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포스트 강호동’ 시대는 ‘포스트 유재석-강호동’ 시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1일 11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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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연예계에서 잠정 은퇴하겠다고 밝힌 강호동.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달 초 연예계에서 잠정 은퇴하겠다고 밝힌 강호동.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강호동의 잠정 은퇴 선언으로부터 한 달여가 지났다. 그러나 강호동 관련 이슈는 미디어에서 끊이질 않고 있다.

그만큼 강호동의 방송계 비중이 어마어마했단 얘기다. 그러나 근래 등장하는 강호동 관련 기사들은 조금 기묘한 방향을 취하고 있다. 강호동의 '빈자리'를 과연 누가 채울 것인지에 대한 관심으로 서서히 옮아가는 추세다.

이유는 단순하다. 강호동의 컴백이 예상만큼 쉽지 않으리란 전망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서민형 캐릭터의 컴백이란 아무래도 단순 사고수습보다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돌아와도 다시 처음부터 이미지를 다져나가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강호동의 은퇴는 '잠정'이었을지언정 강호동의 공백은 '잠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동아일보 10월4일자 '강호동 떠난 오락프로 MC…전문가가 보는 판도변화는'은 그 '빈자리'에 직접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나선 기사다.

'포스트 강호동' 시대 예능프로그램을 이끌어갈 대표MC 10명을 전문가들의 코멘트와 순위를 곁들여 분석했다. 1위는 당연히 유재석, 그 다음 이수근, 이경규-신동엽-이승기, 박미선-이휘재, 남희석, 김국진, 김용만 순으로 집계됐다.

기사는 "유재석의 1위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2위(평균 7.9점)에 오른 이수근을 주목할 만하다"면서 "이수근의 부상은 강호동의 공백으로 촉발된 MC계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실상 '차세대 강호동'의 가장 유력한 주자로 이수근을 거론한 셈이다.

▶문제는 차기 국민MC가 아니라 새로운 '2강 구도'의 설정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이수근이 현재로서 차세대 메인 MC 자리에 등극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인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재석-강호동이 누렸던 최고 MC, 국민 MC 자리는 개개인의 '최상의 조건'만으로 얻어진 게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이른바 '2강 구도' 설정의 특성과 그에 따른 속성의 문제가 더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강호동과 함께 양대 국민MC로 꼽히는 유재석.
강호동과 함께 양대 국민MC로 꼽히는 유재석.
예능 MC계에서 유재석-강호동 2강 구도가 처음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7년경이다. 당시 유재석은 이미 최고 MC 자리에 올라있었다. 2005년 KBS '해피투게더 프렌즈'로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뒤 이듬해인 2006년엔 MBC에서도 '무한도전'을 통해 연예대상 트로피를 받았다.

강호동이 유재석을 따라잡은 건 2007년 KBS '해피선데이-1박2일'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그리고 SBS '스타킹'이 동시에 출격하면서부터다. 그러면서 곧바로 2007년에 SBS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2강 구도가 탄생된 것이다.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유재석과 강호동은 지상파방송 3사의 연예대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2강 구도를 더욱 공고히 다져나갔다.

이처럼 연표만 확인해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유재석-강호동의 전성기는 꽤나 길었다는 것이다.

유재석은 2005년부터 7년째, 강호동도 5년째를 맞이한 시점이다. 그 이전 최고 MC, 국민 MC 소리를 들어봤던 남희석, 이휘재, 신동엽 등은 모두 길어야 3~4년 정도로 그 전성기가 짧았다.

유재석-강호동이 이들보다 더 잘나서였을까. 그렇다기보다는 유재석-강호동의 2강 구도 설정 자체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업계건 2강 구도 설정은 해당시장 자체를 살찌우는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시장에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면서 계속해서 대중의 흥미를 돋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2강 구도 설정에는 또 다른 속성이 존재한다. 일단 2강 구도를 설정해 대중의 동의를 얻고 나면, 그 2강을 이루는 양측의 인기가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한 축이 튼튼히 버티고 있으니 어느 한 쪽에 쉽게 질리지도 않고 그만큼 이미지 소진도 덜해지기 때문이다.

대중문화계에서는 나훈아-남진, 송대관-태진아, 서태지-신해철 등 주로 대중음악계에서 2강 구도의 재미를 톡톡히 봤다. 모두 대중가수로서 오랜 기간 인기를 누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니 결국 강호동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유재석도 7년 이상 최고MC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유재석이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강호동도 최고MC 자리에서 5년 간 버틸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반면 남희석, 이휘재, 신동엽 등은 모두 전성기 시절 2강 구도 설정에 실패한 경우이기에 그 전성기도 그만큼 짧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 소진이 빨라져 계속 다른 MC, 새로운 MC들로 대체됐다.

▶2강 구도 이루려면 두 MC 콘셉트의 '짝'이 맞아야 한다

그렇다면 남희석, 이휘재, 신동엽 등은 왜 2강 구도 설정에 실패했던 걸까. '짝'을 맞출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짝'을 맞추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그리고 대체 '짝'은 어떤 식으로 찾아내야 하는 걸까.

