

2주 전 발송한 프라도 미술관 큐레이터 하비에르 포르투스 페레스 인터뷰의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지난 뉴스레터 보기 ☞ 서양 미술사의 가장 미스터리한 그림, ‘시녀들’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40704/125774069/1 - 벨라스케스가 초상, 역사화 등 전통적인 구분을 깼지만 그 바탕에는 고전 미술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있었다고요. 맞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를 두 번 여행했는데, 30세에 떠난 첫 번째 여행에서 시스틴 채플, 바티칸 벽화, 고대 로마 조각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곳에 걸린 작품은 어딘가 움츠러들고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작품의 작가를 직접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런 예술가들의 솔직한 일상은 어떨까요? 취재 현장에서 작가 본인은 물론 큐레이터, 혹은 과거 작가와 일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나 지인을 만나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고군분투하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한 일상을 알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 꿋꿋하게 버틴다 사실

미술관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곳에 걸린 작품은 어딘가 움츠러들고 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작품의 작가를 직접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조심스럽고,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죠. 그런 예술가들의 솔직한 일상은 어떨까요? 취재 현장에서 작가 본인은 물론 큐레이터, 혹은 과거 작가와 일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나 지인을 만나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곤 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고군분투하며 때론 초라하기까지 한 일상을 알면 예술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꿋꿋하게 버틴다 사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동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 가치를 알아봅니다. 이에 예술가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직감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는데요. 한국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팝아트 화가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의 친구이자 재단 이사인 존 코벳을 만났습니다. 로젠퀴스트는 앤디 워홀과 달리 빌보드 화가 출신으로 그림에 집중하고 상징과 은유를 활용해 ‘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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