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웃음의 함정… 뒤통수를 조심하라 ‘노 맨스 랜드’

  • 입력 2004년 12월 1일 18시 09분


코멘트
사진제공 백두대간
사진제공 백두대간
보스니아와 세르비아가 대치 중인 전쟁터. 참호 안에 보스니아 병사 한 명과 세르비아 병사 한 명이 갇힌다. 바로 옆에서 또 다른 보스니아 병사 한 명은 얼떨결에 지뢰를 깔고 누웠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지뢰는 폭발한다. 하지만 병사는 때마침 뒤가 마렵다. 유엔군이 해결에 나서고 전 세계 매스컴이 이 희한한 상황을 보도하려고 몰려든다.

3일 개봉되는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를 관통하는 두 개의 단어는 ‘유머’와 ‘진실’이다. 이 영화는 설렁설렁 유머를 던지는 듯하면서도, 웃음이 터지는 지점에 ‘전쟁의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어김없이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기묘한 동거 끝에 이웃사랑과 인류애를 회복한다는 식의 섣부른 결말을 맺지는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웃음이 예상되는 타이밍에 느닷없이 빈 곳을 뻥 뚫어 놓음으로써 아주 야릇한 상실감과 비극적 경험을 관객에게 안긴다.

‘노 맨스 랜드’는 진지하지만 상반된 두 개의 상황을 한군데에 포개 놓는 방식으로 웃음의 에너지를 만들고 동시에 전쟁의 본질을 풍자한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병사는 아프리카 르완다 사태를 걱정하며,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유엔평화유지군 병사들은 영어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모국어(프랑스어 독일어 등)로는 상대를 욕하고 불신하고 투덜거린다.

참호 속 두 병사가 총을 뺏고 빼앗기기를 거듭하며 서로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장면은 충격적 메시지가 숨어 있는 부분. 총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전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이 ‘보스니아’가 됐다가 ‘세르비아’로도 바뀌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을 통해 영화는 ‘진실조차 여러 개의 버전(version)을 갖는’ 전쟁의 두 얼굴을 꼬집는다. 특히 세계 매스컴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뢰 위에 누운 병사를 유엔군이 구출하는 클라이맥스는 그 의외의 결말로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전쟁에는 ‘진짜 진실’과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는 진실’이 따로 있음을 말하는 셈이다.

보스니아 내전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온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 2002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전체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