유재석-강호동 2강 구도에 대해 거의 처음으로 짚어 내렸던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전문기자는 헤럴드경제 2007년 11월16일자 기사 '[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 예능MC 맞수 유라인 vs 강라인'에서 둘의 서로 다른 콘셉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유재석은 겸손과 배려라는 덕목으로 확고한 리더십을 구축했다.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남보다는 앞서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에 스스로 낮춤으로써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유재석식 리더십'을 읽어낼 수 있다.(중략)

결혼 후 한결 느긋하고 배려심이 많아진 '큰형' 강호동은 외모에서 오는 듬직함을 활용해 투정을 부리면 대부분 받아주는 정감 어린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결정타를 날린다. 강호동은 유재석보다는 포근함과 포용력이 강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를 두고 유재석의 진행 스타일을 '삼성', 강호동을 '현대' 스타일이라고까지 말하는 지상파 PD도 있다. 유재석이 교타자라면, 강호동은 장타자다."

결국 2강 구도란 기본적으로 라이벌 구도이되 라이벌 구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두 사람이 그 위상 면에서 동등하고 특출 난 재능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라이벌이지만, 서로 너무 다른 콘셉트를 지녔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같은 시장'에 놓여있질 않다는 것. 아예 정반대 콘셉트인 경우도 많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딱 그런 경우였다.

이후 서병기 기자는 '유재석처럼 말하고 강호동처럼 행동하라'라는 책을 펴내며 둘의 2강 구도를 "자신을 낮춤으로써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섬김형 리더십'"(유재석)-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눠 주고 개개인의 능력을 살려줌으로써 팀워크를 만드는 '솔선수범형 리더십'"(강호동)으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예능물의 트렌드는 사회상을 반영한다. 사회의 트렌드가 바뀌면 예능인들의 소통 방식도 바뀐다"고 지적했다.

결국 유재석-강호동 2강 구도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은 현 한국사회 자체가 그런 상반된 두 가지 리더십을 각각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수근이 아니라 누가 이수근 '짝'이 될 수 있을지가 중요

전문가들은 강호동의 빈자리를 채울 MC로 이수근을 꼽았지만, 이수근이 '강호동-유재석'과 같은 2강 구도를 성립시키지 못하는 한 수명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호동의 빈자리를 채울 MC로 이수근을 꼽았지만, 이수근이 '강호동-유재석'과 같은 2강 구도를 성립시키지 못하는 한 수명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분석과 주장이다. 그리고 이 같은 분석과 주장에 따르면, 둘의 서로 상반된 콘셉트가 절묘하게 '짝'이 맞아 이뤄진 게 2강 구도였고, 그렇게 '짝'이 잘 맞으면서도 사회상까지 반영해줄 만한 콤비가 같은 때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드문 일이었으니 남희석, 이휘재, 신동엽 등이 '짝'을 못 찾은 것도 그들 잘못만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이렇게 기적 같이 설정된 2강 구도에서 강호동이 갑자기 빠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강호동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유재석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둘은 '한 세트'였기 때문이다. 대체가 안 된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장기 인기구도가 성립이 안 된다. 남희석, 이휘재, 신동엽 등처럼 길어야 3~4년짜리 단기 국민MC로 그쳐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미 대중은 유재석을 7~8년 이상 국민 MC로서 지켜봐왔다. 2강 구도가 깨져버린 마당에 유재석에게 그 이상을 끌고 갈만한 동력은 희박하다.

결국 강호동이 떠난 '포스트 강호동' 시대는 곧 '포스트 유재석-강호동'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유재석은 자신의 위상유지를 위해서라도 강호동의 컴백 성공을 고대해야만 할 처지다.

만약 강호동이 결국 컴백에 실패해 유재석까지 '한 세트'로 내려앉게 된다면, 다음번 2강 구도를 성립시키지 못하는 한, 차기 국민MC가 이수근이 됐건 이승기가 됐건 그 생명력은 유재석-강호동에 비해 현저히 짧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차세대 강호동'을 언급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부분은 바로 '한 세트', 즉 2강 구도의 성립 여부일 수 있다. 예컨대 이수근이 가장 유력한 차기 국민 MC 주자라면 다른 한 축은 누가 될 수 있을지, 한 쪽이 이승기라면 다른 한 쪽은 또 누가 돼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찌됐건 유재석-강호동의 2강 구도 기간 동안 한국 TV예능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거둘 수 있었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특이한 콘셉트를 성공시켰고, 명맥이 끊겼던 스타 토크쇼를 멋지게 부활시켰으며, 심지어 일반인 출연 장기자랑 프로그램까지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었다. 유재석-강호동에 대한 대중의 철썩 같은 지지가 그처럼 독창적인 시도들까지 받아들이게끔 이끈 셈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화를 거듭한 한국 TV예능프로그램은 이제 막 불어 닥친 신(新)한류 붐을 타고 해외시장 개척에까지 나설 찰나다.

'포스트 강호동' 시대가 되건, '포스트 유재석-강호동' 시대가 되건, 아니면 '돌아온 유재석-강호동' 시대로 거듭나건 간에, 이 같은 분위기가 끊이지 않고 지속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은, MC 2강 구도의 유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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